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 송암 김공 묘지명(松巖金公墓誌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7 / 묘지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7.0001.TXT.0006
송암 김공 묘지명
공의 휘는 영록(榮祿), 자는 처국(處國), 호는 송암(松巖)이다. 김씨(金氏)는 계보가 진양(晉陽)에서 나왔으니,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 무진(茂珍)의 후손이다. 고조는 응복(應福)이다. 증조는 재탁(再鐸)으로, 진사(進士)이고 호가 백파(白波)이다. 조부는 한익(漢益)이다. 부친은 호상(浩相)이고, 모친은 문화 유씨(文化柳氏)로, 유사봉(柳思鳳)의 따님이다. 헌종(憲宗) 기유년(1849, 헌종15) 9월 24일에 능주(綾州)의 도장리(道莊里)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체격이 크고, 자질과 성정이 영특하였다. 효성과 우애를 타고났으며, 지극한 행실이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다.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의열(鄭懿烈)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3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홍기(弘基), 원기(元基), 형기(炯基)이고, 딸은 양회익(梁會翼)에게 출가하였다. 을미년(1885, 고종32) 11월 23일에 정침(正寢)에서 별세하였으니, 향년 47세이다. 도장면(道莊面) 야산(夜山) 뒤 산기슭 유좌(酉坐)에 장사 지냈다.
아, 홍기(弘基)는 나와 교유한 지 몇 해 되었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왕래하여 공을 잘 알고 있었다. 대개 공은 용모가 준수하고 수염이 아름다웠다. 자상하고 화락하였으며, 꾸밈이 없고 진실하며 말수가 적고 태도가 신중하여 기쁨과 노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말은 어눌한 듯하였지만 몸가짐은 삼가고 조심하였으며, 가정을 거느림에 검소하였다. 형제를 대할 적에는 화락하였고, 친족과는 화기애애하였다. 집안이 안팎으로 조용하며 정돈되고 여유가 있었으며 온화한 기운이 넘쳤다. 비속하고 괴이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고, 거만하고 음탕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이롭고 은혜롭게 하는 것은 그의 심덕(心德)이고, 분수에 편안하고 낙천적인 것은 그의 신념이었다. 남의 성내는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게 하고 방자한 기색은 자신에게 미치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구동성으로 칭송하였고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다. 거처하는 곳에는 샘과 바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 초가집을 짓고 오솔길을 내었으며 샘물을 끌어들이고 꽃을 심어 은자의 자취를 다 누렸다. 스승을 맞이하고 서적을 소장하여 자손을 가르쳐 가업의 전통을 힘써 보존하였다. 평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아 문밖을 나가지 않아서 자신은 즐거움을 누리고 가정은 평안하였다. 매우 번성한 자손을 잘 가르쳐서 좋은 방향으로 닮도록 하여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라는 바람주 9)이 성대하게 있으니, 이른바 슬찬황류(瑟瓚黃流)주 10)라는 것은 그 이치가 참으로 그러하다.
내가 만년에 이러한 벗을 사귀어 교유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다시 잃고 사석(沙石)만 남아 있으니,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사는 슬픔만 간절할 따름이다.
홍기(弘基)가 어느 날 책 하나를 소매에 넣고 와서 보여 주며 말하기를 "이는 선인의 유장(遺狀)입니다. 선인의 벗으로 선인의 행적을 서술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공이 있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은혜롭게 한마디 말을 하여 묘도(墓道)에 기록할 글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아, 어찌 차마 사양하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천도는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니 天道福善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孰云不然
더구나 후손들은 矧伊雲仍
남은 복록 끊임없이 이어짐에랴. 餘祿綿綿
흰 물결 일렁이는 물가 白波之濱
돌 무지개 다리 드리운 길. 石虹之阡
지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過者指點
바라보는 사람은 오래 머무네. 瞻者留連
주석 9)큰……바람
《주역(周易)》 〈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다.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석과(碩果)에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복을 다 누리지 않으면 자손이 대신 누리게 되리라는 바람을 말한다.
주석 10)슬찬황류(瑟瓚黃流)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의 "산뜻한 저 옥돌 잔에 술이 들어 있네.[瑟彼玉瓚, 黃流在中.]"에서 나온 말로, 귀중한 그릇에는 그에 맞는 음식이 담기고 황류(黃流) 즉 울창주는 질장군에 담지 않는다면 뜻이다. 즉 성덕(盛德)은 반드시 녹(祿)과 수(壽)를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松巖金公墓誌銘
公諱榮祿。字處國。號松巖。金氏系出晉陽。晉陽府院君茂珍后。高祖應福。曾祖再鐸。進士號白波。祖漢益。考浩相。妣文化柳氏思鳳女。憲宗己酉九月二十四日。生公于綾之道莊里。體質峻茂。才性開爽。孝友根天。至行聞人。聘河東鄭氏懿烈女。育三男一女。曰弘基元基炯基。女梁會翼。以乙未十一月二十三日。終于正寢。得年四十七。葬于道莊面夜山後麓酉坐。鳴呼。弘基從余遊有年。是以往來綢繆。得與公熟。盖公好容顔美鬚鬢。慈祥樂易。質實簡默。喜怒不形。言若不足。持身謹勅。御家儉約。處兄弟恰怡如也。與族戚訢訢如也。門闌內外。從容整暇。和氣盎然。鄙俚詭譎。不出於口。戱慢淫媟。不接於身。利人惠物。其心德也。安分樂天。其志守也。忿言不反於身。橫色不及於已。知不知。無不一辭稱道而無間言焉。所居有泉石之勝。結茅開逕。引流栽花。備餉幽逸之趣。邀師儲書。課子訓孫。勉存箕裘之傳。平日不求聞達。不出戶庭。身享安樂。家用平康。螽斯兟兟。式穀似之。蔚然有碩果不食之望。所謂瑟瓚黃流。其理信然。余在晩暮。得此一友而遊從。未幾旋復失之。沙石在後。只切雖索之悲。弘基一日袖示一冊曰。此是先人遺狀也。以先人友而加以述先人行者。惟公在焉。乞惠一言以識幽道。嗚呼。豈忍辭哉。銘曰。天道福善。孰云不然。矧伊雲仍。餘祿綿綿。白波之濱。石虹之阡。過者指點。瞻者留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