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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경재 고공 묘지명(敬齋高公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22
경재 고공 묘지명
공의 휘는 명림(命霖), 자는 내여(乃汝), 호는 경재(敬齋)이다. 고씨(高氏)는 관향이 장흥(長興)인데, 신라(新羅)로부터 고려(高麗)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저명한 석학이 있었다. 휘 신전(臣傳)에 이르러 본조에 들어왔으니, 호조 참의를 지냈다. 이분이 휘 열(悅)을 낳았는데, 호조 참판을 지냈다. 이분이 휘 상덕(尙德)을 낳았는데, 지평을 지냈다. 모두 그 현조(顯祖)이다. 고조는 휘 경리(景离)이고, 호가 둔암(遯庵)이다. 증조는 휘 원건(元健)이고, 조부는 휘 태제(泰濟)로 참봉을 지냈다. 부친은 휘 가한((可漢)이고, 호가 봉강(鳳岡)이다. 모친은 남평 *문씨(南平文氏)로, 문만웅(文萬雄)의 따님이다. 숙묘(肅廟) 경인년(1710, 숙종36) 2월 3일에 이지촌(鯉池村)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체격이 단아하고 재능이 특출하였다.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이 있어서 부모의 곁에서 모시며 응대하고 대답함에 잘 받들어서 어김이 없었다. 7세에 《소학(小學)》을 배워 어린아이가 행할 모든 예법을 일일이 준행하였다. 10세에 《논어》와 《맹자》를 배워 문리(文理)가 날로 성취되었다. 관례를 함에 미쳐서는 포부가 크고 조예가 정밀하고 깊었다. 의리(義理)를 변론하는 곳에 이르러서는 선배와 숙유(宿儒 학식이 많은 선비)가 모두 스스로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학문을 진전시키고 지혜를 늘리는 데에는 구사(九思)보다 절실 중요한 것이 없고, 몸과 마음을 단속하는 데에는 구용(九容)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주 35) 인(仁)의 체단(體段)을 구하는 데에는 〈서명(西銘)〉주 36)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학문하는 규모는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의 다섯 가지보다 잘 구비된 것이 없다."라고 하고, 자리 곁에 써서 걸어두고 스스로 경계하였다.
한 마을에 같이 사는 시공(緦功)의 친척주 37)이 30여 가구였는데, 안부를 묻고 두루 구휼하여 은의(恩誼)가 있고 화목하였다. 수십 년이 되었지만 흠잡는 말을 하는 자가 없었다. 가문의 규약을 지어 매월 초하루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고해주었다. 그 규약에 "첫째, 부모를 잘 섬기고, 형장을 잘 섬긴다.[善事父, 母 善事兄長.] 둘째, 학문을 권장하고 농사에 힘쓴다.[勤文學, 力農桑.] 셋째, 부세를 잘 납부하고 요역을 회피하지 않는다.[先賦稅, 趁徭役.] 넷째, 주색을 가까이하지 말고, 놀음을 배우지 말라.[勿近酒色, 勿學賭博.] 다섯째, 혼사와 상사에는 서로 돕고, 흉년에는 서로 구휼한다.[婚喪相扶, 饑饉相恤.] 여섯째, 쟁송을 경계하고 미신을 멀리 하라.[戒爭訟, 遠巫覡.]"라고 하였다. 집안의 후생(後生) 가운데 용모가 단정하고 자질이 특출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한 글방에 모아놓고 스승을 잘 선택하여 가르쳤다. 그리고 매달 직접 시험하여 부지런히 공부하는지 게으름을 피우는지를 살폈다. 늘 자손에게 경계하기를 "인생 사업은 다만 사(士)와 농(農) 두 가지만 있을 따름이다. 사세(事勢)와 재력(財力)이 미치는 자는 실로 마땅히 공부에 전념해야 하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동소남(董邵南)주 38)처럼 주경야독(晝耕夜讀)해야 한다. 이것이 선비의 본분이니, 힘쓰고 힘쓸지어다.
무술년(1778, 정조2) 7월 9일에 졸하니, 천년동(千年洞) 당산등(堂山嶝) 을좌(乙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배위(配位)는 보성 선씨(寶城宣氏)로, 선정기(宣廷夔)의 따님인데, 아들 둘을 낳았다. 계배(系配)는 전주 이씨(全州李氏)로, 이진휘(李震輝)의 따님이다. 아들 넷을 낳았으니, 산각(山珏), 산중(山重), 산택(山宅), 산언(山彦)이다. 7세손 광무(光茂)가 나에게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이미 그 몸 깨끗하게 하여 旣淑其身
집에서 예법으로 막았네.주 39) 以閑有家
미루어 확대하여 실행하였으니 推以行之
가문의 법도가 또한 드러났네. 門規亦嘉
곤륜산의 옥은 광채 숨기고주 40) 昆玉潛光
못 속의 구슬은 광휘 감추었네.주 41) 淵珠藏輝
자손들이 가법을 받들었으니 子孫承式
명성과 업적 작지 않네. 聲猷不微
주석 35)학문을……없고
구사와 구용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이라는 뜻으로, 《예기》 〈옥조(玉藻)〉와 《논어》 〈季氏〉에 나온다.
주석 36)서명(西銘)
송나라 장재(張載)가 지은 글로, 천지가 나의 부모이고 만물이 나의 동포라는 이치를 담고 있다. 《張載全書》
주석 37)시공(緦功)의 친척
시공은 상복(喪服) 제도에서 가장 가벼운 3개월 동안 입는 시마복(緦麻服)과 5개월 동안 입는 소공복(小功服)의 친척을 말한다.
주석 38)동소남(董邵南)
당(唐)나라 사람으로, 안풍(安豐)에 은거하여 주경야독하며 부모를 받들고 처자를 거느리며 살았다. 한유(韓愈)가 그의 이러한 삶을 두고 〈동생행(董生行)〉이란 글을 지었다. 《五百家注昌黎文集 卷2 嗟哉董生行》
주석 39)집에서 예법으로 막았네
《주역》〈가인괘(家人卦) 초구(初九)〉에 "집에서 예법으로 막으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閑有家, 悔亡.]" 하였으니, 집안을 다스리는 초기에 법도로 막으면 은혜를 손상하지 않고 의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집안에서 처하기를 잘한다는 뜻이다.
주석 40)곤륜산의……숨기고
《서경》 윤정(胤征)에 "불이 곤륜산을 태워 버리면 그 속에 있던 옥과 돌도 함께 다 타 버린다.[火炎崑岡, 玉石俱焚.]" 하였다.
주석 41)못……감추었네
《장자》 〈열어구(列禦寇)〉에 "천금의 가치가 나가는 구슬은 반드시 깊은 못 속에 숨어 사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는 법이다.[夫千金之珠, 必在九重之淵, 而驪龍頷下.]"라고 하였다.
敬齋高公墓誌銘
公諱命霖。字乃汝。號敬齋。高氏貫長興。自羅至麗。世有名碩。至諱臣傳。入我朝官戶曹參議。生諱悅戶曹參判。生諱尙德持平。皆冥顯祖也。高祖諱景离。號遯庵。曾祖諱元健。祖諱泰濟參奉。考諱可漢。號鳳岡。妣南平文氏萬雄女。以肅廟庚寅二月三日生公于鯉池村。體容端雅。才氣挺邁。自幼有至性。侍父母側。應對唯諾。承順無違。七歲受小學書。凡百幼儀。一一遵循。十歲受論孟。文理日就。及官抱負贍富。造詣精深。至於辨論義理處。先進宿儒。皆自以爲不及。嘗曰。進學益智。莫切於九思。收斂身心。莫切於九容。求仁體段。莫先於西銘。爲學規模。莫備於博學審問愼思明辨篤行五者。書揭座側以自警焉。緦功之親同住一巷者。爲三十餘家。問訊周恤。恩誼雍睦。積數十年。未有間言。著門規。每於月朔。聚而告之。其規有曰。一善事父母。善事兄長。二勤文學力農桑。三先賦稅趁徭役。四物近酒色。勿學賭慱。五婚喪相扶。饑饉相恤。六戒爭訟遠巫覡。門內後生。有儀形端正。才性穎悟。必聚之一塾。擇師敎之。每朔躬親試之。以考其勤慢。常戒子孫曰。人生事業。只有士農兩件而已。事力可及者。固當專業於文字。如其不然。則如蕫邵南晝耕夜讀可也。此是士子本分。勉之勉之。以戊戌七月九日卒。葬于千年洞堂山嶝乙坐原。配寶城宣氏廷夔女。生二男。系配全州李氏震輝女。生四男。山珏山重山宅山彦。七世孫光茂謁余文以誌陰石。銘曰。旣淑其身。以閑有家。推以行之。門規亦嘉。昆玉潛光。淵珠藏輝。子孫承式。聲猷不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