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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증 병조 참의 천은 조공 묘지명(贈兵曹參議泉隱趙公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14
증 병조 참의 천은 조공 묘지명
공의 휘는 서규(瑞奎), 자는 경천(擎天), 호는 천은(泉隱)이다. 조씨(趙氏)는 본래 함안(咸安) 사람이다. 휘 정(鼎)은 고려에서 벼슬하여 평장사(平章事)를 을 지냈는데, 그 시조이다. 휘 승숙(承肅)이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덕곡(德谷) 선생이라고 불렀다. 휘 종례(終禮)는 본조에 들어와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냈다. 휘 임(琳)은 관직이 대사성이니, 모두 현조(顯祖)이다. 휘 희광(希匡)에 이르러 참봉을 지냈는데, 동복(同福)에 우거(寓居)하였다. 고조는 휘 유보(惟寶)인데, 습독(習讀)을 지냈다. 증조는 휘 호(豪)인데,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냈다. 조부는 휘가 기벽(奇璧)이다. 부친은 휘 옥생(玉生)으로, 호가 청계(淸溪)이며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박영춘(朴永春)의 따님이다. 인묘(仁廟) 신사년(1641, 인조19) 3월 29일에 산음(山陰)의 우거하는 집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 지극한 행실이 있었으니, 효도와 우애는 타고난 천성이었다. 나아감과 물러남, 묻고 대답하는 예절에 대해서 물 흐르는 듯이 받들고 순종하였다. 스승에게 나아가 독서할 적에는 독려하지 않아도 학습 과정(課程)을 따라 공부하여 문리(文理)가 날로 통창하였다. 일찍이 동학에게 말하기를 "문식(文識)과 무략(武略)은 비록 두 가지 길이지만 출사(出仕)하여 군주를 섬기며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에게 은택을 끼치는 것은 한가지이다. 수하(隨何)와 육가(陸賈)는 문학에 국한되고 강후(絳侯)와 관영(灌嬰)은 무략에 치우쳤으니,주 23) 그릇처럼 한 가지 쓰임새에 국한되지 않는 군자의 방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독서하는 여가에 《손오병법(孫吳兵法)》주 24) 같은 병서를 함께 익혀 대략 대의에 통달하였다. 병진년(1676, 숙종2) 무과에 급제하였으니, 여론은 모두 장차 당시에 쓰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이윽고 우연히 고질병(痼疾病)에 걸려 마침내 천하사방을 평정하는 원대한 일은 접고 문을 닫은 채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여생을 마치려는 계책으로 삼았다.
평소 마음가짐은 삼가고 조심하였으며, 행실은 겸손하였다. 사람을 대할 적에는 온화하고 공경스러웠으며, 일을 처리함에 신중하고 꼼꼼하였다. 종족과 인척으로부터 교유하는 친구에 이르기까지 안부를 묻고 두루 구휼하기를 끊임없이 계속하여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얻었다.
임신년(1692, 숙종18) 8월 13일에 졸하였다. 나중에 장수하고 귀하게 된 손자로 인하여 병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배위(配位)는 하동 정씨(河東鄭氏)로, 정득영(鄭得英)의 따님이다. 화순(和順) 천운산(天雲山) 을좌(乙坐) 위아래로 장사 지냈다. 3남 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징태(徵泰), 징휘(徵徽), 상겸(尙謙)이고, 딸은 낭주(朗州) 최구익(崔久翼)에게 출가하였다. 손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아, 영민한 재주로 태평성대에 출사(出仕)하여 마땅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듯하였지만, 병마가 농간을 부려 끝내 궁벽한 산속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식자의 한스러워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후손 익제(翼濟)가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비석에 새길 글을 청하였는데, 사양하지 못하였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행실은 효성스럽고 우애로웠으며 孝悌之行
재주는 문무를 겸비하였네. 文武之才
벼슬길에 나아갔다면 釋褐登籍
훌륭한 일을 하였을 텐데. 庶乎有爲
운명이 시대와 어긋나 命與時違
산속에서 숨을 거두었네. 沈淹林樊
공덕을 쌓아 누리지 않고 積累不食
후손들에게 복을 남겼네. 垂裕後昆
주석 23)수하(隨何)와……치우쳤으니
《진서(晉書)》 〈유원해재기(劉元海載記)〉에 "한(漢)나라 수하(隨何)와 육가(陸賈)에게는 무략이 없고, 강후 주발(周勃)과 관영에게는 문식이 없다.[隨陸無武 絳灌無文]"라고 하였다.
주석 24)《손오병법(孫吳兵法)》
중국 춘추 시대 병법의 대가인 손무(孫武)의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오기(吳起)의 《오자병법(吳子兵法)》의 합칭이다.
贈兵曹參議泉隱趙公墓誌銘
公諱瑞奎。字擎天。號泉隱。趙氏本咸安人。諱鼎。仕麗朝官平章事。其始祖也。有諱承肅。世稱德谷先生。諱從禮。入我朝。官寶文閣直提學。諱琳。官大司成。皆顯祖也。至諱希匡參奉。寓居同福。高祖諱惟寶。習讀。曾祖諱豪。內禁衛將。祖諱奇璧。考諱玉生。號淸溪。軍資監正。妣密陽朴氏永春女。仁廟辛巳三月二十九日。生公于山陰之寓舍。公幼有至行。孝友根天。進退唯喏。承順如流。就傳讀書。不待提督而遵循課程。文理日暢。嘗語同學曰。文武雖是兩途。而其爲出身事君。經世澤民。則一也。隨陸之局於文。絳灌之偏於武。非君子不器之道也。是以讀書之暇。兼習孫吳兵略。略通大儀。丙辰擢武科。物論無不擬之以將爲時用。旣而偶得貞疾。遂還四方之事。以杜門養病爲餘日計。平居持心謹慤。行已謙恭。接人和敬。處事愼密。自宗族姻戚至於知舊從遊。問訊周恤。源源不替。各得其心。壬申八月十三日卒。後以孫壽貴。贈兵曹參議。配河東鄭氏得英女。葬和順天雲山乙坐上下兆。生三男一女。男曰徵泰徵徽尙謙。女適朗州崔九翼。孫以下不錄。嗚呼。以若挺邁之才。出身照朝。宜若有所爲。而二竪作戲。竟不免沈淹於遐曲林樊之間。其爲謙者之恨。爲何如耶。後孫翼濟。以家狀請識玄石。辭不獲已。銘曰。孝悌之行。文武之才。釋褐登籍。庶乎有爲。命與時違。沈淹林樊。積累不食。垂裕後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