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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16
  • 묘갈명(墓碣銘)
  • 학생 김공 묘갈명(學生金公墓碣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묘갈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3.TXT.0008
학생 김공 묘갈명
금릉(金陵)의 연자천(燕子川) 가 아암동(兒巖洞)에 부자(負子 정남향) 향오(向午)에 우뚝한 넉 자의 봉분이 있으니, 바로 고(故) 학생(學生) 김공(金公)의 신과 옷이 묻힌 곳이다. 공의 휘는 필환(弼煥), 자는 공서(公瑞), 관향은 도강(道康)이다. 고(故) 광정대부(匡靖大夫) 문하평리(門下評理) 휘 을경(乙卿)이 그 시조인데, 문학(文學)과 관직으로 대대로 가문을 빛냈다. 고조는 선의(善疑), 증조는 익형(益兄), 조부는 명의(明義)이다. 부친은 유문(有文)이고, 모친은 통천 최씨(通川崔氏)로, 최일채(崔日彩)의 따님이다.
공은 순조(純祖) 경진년(1820, 순조20)에 태어났는데, 용모가 뛰어나고, 성품이 자상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지어 양친을 효성으로 봉양하였는데, 사랑과 공경이 모두 지극하였고 지물(志物)의 봉양에 빠뜨림이 없었다. 상례를 거행할 적에는 너무나 슬퍼하면서도 한결같이 예제(禮制)를 따랐고, 삭망(朔望)에 묘소를 참배할 적에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만두지 않았다. 평소 몸가짐에 규범이 있었으며,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 법도가 있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복과 진귀한 물건은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집안 내에 효성스럽고 성실한 가풍이 저절로 흥성하여 친척과 이웃까지도 기뻐하며 서로 뜻이 맞아 어울렸다. 이해를 따지고 서로 헐뜯는 일에 대해서는 아득히 듣지 못하는 듯이 하였지만, 의리와 사정(邪正), 물건을 주고받는 일에는 일찍이 조금도 주저하거나 구차한 뜻이 있지 않았다.
갑신년(1824, 순조24) 윤5월 15일 생을 마감하였다. 배위(配位)는 청주 김씨(淸州金氏)로, 김귀갑(金貴甲)의 따님이다. 정숙하고 자애롭고 유순했으며 부덕(婦德)이 지극하였다. 공보다 3년 먼저 생을 마쳤는데, 묘는 같은 언덕에 있다. 2남 3녀를 낳았으니, 장자는 규상(奎庠), 차자는 규홍(奎洪)이다. 딸은 허일조(許一祚), 김한준(金漢俊), 양태한(梁泰漢)에게 출가하였다. 장자의 아들은 성진(成鎭)이고, 차자의 아들은 창진(昌鎭)이다.
창진이 그 대인(大人)의 명으로 유장(遺狀)을 가지고 와서 묘갈명을 청하였다. 아, 나는 공이 살아 계실 때 직접 뵙지 못하였지만 후손을 통해 그 의로운 행실에 대해서 들은 지 오래되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고 감회에 잠기매 어찌 차마 사양하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효도와 우애로 입신하고 孝悌立身
근검으로 가정 이루었네. 勤儉成家
자손이 번성하니 子孫繩繩
남은 음덕 매우 훌륭하네. 餘蔭孔嘉
學生金公墓碣銘
金陵之燕子川上兒巖洞。有崇四尺負子向午者。卽故學生金公衣履之藏也。公諱弼煥。字公瑞。貫道康。故匡靖大夫門下評理諱乙卿。其始祖也。文學仕䆠。世代煒燁。高祖善疑。曾祖益兄。祖明義。考有文。妣通川崔氏曰彩女。公以純祖庚辰生。姿相奇偉。性氣慈詳。家貧躬耕。孝養二親。愛敬倶至。志物無闕。執喪過哀。一從禮制。朔望展墳。風雨不廢。平居。持身有則。御家有法。華美之服。珍怪之物。不入於家。一家之內。孝順勤慤之風。油然興行。以至族戚隣里。無不歡欣相得。有利害毁譽。漠然無聞焉。而於義利邪正。辭受取予。未嘗有一毫依違苟且之意。甲申閏五月十五日考終。配淸州金氏貴甲女。貞淑慈柔。婦德備至。先公三年而終。墓同原。生二男三女。長奎庠。次奎洪。女適許一祚金漢俊梁泰漢。長房男曰成鎭。次房男曰昌鎭。昌鎭以其大人命。奉遺狀。宋謁碣銘之文。嗚呼。余於公之在世。未得拜床。而因緣後承。得聞其行義久矣。緬古感今。豈忍辭諸。銘曰孝悌立身。勤儉成家。子孫繩繩。餘蔭孔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