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숙부인 강씨 묘지명(淑夫人姜氏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30
숙부인 강씨 묘지명
기군 동익(奇君東翼)은 내 고향의 옛 벗인데, 중년 이후로는 나의 집과 매우 가까운 데 살았다. 이 때문에 그 대부인(大夫人)의 훌륭한 규문의 법도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 한두 가지뿐만이 아니었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9년 뒤에 동익이 그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는데, 전에 들은 것이 과연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었으니, 지금 가장에 기록된 내용은 또한 과언이 아니다.
부인이 시집왔을 초기에 남편의 집이 매우 가난하여 생계를 꾸릴 수 없었기에 부인이 친히 부지런히 일하여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았다. 이로부터 집안 형편이 펴져 변변찮은 음식이라도 봉양할 수 있었다. 시부모를 섬길 적에는 온화하고 즐거운 기색(氣色)으로 물 흐르듯이 응대하였다. 시부모가 늙고 병이 많아 항상 병석에 있었는데, 음식이 입에 맞는지 약 처방이 잘 되었는지 반드시 살펴보고 맛을 본 뒤에 올렸다. 전후로 당한 상에 매우 슬퍼하였고, 장사 지낼 때 쓰는 여러 기물도 일일이 스스로 마련하였으니, 차자(次子)라는 이유로 장자에게 수고로움을 양보하지 않았다. 남편을 섬길 적에는 매우 온순하였으니,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물어본 뒤에 행하여 일찍이 한마디 말도 서로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다.
규방(閨房)에서는 온화하고 고요하여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하였다. 내외 친족으로부터 천한 노복에 이르기까지 혼사에는 부조하고 상사에는 부의하였다. 평상시 옷은 사치스럽게 입지 않았고 음식은 소박하게 차렸다. 집안에서는 무당을 쓰지 않고 문안으로 광대를 들이지 않고 오직 부지런함으로 스스로 단속하고 검소함으로 스스로 길렀다. 만년에 이르러 몸이 편안하고 집안이 평온하였으며, 장수와 복을 누렸다.
부인의 관향은 진주(晉州)이니, 신라(新羅) 병부 상서(兵部尙書) 휘 민첨(民瞻)이 시조이다. 이로부터 대대로 훈벌의 가문으로 이름났다. 중엽에 이르러 휘 덕룡(德龍)이란 분이 계셨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함창 현감(咸昌縣監)에 제수되었으니, 바로 부인의 7대조이다. 증조는 휘 우하(遇河)이고, 조부는 휘 택주(宅周)이다. 부친은 휘 진오(鎭五)이니, 통정대부를 지냈다. 모친 숙인(淑人)은 천안 전씨(天安全氏)로, 전종언(全宗彦)의 따님인데, 순묘(純廟) 계미년(1823, 순조23) 5월 26일에 태어났다. 연일 현감(延日縣監) 기공 하운(奇公夏雲)에게 출가하였고, 남편의 관직에 따라 숙부인에 봉해졌다. 1남 1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바로 동익(東翼)이고, 딸은 문재항(文載頊)에게 출가하였다. 동익은 4녀를 낳았는데, 고석주(高錫柱), 윤상의(尹相義), 민영제(閔泳悌), 윤봉혁(尹鳳赫)에게 출가하였다. 병신년(1896, 고종33) 2월 23일에 졸하였다. 도장면(道莊面) 옥동촌(玉洞村) 뒤 을좌(乙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나라의 흥망 邦之隆替
집안의 성쇠. 家之盛衰
실로 내조에 달렸으니 實係內助
예부터 그러하였네. 自昔然而
처음엔 가난하다가 만년에 넉넉해졌고 早嗇晩豊
먼저는 곤궁하고 나중엔 창대하였네. 先困後昌
향리에 드러나 빛났으니 著耀鄕里
남은 복록 다함이 없네. 餘祿無疆
어떻게 그러할 수 있는가 問何因爾
부인의 현숙함 때문일세. 夫人賢淑
백세토록 향기로운 재물을 올리니 百世芬苾
옥동의 산기슭일세. 玉洞之麓
淑夫人姜氏墓誌銘
奇君東翼。余鄕井舊要也。中年以來。敞寓尤密邇焉。是以得聞其大夫人閫範之美。爲人所稱道者。非止一二。夫人沒後九年。東翼抱其家狀。請幽竁之誌。前所聞。果非虛傳。而今所狀者。亦非過語也。夫人于歸之初。天家貧甚。無以爲計。夫人親服勤勞。夙夜不懈。自是而生理有賴。菽水不罄。事舅姑。氣和色愉。應對如流。舅姑老而多病。恒在床褥。其飮饍之宜。藥餌之方。必審視而嘗進之。遭前後喪。哀戚殊甚。喪具凡百。一一自備。不以次房而遜於長房。事君子。極其婉順家事巨細。咨而行之。未嘗以一言相稽。閨房之內。雍容靜暇。若無人聲。自內外族戚以至婢僕之賤。婚嫁有助。死喪有賻。平居衣不華奢。食不甘美。家不用巫覡。門不納玩戱。惟以勤勞自持。儉約自養。至於晩歲。身安家溫。備享壽祿。夫人貫晉州。以新羅兵部尙書諱民瞻爲始祖。自是世著勳閥。至中葉有諱德龍。壬辰倡義。除咸昌縣監。卽夫人七世祖也。曾祖諱遇河。祖諱宅周。考諱鎭五。官通政。妣淑人天安全氏宗彦女。純廟癸未五月二十六日生。適延日縣監奇公諱夏雲。從夫職封淑夫人。擧一男一女。男卽東翼。女適文載頊。東翼生四女。曰高錫柱尹相義閔泳悌尹鳳赫。以丙申二月二十三日卒。葬道莊面玉洞村後乙坐原。銘曰。邦之隆替。家之盛衰。實係內助。自昔然而。早嗇晩豊。先困後昌。著耀鄕里。餘祿無疆。問何因爾。夫人賢淑。百世芬苾。玉洞之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