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표(墓表)
  • 증 가선대부 호조 참의 최공 묘표(贈嘉善大夫戶曹參議崔公墓表)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표(墓表)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2.TXT.0005
증 가선대부 호조 참의 최공 묘표
공의 휘는 흥창(興昌), 자는 익로(益老)이다. 계보는 해주(海州)에서 나왔고, 고려 때 문헌공(文憲公) 충(沖)이 상대(上代)의 현조(顯祖)이다. 경장(慶長)에 이르러 판서를 지냈는데, 공에게는 6대조가 된다. 증조는 휘 성해(性海)이고, 조부는 휘 호(昊)이며, 부친은 휘 언진(彦臻)이다. 모친은 남양 홍씨(南陽洪氏)로, 가선대부 홍이복(洪履福)의 따님인데, 영종(英宗) 경술년(1730, 영조6)에 낙안(樂安) 칠동리(七洞里) 사제에서 공을 낳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한 성품이 있어 효성과 우애로 일찍 이름이 드러났다.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춘 채 시속의 화려함을 좇지 않고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며 경학에 힘쓰고 학문을 쌓았으니, 행의(行儀)와 풍범(風範)이 당대에 추중(推重)을 받았다. 그리하여 향(鄕)과 도(道)에서 추천하는 문서가 전후로 자주 이어졌다.
순조(純祖) 경오년(1810, 순조10)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81세이다. 묘소는 매수리(梅水里) 엄앙동(掩映洞) 자좌(子坐)에 있으니, 부인과 합장하였다. 81년 뒤 경인년(1890, 고종27)에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배위(配位)는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다. 아들 셋을 낳았으니, 충준(忠俊), 득준(得俊), 광준(光俊)이다. 손자 시억(時億), 시길(時吉)은 장방(長房)의 소생이고, 시대(時大), 시균(時均), 시달(時達)는 이방(二房)의 소생이다. 시상(時常)은 삼방(三房)의 소생이다. 증손 이하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현손(玄孫) 병직(炳直)이 백 리 먼 길을 발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로 고생하며 찾아와 묘표(墓表)의 글을 청하였다. 나는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굳게 사양하였으나 되지 않아 삼가 가장에 의거하여 그 뜻에 부응한다.
贈嘉善大夫戶曹參議崔公墓表
公諱興昌。字益老。系出海州。麗朝文憲公諱沖。爲上系顯祖。至慶長。官判書。於公爲六世。曾祖諱性海。祖諱昊考諱彦臻。妣南陽洪氏嘉善大夫履福女。以英宗庚戌生公于樂安之七洞里第。生有至性。孝友夙著。杜門斂迹。不趨時華。固窮安貧。劬經績學。行儀風範。見重一時。鄕道剡薦。前後頻仍。純祖庚午考終。享年八十一。墓梅水里掩映洞子坐合窆。後八十一年庚寅。贈戶曹參議。配光山金氏擧三男。忠俊得俊光俊。孫時億時吉長房出。時大時均時達二房出。時常三房出。曾孫以下。不能盡錄。玄孫炳直。百里重趼。來謁墓表之文。余以非其人。牢辭不獲。謹据家狀以塞其意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