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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 죽파 오공에 대한 제문(祭竹坡吳公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1.TXT.0021
죽파 오공에 대한 제문
오호라! 공이 이 세상을 버린 지 세월이 이미 2년이 지나 묘소의 풀이 이미 묵었으니, 예로는 비록 곡하지 않아도 되지만 궤연이 아직 철거되지 않았으니, 정을 말할 수 없겠는가.
나는 공과 나이는 같은 연배가 아니고 사는 곳은 또 차이가 나지만 그 취미가 같고 교분이 친밀함은 교칠(膠漆)주 94)과 같네. 만년에 식구들을 데리고 살면서 오봉산(五峯山)의 풍월을 마주하여 사시로 강마하였고, 영정(詠亭)주 95)에 함께 모임에 의관이 정연하였고, 나란히 경상 우도를 찾아다니며 자못 유람하며 감상하는 흥취를 다하였고, 천태산(天台山)주 96)으로 행차하여 이별의 회포를 펼쳤네.
오호라! 운명이 아름답지 못하니 서설(棲屑)주 97)의 외로움을 염려하고 나이가 노년이 되어가니 신관(神觀)이 움츠러드는 것이 걱정이니, 누가 알았으랴 한 번의 병으로 천고에 문득 막힐 줄을!
재작년 봄에 영남의 벗 최숙민(崔琡民)주 98)·정재규(鄭載圭)주 99)·권기덕(權基德)주 100) 등 여러 사람이 이 고을을 지나면서 인하여 나와 함께 들어가 궤전(几前)에서 곡하였으니, 고인이 이른바 "그 사람을 생각하여 그 곳에 이르니, 그 곳은 있지만 그 사람은 없네."라는 것주 101)이 정히 이 때의 정경과 합하여 여러 벗들이 슬픔이 넘쳐나 실성하지 않음이 없었네. 공의 영령은 또한 천리에서 좋은 벗들이 온 것을 알아 이 때문에 더욱 감격하여 슬퍼하시겠는가?
오호라! 이 몸은 천지가 맡긴 기여서 영췌(榮悴)와 개락(開落)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아 순응하여 받아들일 뿐 나의 의사와 상관이 없으니, 일체의 모든 일을 따질 것이 없네. 또 저승에 대한 말은 참인가, 망령된 것인가? 망령된 것이라면 내 장차 끊임없이 만물의 떠도는 기운과 함께 태허(太虛)의 망망(茫茫)한 가운데 동화되어 털끝만큼도 얽매임이 없을 것이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참이라면 공의 집안의 선친께서 이미 응당 여기에 계실 것이니, 슬하에 나아가 모시면서 당시에 다하지 못하였던 한을 갚을 수 있을 것이네. 나의 선친과 그대의 선친께서는 이승에서 좋은 벗이었으니 저승에서도 또한 마땅히 서로 따를 것인데, 나 또한 늙어 세상의 빚을 갚고 저승에서 선친을 따라 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두 집안의 부자와 두 세대의 좋은 벗이 저승에서 장차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고서 천만년의 무궁한 유람을 할 것이니, 어찌 오늘 유명 간에 잠시 막히게 된 것을 한으로 여기겠는가.
주석 94)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석 95)영정(詠亭)
영귀정(詠歸亭)으로,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주석 96)
천태산(天台山):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에 있는 산이다.
주석 97)서설(棲屑)
일정한 거처 없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두보의 시 〈영회(詠懷)〉에 "지친 몸 구차히 계책 생각하지만, 그저 분망할 뿐 베풀 곳이 없어라.[疲苶苟懷策, 棲屑無所施.]"라고 하였다.
주석 98)최숙민(崔琡民)
1837∼1905. 자는 원칙, 호는 계남·존와(存窩),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주석 99)정재규(鄭載圭)
1843∼1911. 자는 영오(英五)·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애산(艾山)·물계(勿溪),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노백헌집》이 있다.
주석 100)권기덕(權基德)
1856∼1898. 자는 자후(子厚), 호는 삼산(三山),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저서로는 《삼산유고(三山遺稿)》가 있다.
주석 101)고인이……것
《자치통감강목》 권10 〈한 장제 건초(漢章帝建初)〉에 "황제가 동평에 이르러 헌왕을 추념해서 그의 여러 아들에게 이르기를 '이분을 사모하여 이 지방에 왔으나 살던 곳만 남아 있고 이분은 안 계시다.' 하고는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帝至東平, 追念獻王, 謂其諸子曰思其人, 至其鄉, 其處在, 其人亡, 因泣下沾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祭竹坡吳公文
嗚呼。公之棄斯世也。日月已再期矣。墓草已宿。禮雖不哭。几筵未撤。情可無言。吾於公齒非輩行。居又參差。而其臭味之孚。契義之密。如膠如漆。晩年挈寓相對。五峯風月。四時講磨。共聚詠亭。衣冠秩秩。聯筇嶠右。頗盡游賞之趣。枉駕天台。爲敍別離之懷。嗚呼。命道不媚。念棲屑之煢煢。年齡垂暮。憂神觀之蹙蹙。誰知一疾不起千古奄隔哉。昨昨春。嶺友崔琡民鄭載圭權基德諸人。行過此邑。因與我入哭几前。古人所謂思其人至其處。其處在其人亡者。正合此時情景。諸友無不哀溢失聲。公之靈。亦知千里好友之來。而爲之一倍感愴耶。嗚呼。此身是天地之委氣也。榮悴開落。有不在我。順而受之。無容我焉。則一切萬事勿論可也。且冥府之說。眞耶妄耶。妄耶則吾將與萬物遊氣。混混同化於太虛茫茫之中。無纖毫係累。豈不快哉。眞耶則公家先君。已應在此。趨侍膝下。可以酬當日未逮之恨矣。鄙先君與尊先君。陽界好友。在陰界亦應相從。吾亦老矣。致還世債。下從先君將有其日。二家父子。兩世好友。將倂臂携手於泉臺之間。以爲萬萬年無窮之遊。豈以今日幽明小小阻隔爲恨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