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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표(墓表)
  • 유인 문씨 묘표(孺人文氏墓表)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표(墓表)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2.TXT.0010
유인 문씨 묘표
유인(孺人)의 성은 문씨(文氏),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중대에 휘 자수(自修), 호 면수재(勉修齋)란 분이 계셨다. 고조는 휘 복영(福榮)이고, 증조는 휘 종진(宗鎭)이며, 조부는 휘 영학(永學)이다. 부친은 휘 필휴(弼休)이다. 모친은 청도 김씨(淸道金氏)로, 김시오(金時五)의 따님인데, 철종(哲宗) 기미년(1859, 철종10) 8월 20일에 유인(孺人)을 능주(綾州)의 화곡리(花谷里) 사제에서 낳았다.
유인(孺人)은 온화하고 인자하며 단정하고 자상하였다. 어려서부터 지극한 행실이 있었으니, 《소학(小學)》, 《열녀전(列女傳)》을 읽고 대략 대의를 깨달았다. 나이 18세에 사인(士人) 오장섭(吳長燮)에게 출가하였다. 시부모를 섬길 적에 매우 조심하였으니, 닭이 울 때 침소에서 문안하고 물 흐르듯 응대하였다. 시집올 때 치장(治裝)하여 보낸 옷과 기물이 매우 많았는데, 수시로 부족할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바치고 자신이 입은 것이라곤 다만 시집올 때 입었고 이젠 다 해진 옷뿐이었다. 치장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화려하게 꾸미는 습속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자며 길쌈하는 것을 오직 부지런히 하였다.
시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유인은 반드시 별도로 간수 해 두었다가 적절한 때 올렸고 일찍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동서지간에 서로 아껴서 한솥밥을 먹은 지 10년이었지만 집안에서는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분가할 적에 재산이나 자질구레한 용품은 있든 없든 고루 나누었다. 종족과 이웃 사람을 대할 적에는 각각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친익척의 상사와 혼사에 부족하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반드시 시부모에게 여쭌 뒤에 적절하게 구휼해 주었다. 시부모가 병이 들자 남은 일을 제쳐두고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너무나 슬퍼하여 예에 지나칠 정도였고, 온갖 의절(儀節)은 반드시 정성스럽게 하고 삼가서 유감이 없게 하였다. 선조를 추모하는 예절은 매우 풍성하고 정결하게 하여 나물 등 온갖 음식을 미리 마련해 두어 부족한 것이 있지 않았다.
신축년(1901, 고종38) 겨울에 병들어 낫지 않자, 하루는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위로 연로하신 시어머님이 계시는데 끝까지 봉양하지 못하였으니 사람을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고, 이어서 며느리를 불러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잘 봉양하라고 부탁하였다. 말을 마치고 별세하였으니, 때는 11월 24일이다. 단양면(丹陽面) 회활리(會活里) 안산(案山) 도리봉(道理峯) 정좌(丁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2남 4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재동(在東), 재남(在南)이고, 딸은 광산(光山) 이용휴(李龍休), 조갑성(曺甲成), 정돈철(鄭燉哲)에게 출가하였고, 막내딸은 어리다. 재동(在東)은 아들 셋을 낳았으니, 용호(龍鎬), 봉호(鳳鎬), 인호(麟鎬)이다. 내가 가까운 고을에 살아 유인이 어질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다. 그래서 지금 재동이 글을 지어 달라고 간청한 것에 대해 차마 굳게 사양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孺人文氏墓表
孺人姓文氏。本南平。中系有諱自修號勉修齋。高祖諱福榮。曾祖諱宗鎭。祖諱永學。考諱弼休。妣淸道金氏時五女。哲宗己未八月二十日。生孺人于綾之花谷里第。溫仁端詳。幼有至行。讀小學列女傳。略曉大義。年十八。歸于士人吳長燮。事舅姑甚謹。雞鳴問寢。應對如流。于歸時。裳送衣物甚多。而隨時隨乏。獻之於姑。自身所着。只是慶敞而巳。不屑膏沐之飾。不喜華靡之習。夙興夜寐紡績惟勤。其舅愛酒。家有釀。孺人必別蓄而藏之。待時以進。未嘗乏絶。焍姒相愛。共爨十年。庭無間言。及其析箸。財産什物。有無共之。待宗族鄰里。各得其心。有喪戚昏姻。貧乏災患。必稟於舅姑。隨時周恤。舅姑有疾。捨置餘事。專力調養。其遭故也。致哀過禮。凡百儀節。必誠必愼。俾無遺憾。至於奉先追遠之節。豊潔兩至。蔬菜几羞。宿戒預蓄。未有見乏。辛丑冬。屬疾彌留一日曰。我死必矣。上有老姑。未克終養。人理缺矣。因呼子婦。託以善養老姑。言訖而終。時十一月二十四日也。葬丹陽面會活里案山道理峯丁坐原。擧二男四女。男在東在南。女適光山李龍休曺甲成鄭燉哲次幼。在東生三男。曰龍鎬鳳鎬麟鎬。余在鄕隣之近。聞孺人之賢久矣。今於在東一言之懇。有不忍牢辭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