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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호은 황공 묘지명(湖隱黃公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18
호은 황공 묘지명
무성한 꽃과 잎을 보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고 연원(淵源)이 깊다는 것을 안다. 사물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이 사람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선인의 벗 황 이랑공(黃吏郎公)은 먼 지방에서 떨쳐 일어나 젊은 나이에 명성을 떨쳤으니, 성대하게 밝은 시대의 어진 신하가 되고 태평성대의 명사(名士)가 되었다. 자손들이 모두 법도를 준수하여 찬란하게 시례(詩禮)의 기풍이 있었으니, 다가올 복록이 오히려 다하지 않았다. 평소 흠모하여, 선조가 쌓기만 해놓고 누리지 않은 공덕이 필시 선대에 있었는데 아직 후손이 끌어오지 못한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을미년(1895, 고종32) 여름에 이랑공의 맏아들 작(稓)이 증왕고(曾王考) 호은공(湖隱公)의 행장을 가지고 내가 머무는 벽산(碧山)의 집으로 찾아와 묘도에 세울 비문(碑文)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아, 양대에 걸쳐 50년 동안 집안끼리 서로 친하게 지낸 우의로 볼 때 어찌 차마 굳게 사양하겠는가.
삼가 살피건대, 공의 휘는 상곤(象坤), 자는 후지(厚之), 호은(湖隱)은 그의 호이다. 국초의 명재상 익성공(翼成公) 휘 희(喜)의 후손이다. 부친은 휘 자중(字中)이다. 모친은 밀양 손씨(密陽孫氏)로, 손덕삼(孫德三)의 따님인데, 영종(英宗) 병자년(1756, 영조32)에 장흥(長興) 벽신동(闢新洞)에서 공을 낳았다.
어려서 지극한 성품이 있어 효성과 우애로 이름이 났다. 과거 공부를 하여 문장이 넉넉하며 시원하였다. 이윽고 번연히 생각을 바꾸어 수신을 위한 학문에 종사하였으니, 대개 타고난 훌륭한 자질로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바른길로 돌이킨 것이다. 문을 닫고 휘장을 친 채 가부좌를 하고 앉아 독서하고 이치를 깊이 연구하였는데, 날마다 학습해야 할 과정을 두었다. 경전과 역사서, 제자백가에 통달하여 두루 폭넓게 이해하였고, 하늘이 부여한 명(命)과 사람이 부여받은 성(性)주 29)을 정밀하게 분석하였다. 예학(禮學)에 더욱 심오하였는데 《상변통고(常變通攷)》와 《의례문해(疑禮問解)》에 두루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고 구용(九容), 구사(九思) 및 《대학(大學)》, 〈홍범(洪範)〉 등의 말을 가지고 분류하고 강목과 조목을 만들어 자리 오른쪽에 붙여두고 늘 스스로 귀감으로 삼았다. 매일 일찍 일어나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사당에 참배하였다. 대답하고 응대함에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 순종하고, 좌우에 있거나 출입할 적에는 매우 힘써 일하였다. 하늘에 빌어 역병을 물리쳐 아버지가 끝내 탈이 없었고,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를 입에 넣자 어머니도 살아났다.
상례를 거행할 적에 3일 동안 미음을 먹지 않았고, 묘소에서 곡하는 것은 눈보라가 쳐도 3년 동안 폐하지 않았다. 동생과는 우애가 매우 돈독하여 즐거워하는 기색이 말과 낯빛에 넘쳤다. 남의 선행을 보면 자신이 선을 행한 듯이 하였고, 남의 근심을 보면 자신의 근심처럼 여겼으며, 남의 불선함을 보면 자신의 잘못인 양 여겼다. 정성스럽게 경계하고 신칙하여 큰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교화된 사람이 많았다.
인천 이씨(仁川李氏)에게 장가들었으니, 이정기(李廷夔)의 따님인데, 부인의 덕을 지녀 규문의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공은 갑인년(1794, 정조18) 5월 16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39세이다. 어은동(魚隱洞) 연봉(鳶峯)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세 아들은 세진(世鎭), 유진(有鎭), 재진(再鎭)이다. 유진의 아들 기원(基源)이 바로 이조 정랑이다.
세상에는 실로 조용히 수양하여 홀로 자신을 선하게 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하여 내면이 넉넉한 사람이 있는데, 호은공(湖隱公)과 같은 분이 어찌 그런 부류가 아니라고 장담하겠는가. 내 지금 이후에 황씨(黃氏) 복록의 원대함이 유래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선한 자는 하늘이 복을 내린다주 30)는 말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운명이 어찌 어긋났으며 命何不揚
수명을 어찌 누리지 못하였는가. 壽何不長
그 보답을 받지 않고 不食其報
자손에게 남겨 주었네. 貽于孫子
자손들에게 좋은 일 내려주니 孫子錫類
음덕이 그치지 않으리라. 餘蔭未已
주석 29)하늘이……성(性)
원문은 '천인성명(天人性命)'이다. 《주역대전(周易大傳)》 〈건괘(乾卦) 단(彖)〉에 "하늘의 도가 변화하매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하여 큰 화기(和氣)를 보전케 해 준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본의(本義)》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명(命)이라 하고, 물(物)이 받은 것을 성(性)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30)선한……내린다
원문은 '天道福善'이다. 《서경(書經)》 탕고(湯誥)에 "선하면 복을 주고 악하면 화를 내리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天道福善禍淫]"라고 구절이 있다.
湖隱黃公墓誌銘
見花葉之茂而知根荄之固。見派流之長而知淵源之深。物猶然矣。矧伊人乎。先友黃吏郎公。崛起遐遠。早年騰颺。蔚然爲昭代之良輔。照朝之名士。子孫皆遵守規矩。彬彬有詩禮之風。其福祿之來。尙未艾也。尋常欽艶。意其積累不食之德。必有在於其先而未之叩焉。歲乙未夏。吏郎公胤子稓。以其曾王考湖隱公狀。行訪余於碧山止舍。請墓道誌銘之役。嗚呼。兩世通家五十年久要之誼。豈忍牢辭哉。謹按公諱象坤。字厚之。湖隱其號也。國初名相翼成公諱喜後。考諱字中。妣密陽孫氏德三女。以英宗丙子生公于長興闢新洞。幼有至性。孝友著稱。治擧子業。詞藻贍暢。旣而幡然改圖。從事爲己之學。盖天資之美。不待提諭而自爾反正也。杜門下帷。斂膝加趺。讀書窮理。日有課程。經史子集。淹貫該洽。天人性命。剖析情密。尤深於禮學。常變疑禮。無不旁通。以九容九思及大學洪範等語。彙分綱條。粘付座右。常自鏡考焉。每日早起。省親謁廟。唯諾應對。極其承順。左右出入。極其服勞。祈天驅疫而父竟無恙。割指注血而母亦回甦。執喪而水漿不入口者三日。哭墓而風雪不廢者三年。與弟友愛甚篤。怡悅之氣。溢於色辭。見人之善如己之善。見人之憂如己之憂。見人之不善如己之病。諄諄警勅。不露聲氣。而人多化之。娶仁川李氏廷夔女。婦德甚備。閫範無闕。公以甲寅五月十六日卽世。得年三十九。葬于魚隱洞鳶峯子坐原。三子世鎭有鎭再鎭。有鎭之子基源卽吏郎也。世固有潛修獨善含章內腴之人。而如湖隱公者。安知非其流耶。吾今而後。知黃氏福祿之遠有自來矣。天道福善。豈不信哉。銘曰。命何不揚。壽何不長。不食其報。貽于孫子。孫子錫類。餘蔭未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