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8
  • 행장(1)(行狀(1))
  • 사재 선생 문공 행장(思齋先生文公行狀)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8 / 행장(1)(行狀(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8.0001.TXT.0006
사재 선생 문공 행장
사재(思齋) 선생 문공(文公)의 휘는 빈(彬), 자는 군보(君甫)이며, 남평(南平) 사람이다. 무성공(武成公) 휘 다성(多省)이 그의 시조이다. 휘 익점(益漸)에 이르러 강성군(江城君)에 봉해졌는데 세상 사람들이 삼우당(三憂堂) 선생이라고 불렀다. 고조의 휘는 화(和), 호는 만은(晩隱)이며, 목은(牧隱) 이 선생(李先生)에게 수학하였고, 도승지(都承旨)를 지냈으며, 시호는 경혜(景惠)이다. 증조의 휘는 염(琰)이고, 정읍 현감(井邑縣監)을 지냈다. 조부의 휘는 상행(尙行), 시호는 경숙(敬肅)이다. 선고(先考)의 휘는 옹(雍), 호는 도암(道庵)이며, 좌찬성(左贊成)을 지냈으며, 시호는 충순(忠純)이다. 선비(先妣)는 하동 정씨(河東鄭氏) 인걸(仁傑)의 따님이다. 정통(正統) 신유년(1441, 세종23)에 능주(綾州) 월곡리(月谷里)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일찍 집안의 가르침을 받아 평소 가풍에 무젖었다. 조금 성장하여서는 어진 이를 섬기고 인한 사람을 벗하여 학문에 조예가 있어 펼치고 넓혀서 문망(聞望)과 명성이 원근에 회자되었다. 단종조(端宗朝)에 맹산 현감(孟山縣監)에 특별히 제수되었는데 사무를 본 지 한 해가 지나자 치적이 크게 드러났다. 세조(世祖) 초기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수석(水石)을 읊조리며 자기 뜻대로 자유로이 살았다. 새로 서재를 짓고 학규를 만들어 생도들을 권장하고 자손을 가르치는 것을 만년의 계책으로 삼았다. 배위(配位)는 밀양 박씨(密陽朴氏) 기웅(起雄)의 따님이다. 3남을 두었는데 구연(九淵), 구택(九澤), 구심(九潯)이다. 장방(長旁)은 2남을 두었는데, 우주(遇周)는 장사랑(將仕郞)을 지냈고, 복주(復周)는 부사(府使)를 지냈다. 이방(二旁)은 4남을 두었는데, 억붕(億鵬), 억도(億道), 억수(億壽), 억명(億明)이다. 공의 묘소는 아무 산 아무 좌(坐)의 언덕에 있다.
아, 이렇게 후한 덕이 있고 인망이 매우 두터웠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바다 모퉁이에서 은거하며 애오라지 생을 마감하였으니, 식자들의 실망스러움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유풍과 여운이 집안에 전하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제단을 설치하여 영원토록 제향을 폐하지 않을 것이니, 이른바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한다는 것이 이를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16세손 경식(敬植)이 가장(家狀)을 받들어 서문을 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나는 합당한 사람이 아니어서 참으로 감히 승낙할 수 없지만 어진 이를 사모하고 덕이 있는 이를 좋아하는 것은 본성에서 나오고, 게다가 경식은 평소 종유한 친분이 있기에 그 뜻을 또 저버릴 수 없어 삼가 가장에 근거하여 이상과 같이 대략적으로 기술한다.
思齋先生文公行狀
思齋先生文公諱彬字君甫。南平人。武成公諱多省。其始祖。至諱益漸封江城君。世稱三憂堂先生。高祖諱和。號晩隱。受學于牧隱李先生。官都承旨。諡景惠。曾祖諱琰。井邑縣監。祖諱尙行。諡敬肅。考諱雍。號道庵。官左贊成。諡忠純。妣河東鄭氏仁傑女。正統辛酉。生公于綾州月谷里。早襲庭訓。擩染有素稍長。事賢友仁。學問造詣。奮張展拓。而聞望聲華。膾炙遠邇。端宗朝。特除孟山縣監。視事踰年。治蹟大著。世祖初解官歸鄕。粧點水石以自寄敖。開講室立學規。以獎進生徒。訓迪子孫。爲晩年計。配密陽朴氏起雄女。三男。九淵九澤九潯。長旁二男。遇周將仕郞。復周府使。二旁四男。億鵬億道億壽億明。公墓在某山某坐原。嗚乎。以若厚德重望。未有試於斯世。而潛光海曲聊以卒歲。其爲識者之缺望何如也。然遺風餘韻。傳之在家。播之在人。建祠設壇。百世不替。所謂屈短伸長。非此之謂耶。十六世孫敬植。奉家狀。託以不朽之文。余以非其人。固不敢承膺。而慕賢好德。出於秉彛。而且敬植有平昔游從之分。其意又不可孤。謹據狀而纂述梗槪如右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