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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율재 김공 묘지명(栗齋金公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23
율재 김공 묘지명
공의 휘는 종국(鍾國), 자는 성일(聖一), 호는 율재(栗齋)이다. 김씨(金氏)는 계보가 경주(慶州)에서 나왔다. 휘 충한(沖漢)이란 분이 계시니, 호는 수은(樹隱)이다. 고려에서 벼슬하여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본조에 들어와 휘 영전(傳號)이란 분이 계시니, 호는 필암(蓽庵)이고, 참봉을 지냈다. 여러 대를 전해 내려와 휘 대기(大器)에 이르렀는데, 호는 경재(警齋)이고 진사를 지냈고, 중봉(重峯) 조 선생(趙先生)에게 수학하였다. 이분이 휘 명철(命哲)을 낳았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장악원 정(掌樂院正)에 추증되었다. 이분이 휘 횡(鑅)을 낳았는데, 호가 태암(泰巖)이고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우산(牛山) 안 선생(安先生)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다. 모두 그 현조(顯祖)이다. 고조는 휘 운정(運鼎)인데, 감찰을 지냈고, 증조는 휘 희학(希學)인데,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조부는 휘 지형(之炯)인데, 장악원 정에 추증되었다. 선고는 휘 홍기(鴻基)인데, 호가 농와(聾窩)이다. 모친은 진주 정씨(晉州鄭氏)로, 정영(鄭爃)의 따님이다. 공은 순묘(純廟) 정축년(1817, 순조17) 2월 28일에 신산리(薪山里)에서 태어났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호탕하였으니, 곡학(曲學)하는 선비의 기습(氣習)이나 구차한 유학자의 기습이 없었다. 처음에 시서(詩書)를 공부하다가 활쏘기와 말타기를 함께 익혔는데, 버들잎을 꿰뚫을 정도로 기예가 정밀하고 심오하였으며 용병술(用兵術)이나 기율(紀律)에도 모두 통달하였다. 술을 마신 뒤에는 《시경》〈진풍(秦風) 무의(無衣)〉 몇 곡조를 읊조렸으며, 《사기(史記)》를 읽다가 노중련(魯仲連)이 동해 바다를 밟고, 장량(張良)이 진(秦)나라를 격파하였다는 등의 구절에 이르러서는 책을 덮고 무릎을 치며 북받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했다. 중년 이후로는 변고를 겪은 것이 점점 깊어지고 세상일을 겪은 것이 점점 많아져, 젊었을 때의 풍도는 규각(圭角)주 42)을 드러내지 않고 편안하게 수렴하여 날로 노성(老成)한 법도를 이루었다. 또 무사재(無邪齋) 박씨 어른과 만년에 이웃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교유하여 깨달은 것이 많았다. 병인년(1866, 고종3) 강도(江都)의 난주 43)에 그 족숙(族叔) 산남공(山南公)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는데, 약속이 이미 정해져 출발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문득 난이 평정되어 그만두었다.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에게는 우애 있으며, 붕우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규문을 잘 다스리고 정돈하여 조화로우면서도 예법이 있었고, 자손을 가르침에 엄격하고 법도가 있었으니, 아름다운 명성과 훌륭한 명예가 향리에 자자하였다.
기유년(1909, 순종3) 4월 7일에 졸하였는데, 신산(薪山) 오른쪽 산기슭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배위(配位)는 상산 김씨(商山金氏)로, 김욱해(金郁海)의 따님이다.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만원(萬源), 두원(斗源)이고, 딸은 흥덕(興德) 장대규(張大奎)에게 출가하였다. 장방손(長房孫)은 권주(權柱)이고, 손녀는 정재우(鄭在禹)에게 출가하였다. 차방손(次房孫)은 권율(權律), 권하(權夏), 권권택(權澤), 권권후(權厚), 권권신(權信)이고, 손녀는 구교열(具敎烈)에게 출가하였다.
아, 공의 평생을 살펴보건대, 풍진세상에서 불우하였지만 뇌락(磊落)하고 강개(慷慨)함은 먼 후대에도 오히려 족히 느낄 수 있다. 더구나 같은 세상 같은 고을에 살면서 직접 인사드리지 못했으니, 그 한스러움이 어떠하겠는가.
권하(權夏)가 그 대인의 명을 받들어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옛날엔 광견주 44)이지만 古之狂狷
오늘날은 강개한 기상일세. 今之慷慨
이로 인해 분별하여 因是裁之
성취할 수 있었네. 可以有造
만년에 좋은 이웃을 만나 晩接芳隣
순박함을 회복하였네. 于以回淳
신산의 기슭에 薪山之麓
넉 자의 봉분이 있네. 四尺其崇
봄가을로 향기로운 제물 올리니 春秋芬苾
자손이 번성하리라. 子孫繩繩
주석 42)규각(圭角)
위가 뾰족하고 밑이 네모난 벽옥(璧玉 둥근옥)이 규(圭)이고, 이 벽옥의 뾰족한 모서리가 규각이다. 언행이 모가 나서 남과 잘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규각나다'라고 한다.
주석 43)병인년 강도(江都)의 난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이른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천주교도 탄압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이다.
주석 44)광견(狂狷)
《논어》〈자로(子路)〉에 공자가 "중도(中道)를 행하는 사람을 얻어 함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광견한 사람과 함께 하겠다.[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뜻이 크고 지조가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栗齋金公墓誌銘
公諱鍾國。字聖一。號栗齋。金氏系出慶州。有諱沖漢號樹隱。仕麗。官禮儀判書。入我朝。有諱永傳號蓽庵。參奉。累傳至諱大器號警齋。進士。受學於重峯趙先生。生諱命哲。壬辰擧義。贈掌樂院正。生諱鑅號泰巖。同中樞。從牛山安先生擧義。皆其顯祖也。高祖諱運鼎監察。曾祖諱希學。贈戶曹參議。祖諱之炯。贈掌樂院正。考諱鴻基號聾窩妣晉州鄭氏爃女公以純廟丁丑二月二十八日生于薪山里。天稟豪爽。無曲士拘儒之氣。初業詩書。兼習弓馬。穿楊碎柳。技藝精深。用兵紀律。無不曉解。酒後歌無衣詩數闋。讀史至魯連蹈海張良椎秦等處。廢書擊節。不勝其慷慨。中身以後。閱世漸深。更事漸多。少年風韻。不露圭角。而帖然收斂。日就孚老成規矩。又與無邪齋朴丈。晩而接隣。日夕遊從。多所契悟焉。丙寅江都之亂。從其族叔山南公。倡起義旅。約束己定。啓行有日。旋以亂平而止。孝於父母。友於兄弟。信於朋友。修整閨門。和而有禮。敎訓子孫。嚴而有法。令聞令譽。藉藉鄕里。己酉四月七日卒。葬薪山右麓子坐原。齊商山金氏郁海女。二男一女。男萬源斗源。女適興德張大奎。長房孫權柱。女鄭在禹。次房孫權律權夏權澤權厚權信。女具敎烈。嗚呼。迹公平生。其落拓風塵而磊落慷慨。百世之下。猶足相感。況在倂世同鄕而未得拜床。其恨爲何如也。權夏以其大人命。奉家狀。謁誌銘。銘曰。古之狂狷。今之慷慨。因是裁之。可以有造。晩接芳隣。干以回淳。薪山之麓。四尺其崇。春秋芬苾。子孫繩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