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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동학 교수 이당 박공 묘지명(東學敎授梨堂朴公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16
동학 교수 이당 박공 묘지명
공의 휘는 승수(承洙), 자는 석여(錫汝), 호는 이당(梨堂)이다. 박씨(朴氏)는 세계가 신라(新羅) 시조왕 혁거세(赫居世)에게서 나왔다. 후세에 여덟 명의 대군(大君)이 분봉(分封)하게 되었으니, 그 장자가 밀성군(密城君)으로, 바로 밀성 박씨로 계보가 나누어지게 된 선조이다. 후손 가운데 휘 현(鉉)이 있으니, 고려 때 사헌부 규정(司憲府紏正)을 지냈다. 이분이 휘 문유(文有)를 낳았는데, 경주 판관(慶州判官)을 지냈다. 이분이 휘 사경(思敬)을 낳았는데, 전법 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이분이 휘 심(忱)을 낳았는데, 본조에 들어와 개국원종훈(開國原從勳)으로 호조 전서(戶曹典書)에 추증되었다. 이분이 휘 강생(剛生)을 낳았는데, 호는 나산경수(蘿山耕叟)이고,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냈다. 이분이 휘 절문(切問)을 낳았는데, 문과에 급제하고 정자(正字)를 지냈으며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해졌다. 이분이 휘 중손(仲孫)을 낳았는데, 호는 묵재(默齋)이고,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를 지냈다. 이분이 휘 미(楣)를 낳았는데, 호는 존성재(號存誠齋)이고, 문과에 급제하고 승지를 지냈다. 이분이 휘 광영(光榮)을 낳았는데, 사마시(司馬試)와 문과(文科)에 모두 합격하고 형조 참판을 지내고 밀성군(密城君)에 봉해졌다. 이분이 휘 난(蘭)을 낳았는데, 호가 오정(梧亭)이고, 진사시와 생원시에 합격하고, 북평사(北評事)를 지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고 밀평군(密平君)에 봉해졌다. 이분이 휘 인원(仁元)을 낳았는데, 문과에 급제하고 전한(典翰)을 지냈다. 이분이 휘 준현(俊賢)을 낳았는데,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호종훈(扈從勳)에 책록(策錄)되었다. 이분이 안정(安檉)을 낳았는데, 참봉(參奉)을 지냈고, 바로 공의 선고(先考)이다. 모친은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김유현(金有鉉)의 따님이다. 병진년(1616, 광해군8)에 파주(坡州)의 덕현(德峴)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재성(才性)이 영특하여 문학을 일찍 성취하였다. 일찍 성균관에 들어가 동학 교수(東學敎授)에 제수되었다. 사우(師友)들과 교유하고 출중한 사람들과 사귀어 끊임없이 절차탁마(切磋琢磨)하고 더욱더 확충하여 훌륭한 명성이 당대에 자자하였다. 공은 퇴우당(退憂堂) 휘 승종(承宗)과 더불어 종고조(從高祖) 형제가 된다. 퇴우당이 화를 당한 뒤에 공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또 병자호란이 일어나 시사(時事)가 크게 변하자, 공은 마침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서 전주(全州)의 봉서산(鳳棲山) 선영 아래에 이르러 거처하였다. 3년을 거처하였는데 도회지와 가까워 출세를 위해 인연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한강(韓康)주 26)의 이름을 아는 자가 다만 한 여자에 그칠 뿐만이 아닌 것을 보고, 이에 남쪽 변방 산골 가장 깊은 곳을 찾다가 능주(綾州) 이목동(梨木洞)에 이르러 멈추었다. 숲속에 집을 짓고 고용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이름이 문밖을 벗어나지 않게 하고 발은 산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림자를 숨기고 자취를 없애며 교유를 끊어 세상을 버린 백성으로 자처하여 스스로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공이 어느 곳에서 떠돌아다니는지 몰랐고,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공이 귀족의 자제인 줄 몰랐다. 여유롭게 노닐면서 배운 것을 익히고 노닐면서 익히듯이 학문에 전념하여 뽕을 따는 자처럼 한가롭고,주 27) 대식(代食)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좋아하여주 28) 인간 세상에서 더이상 종경(鍾磬)과 옥백(玉帛)이 어떤 물건인지 몰랐다.
정사년(1677, 숙종3) 10월 15일에 별세하였다. 거처하던 곳 뒤쪽 산기슭 자좌(子坐)에 장사 지내고 부인과 합장하였다. 배위(配位)는 전의 이씨(全義李氏)로, 참판 이무(李武)의 따님이다. 아들 한 명을 낳았으니, 자희(自禧)이다. 손자는 일징(逸徵), 초징(楚徵)이다. 초징은 아들 한 명을 두었는데, 이름이 성원(晟源)으로 장자의 후사가 되었다. 현손 이하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아, 공은 대대로 훌륭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태평성대의 명사(名士)로, 그 포부와 조예는 장차 이 세상에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가문의 운수가 떨치지 못하고 시사(時事)에 어려움이 많았다. 마침내 천애(天涯)의 머나먼 변방에 초연히 은둔하여 폐인으로 자처하여 생을 마감하였으니, 탁월한 풍격은 먼 후대에 서 사람으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한 할 것이다. 다만 시대가 점점 멀어지고 후손들이 영락하여 유풍과 남은 향기가 파묻힌 채로 알려지지 않게 되었으니 어찌 자손의 무궁한 한스러움이 아니겠는가. 9세손 학(鶴)이 와서 깊이 개탄하며 전해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를 수습하여 장차 묘도(墓道)에 새기려고 하면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내 차마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양하지 못하였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번다함 사절하고 고요한 곳 찾아 謝繁就靜
외진 물가에 이르렀네. 止于遐濱
은거할 곳 마련하였는데 菟裘是卜
이곳에 새로 무덤을 만들었네. 斧堂仍新
두텁게 쌓으면 반드시 발현하고 厚積必發
오래도록 막히면 반드시 펴지게 마련이네. 久屈必伸
후손이 번창하리니 螽斯椒聊
남은 경사 시냇물처럼 이르리라. 餘慶川臻
주석 26)한강(韓康)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로 자가 백휴(伯休)이다. 그는 30여 년 동안 명산의 약초를 캐다가 장안(長安) 시장에서 늘 똑같은 값으로 팔아 왔는데, 어느 날 어떤 여자가 그와 흥정을 하다가 "당신이 한백휴라서 값을 깎아 주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자신의 이름이 알려진 것을 탄식하며 패릉산(霸陵山) 속으로 들어가 숨었지냈다 한다. 《後漢書 逸民列傳 韓康》
주석 27)뽕을……한가롭고
《시경》〈위풍(魏風) 십묘지간(十畝之間)〉에 "십 묘의 사이에 뽕을 따는 자가 한가롭고 한가로우니, 장차 그대와 더불어 돌아가리라.[十畝之間兮, 桑者閑閑兮, 行與子還兮.]"라고 하였다.
주석 28)대식(代食)하는……좋아하여
대식은 농사짓는 소득으로 녹식(祿食)을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대아(大雅) 상유(桑柔)〉에 "가색을 좋아하여, 농민과 함께 일하면서 대식하노니, 이는 가색을 보배로 여기고, 대식하는 것을 좋아함이로다.[好是稼穡, 力民代食. 稼穡維寶, 代食維好.]" 하였다.
東學敎授梨堂朴公墓誌銘
公諱承洙。字錫汝。號梨堂。朴氏系出新羅始祖王赫居世。後世至八大君。分封其長曰密城君。卽密城繼別之祖也。後孫有諱鉉。䴡朝官司憲紏正。是生諱文有。慶州判官。是生諱思敬。典法判書。是生諱忱。入我朝。以開國原從勳。贈戶曹典書。是生諱剛生。號蘿山耕叟。集賢殿副提學。是生諱切問。文科正字。贈左贊成封密山君。是生諱仲孫。號默齋。文科都承旨。是生諱楣。號存誠齋。文科官承旨。是生諱光榮。中司馬文科官刑曹參判。封密城君。是生諱蘭。號梧亭。中司馬兩試。北評事。贈領議政封密平君。是生諱仁元。文科典翰。是生諱俊賢。中司馬。壬辰著扈從勳。是生諱安檉。參奉。卽公之考也。妣安東金氏有鉉女。歲丙辰生公于坡州之德峴。公才性穎異。文學夙就。早上庠。除東學敎授。遊從師友。交結英雋。琢磨淬礪。愈益展拓。蜚英馳譽。藉藉一時。公與退憂堂諱承宗。爲從高祖兄弟。退憂堂遘禍後。公退歸鄕第。杜門謝客。未幾又經丙子之亂。時事大變。公遂無意於世。挈家南下。至全州之鳳棲山先壟下居焉。居三年。見地近通都。夤緣漸繁。而知韓康之名者。不止爲一女子而已。於是行尋南荒山谷最深處。至綾州之梨木洞止焉。因樹爲屋。與同傭人。名不出門。足不出山。匿影滅跡。絶遊息交。自處以遺世之民。自謂以無名之人。洛中故舊。不知公之爲流落何處。洞裏居人。不知公之爲貴遊子弟也。優哉游哉。脩焉息焉。同桑者之閑閑。樂代食之維好。不知人間世復有鍾磬玉帛之爲何物也。丁巳十月十五日考終。葬所居後麓子坐合窆。配全義李氏參判武之女。擧一男曰自禍。孫男曰逸徵楚徵。楚徵有一男曰晟源。出後長房。玄孫以下不盡錄。嗚呼。公以世家華胃。照朝名士。其抱負造詣。將以有爲於斯世。而家運不競時事多難。乃超然遐擧於天涯地角之遠。自分貞廢以終其世。其風韻之偉然。百世之下。令人斂袵。但年代浸遠。雲仍零替。使其遺風餘芬。鬱而不暢。豈不爲子孫無窮之恨耶。九世孫鶴來。深懷慨歎。收拾遺間。將以揭諸墓道。因請誌銘之文。余不忍以非其人辭。銘曰。謝繁就靜。止于遐濱。菟裘是卜。斧堂仍新。厚積必發。久屈必伸。螽斯椒聊。餘慶川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