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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 문계원에 대한 제문(祭文啓元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1.TXT.0022
문계원주 102)에 대한 제문
태허(太虛)의 광대한 기가 오르내리며 변화하고 움직여 일찍이 그친 적이 없는데, 맑고 탁하며, 순수하고 섞이며, 길고 짧으며, 통하고 막히는 구분이 생긴다. 이 기를 타고난 사람이 지혜롭고 어리석으며, 어질고 어질지 못하며, 장수하고 요절하며, 궁하고 영달하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하·은·주 삼대(三代) 이후로 대박(大檏)이 날로 흩어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반드시 장수하고 영달하는 것은 아니며, 어리석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반드시 요절하고 궁한 것은 아니어서 종종 총명하고 걸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뜻을 가지고도 펼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하니, 기수(氣數)가 떳떳한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군은 먼 시골에서 우뚝 일어나 천품이 총명하고 일찍 스승의 문하에서 배워 문로가 이미 발랐다. 천인(天人)과 성명(性命)의 깊은 뜻과 신심(身心)과 성경(誠敬)의 오묘함으로부터 음양의 소장(消長)과 사물의 상수(象數)에 이르기까지 궁구하지 않음이 없어 차례로 펼치고 넓혀서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는 실상주 103)이 있었는데, 어찌 바야흐로 자라는 나무가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갑자기 풍상에 꺾이게 될 줄 알았으랴!
의림(義林)은 화를 당한 끝에 가난과 병이 날로 심해져 다시는 사방으로 행차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여 계원(啓元)과 아침저녁으로 상종하여 다소의 구경(究竟)주 104)의 효과를 거두어 선친[先人]과 선사(先師)께서 남기신 만분의 일의 뜻이나마 저버리지 않으려 하였는데,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하시는지요? 능운(凌雲)주 105) 한 편은 단지 어루만지며 애석해 하는 마음만 간절하고 양춘(陽春)주 106)의 고상한 곡조는 독창(獨唱)의 음인 줄 누가 알겠는가?
군이 병이 위독할 때 나를 불러 영결하기를 "지업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문득 죽게 되었으니, 오직 오장(吾丈)께서는 더욱 면려하여 우리 두 사람이 상종한 뜻으로 하여금 길이 후세에 말할 것이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오호라! 기가 빼앗기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여 호흡이 가물가물하였는데도 오히려 또 나를 선으로 면려하였으니, 내가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감동할 줄 모르겠는가. 다만 계원의 뜻을 보건대, 처창(悽愴)하고 불평한 기색이 조금 있었으니, 소년의 씩씩한 기상으로 갑자기 이런 지경을 만남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은 만고에 함께 그러한 것이니, 수명의 많고 적음과 세상 빚을 갚고 못 갚는 것은 다만 그 사이의 소소하게 빠르고 늦는 일일뿐이다. 고금에 어찌 일찍이 일을 마쳤던 사람이 있었던가? 오직 눈을 감는 날이 바로 일을 마치는 때이네. 공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고, 또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적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해 보건대, 알려짐이 없이 장수하는 것은 알려짐이 있고 요절하는 것만 못하다. 만약 그 사이에 또 장수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공자의 제자 안연[子淵]과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더구나 물아가 일체이고 고금이 한 순간이니, 한 순간 가운데 그 궁달[窮榮]과 요수(夭壽)를 논하는 것은 또한 구구하지 않겠는가. 대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은 입술이 합하듯 차이가 없어 줄지어 왔다가 양양하게 떠나니, 나는 계원의 영령이 반드시 어두운 저승에서 슬퍼하지 않을 것이 있음을 알겠네.
주석 102)문계원(文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를 말한다. 자는 계원, 호는 귀암(龜巖)·면수재(勉修齋),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주석 103)은은하되……실상
《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하였으니, 이는 문채가 너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은은하되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되 날로 없어진다.[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주석 104)구경(究竟)
불가(佛家)의 용어로, 최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 혹은 최고의 원리(原理)를 말한다.
주석 105)능운(凌雲)
능운필(凌雲筆)로, 필력이 굳세어서 속태(俗態)를 벗어난 글씨나 문학 작품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희위육절구(戲爲六絶句)〉에 "유신의 문장은 노련하고 완성되어, 구름 뚫는 굳건한 붓 종횡으로 치달리네.[庾信文章老更成, 凌雲健筆意縱橫.]"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1》
주석 106)양춘(陽春)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로, 상대방의 시를 칭찬할 때 쓰는 용어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곡(下里巴人曲)을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어,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고 한다. 《文選 卷23 對楚王問》
祭文啓元文
太虛坱圠之氣。升降推盪。未嘗止息。而淸濁粹駁脩短通塞之分生焉。人之稟是氣者。所以有知愚賢不肖壽夭窮榮之不齊也。然三代以降。大樸日散。賢知者。未必壽而榮。愚不肖者。未必夭而窮。往往有聰明魁偉之才。齎志未申。中道夭折。氣數之反常。一至於此耶。君崛起遐隅。天資穎悟。早從師門。門路已正。自天人性命之蘊。身心誠敬之妙。以至陰陽消長。事物象數。無不深究。次第展拓。有闇然日章之實。豈知方長之木。秀而不實。遽爲風霜所摧折哉。義林禍故之餘。貧病日甚。其不得復爲四方之行決矣。擬與啓元晨夕相從。以收多少究竟之效。庶不負先人先師萬一之遺意。天乎胡忍爲此。凌雲一篇。只切撫惜之心。陽春高調。誰知獨唱之音。君之病劇也。速余相訣曰。志業未就。中途奄逝。惟吾丈益加勉勵。使吾兩人相從之意。永有辭於來後也。嗚乎。氣奪神禠。呼吸奄奄。而猶且勉人以善。我非木石。寧不知感。但見啓元之意。微有悽愴不平之色。以少年壯氣。遽遭此境安得不然也。然有生有死。萬古同然。壽限之多不多。世債之了未了。特其間少少早晩事耳。古往今來。何嘗有了事底人惟其瞑目日乃是了事時孔子曰朝聞道。夕死可也。又曰。老而不死賊也。由此言之。無聞而壽。不如有聞而夭。若其間又欲壽考。則此是子淵伯魚所不得之事也。況物我一體。古今一息。一息之中。論其窮榮脩短。不亦區區乎。大化爲徒。脗然無間。于于而來。洋洋而去。吾知啓元之靈。必有不戚戚於冥冥之中者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