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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표(墓表)
  • 영인 홍씨 묘표(令人洪氏墓表)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표(墓表)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2.TXT.0007
영인 홍씨 묘표
홍 영인(洪令人)은 고(故) 동화거사(東窩居士) 홍경주(洪敬周)의 따님이다. 대부(大父)는 서영(瑞榮)이고, 증대부(曾大父)는 내해(來海)인데, 일송(一松) 선생 휘 치(治)의 12대손이다. 모친은 제주 양씨(濟州梁氏)로, 양호영(梁浩永)의 따님이다. 순묘(純廟) 경진년(1820, 순조20) 9월 9일에 태어났다.
18세에 오공 응조(吳公應祚)에게 출가하였다. 시집에 들어와 당(堂)에서 절하는데 경의를 표하는 몸가짐이 매우 훌륭하여 바라보는 친지들이 모두 현숙한 부인을 얻은 것을 하례하였다. 말하고 웃는 것이 데면데면하지 않고, 행동거지에 일정함이 있었으며, 규범(閨範)을 새로 고쳐 정돈하고 집안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자손을 가르치고 기르며 비복(婢僕)을 거두어 다독이는 데에 모두 확실하게 일정한 규정이 있었다. 성품도 영특하고 사리에 밝았다. 이 때문에 이웃 부녀 가운데 의심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와서 질정하였으니, 사람들이 여자 가운데 장자(長者)라고 일컬었다.
임오년(1882, 고종19) 3월 28일에 졸하였다. 장사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부군의 묘소 좌측에으로 이장하였다. 오씨(吳氏)는 관향이 보성(寶城)으로, 대대로 이름난 사람이 있었다. 영인(令人)은 3남 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재홍(在鴻), 재봉(在鳳), 재순(在淳)이고, 딸은 정재우(鄭在禹)에게 출가하였다.
아, 영인(令人)은 나의 선비(先妣)보다 한살이 적다. 이웃에 살아 왕래하며 주고받은 것이 매우 많았다. 내 나이가 노년에 이르렀으니, 어느덧 모두 천고의 일이 되었고 양가의 후손 또한 모두 이미 늙었다. 옛일을 추억하니 통한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재홍(在鴻)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묘도에 새길 글을 청하였다.
令人洪氏墓表
洪令人。故東窩居士諱敬周女也。大父瑞榮。曾大父來海。一松先生諱治十二代孫。妣濟州梁氏浩永女。以純廟庚辰九月九日生。十八適吳公諱應祚。入門拜堂。禮儀孔嘉。親戚觀者。無不賀其得賢婦。言笑不泛。動止有常。修整閨範。綜理家務。敎養子孫。收恤婢僕。無不的有成規性又穎慧。長於曉事。是以隣里婦女有疑難。必來取質焉。人稱女中長者。壬午三月二十八日卒。葬後未幾。移窆乾位之左。吳氏籍寶城。世有聞人。令人育三男一女。在鴻在鳳在淳。鄭在禹也。鳴呼。令人少我先妣一歲。而比舍接隣。往來贈遺。極其殷勤。西日莫係。遽皆千古。而兩家遺孤。亦皆己老矣。撫念疇昔。痛恨曷已。在鴻以余相知最熟。請志墓道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