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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묘갈명(墓碣銘)
  •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외재 김공 묘갈명(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畏齋金公墓碣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묘갈명(墓碣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3.TXT.0004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외재 김공 묘갈명
공의 휘는 예길(禮吉), 자는 성택(聖宅), 호는 외재(畏齋)이다. 김씨(金氏)는 세계(世系)가 김해(金海)에서 나왔으니, 바로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의 후예이다.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 훈벌(勳閥)이 찬란하였다. 휘 서(湑)란 분이 계셨으니, 우리 태종(太宗) 때 분릉군(盆陵君)에 봉해지고, 백동사(白洞祠)에 배향되었다. 3대를 전해 내려와 휘 준손(駿孫)은 아우 휘 기손(驥孫), 일손(馹孫)과 더불어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으므로 '김씨삼주(金氏三珠)'라고 불렸는데, 홍문관 직제학을 지냈고, 연천군(燕川君)에 봉해졌다. 이분이 휘 대유(大有)를 낳았으니, 호가 삼족당(三足堂)이다. 기묘년(1519, 중종14)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였는데, 소인들이 권력을 장악한 것을 보고 물러나 운문(雲門)의 우연(愚淵)에 은거하였으니, 바로 공의 9대조이다. 증조는 삼휘(三徽)로, 호가 취상당(翠相堂)이다. 의로운 행실로 세상에 드러났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조부는 덕항(德恒)으로 호가 매곡(梅谷)인데, 덕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았다. 부친은 술회(述會)로, 호가 죽와(竹窩)이고, 수문장(守門將)을 지냈으며, 가선대부에 추층되었다. 모친은 정부인(貞夫人) 의성 김씨(義城金氏)로, 참봉 중화(仲華)의 따님이다. 영종(英宗) 병자년(1756, 영조32) 1월 15일에 금릉(金陵)의 삼인리(三仁里) 옛집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뛰어나고 재기(才氣)가 영특하여 육경(六經)에 통달하였고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였다. 견문은 넓고 시문은 뛰어났으며, 더욱이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상변(常變), 길흉(吉凶), 절문(節文), 도수(度數)에 대해서 정밀하게 생각하고 깊이 분변하여 훤히 이해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 때문에 원근의 사우들이 예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번번이 공에게 가서 물은 다음 결정하였다. 양친을 효도로 섬기되 기쁜 마음으로 공경하고 삼갔으며 뜻을 받드는 일과 물질로 봉양하는 일을 모두 지극히 하였다. 상례를 거행할 적에는 매우 슬퍼하였고 한결같이 고례(古禮)를 따랐다. 형제 다섯 사람 모두 문장과 덕행이 있었고, 함께 단란하게 지냈다. 형과 아우가 날로 매진하여(며) 조용히 화락하고 즐겁게 지내 온화한 기운이 넘쳤다. 심지어 친척이나 벗을 대할 적에도 온화하고 인자하며 자애롭고 은혜로워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얻었으므로 향리에 어떤 사람이 혹시 잘못을 하면 번번이 "아무 공이 알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이처럼 존중 받았다.
순묘(純廟) 계미년(1823, 순조23) 12월 15일에 졸하였다. 나중에 손자 재환(在煥)이 귀하게 되자 공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암천방(唵川坊) 황곡리(黃谷里) 당산(堂山) 병좌(丙坐)의 언덕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강릉 유씨(江陵劉氏)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유치일(劉致一)의 따님인데, 부덕(婦德)이 지극하였다. 4남 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은직(殷直), 취직(就直), 응직(應直), 자직(宇直)이고, 딸은 하동(河東) 정인대(鄭仁大)에게 출가하였다. 손자 재영(在瑛), 재호(在瑚), 재련(在璉), 재순(在珣)은 장남의 소생이고, 재달(在達), 재방(在邦), 재홍(在洪)은 차남의 소생이며, 재업(在業), 재선(在善), 재흠(在歆), 재민(在敏)은 셋째 아들의 소생이고, 재환(在煥)은 관직이 예조 참판으로 넷째 아들의 소생이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증손 찬석(璨錫)이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기에 사양하지 못하였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연천의 고가요 燕川古家
삼족당의 어진 후손이네. 三足賢孫
효우로 가업을 이었고 孝友箕裘
시례는 연원이 있네. 詩禮淵源
황곡리의 산기슭에 黃谷之麓
넉 자의 무덤이 있네. 四尺斧堂
자손들이 번성하여 螽斯兟兟
남은 복록 정히 영원하리라. 餘祿正長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畏齋金公墓碣銘
公諱禮吉。字聖宅。號畏齋。金氏系出金海。卽駕洛國首露王之后也。至麗朝。勳閥煒燁。有諱湑。我太宗朝封盆陵君。享于白洞祠。三傳諱駿孫。與弟諱驥孫馹孫。俱登文科。稱金氏三珠。官弘文直提學。封燕川君。是生諱大有。號三足堂。已卯登賢良科。見群小用事。退隱於雲門之愚淵。卽公之九世祖也。曾祖三徽。號翠柏堂。行義著世。中司馬。祖德恒。號梅谷。有隱德不仕。考述曾。號竹窩。官守門將。贈嘉善。妣貞夫人義城金氏。參奉仲華女。英宗丙子正月十五日。生公于金陵之三仁里舊第。公天稟挺邁。才氣穎異。淹貫六經。涉躐諸家。聞見宏博。詞華斐蔚。尤邃於禮學。常變吉凶。節文度數。精思深辨。無不昭晣。是以遠近士友。禮有所疑。輒就公咨決焉。孝事二親。怡愉洞屬。志物俱至。執喪哀毁。一遵古禮。兄弟五人。皆有文行。對床連榻。爾征我邁。從容湛樂。和氣融融。以至待族戚接朋友。溫仁慈惠。各得其心。閭里間。人或有過。則輒曰。勿使某公知之。其見重如此。純廟癸未十二月十五日卒。後以孫在煥貴。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墓唵川坊黃谷里堂山丙坐原。配淑夫人江陵劉氏。同知致一女。婦德備至。生四男一女。男殷直。就直。應直。宇直。女適河東鄭仁大。孫男在瑛。在瑚。在璉。在珣。長房出。在達。在邦。在洪。二房出。在業。在善。在歆。在敏。三房出。在煥。官禮參。四房出。曾玄以下不錄。曾孫璨錫。奉家狀。請爲隧道表銘之文。辭不獲已。銘曰。燕川古家。三足賢孫。孝友箕裘。詩禮淵源。黃谷之麓四尺斧堂。螽斯兟兟。餘祿正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