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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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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문(祭文)
  • 벗 안순견에 대한 제문(祭安友舜見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1.TXT.0020
벗 안순견주 86)에 대한 제문
오호라! 대박(大檏)주 87)이 한 번 흩어져 기운이 가지런하지 않아 선한 사람이 반드시 복을 얻는 것은 아니고 어진 사람이 반드시 장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이 여기에 그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체상(體相)이 단정하고 순수하며 풍의(風儀)가 자상(慈祥)하며 아량(雅量)이 굉후(宏厚)하며, 천리(踐履)가 신밀(愼密)하며, 지절(志節)이 강방(剛方)하며 재성(才性)이 영오(頴悟)함은 실로 천품으로 타고난 것이네. 그리고 출입하며 종유함에 어진 이를 친하게 여기고 단정한 사람을 취하였고, 강토(講討)와 문변(問辨)을 더하고 존양(存養)과 성찰(省察)로 이루었네. 문로(門路)가 이미 바르고 편책(鞭策)이 바야흐로 펼쳐져 안목은 날로 열리고 넓어지며, 근저[脚跟]가 날로 개척되었네. 응수하는 것이 분답해도 마음에 두지 않았고 험고함을 만나도 개의치 않았네. 얼굴빛에 드러난 것은 난폭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고, 마음에 드러난 것은 시기하거나 잔인한 뜻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네. 사람을 접함에는 온화한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들었고 사물에 응함에 정성스러운 뜻이 사물을 감동시켰네. 만약 나이를 빌려주어 지극하지 못한 것을 힘쓰게 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천성으로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과 배우기를 좋아하는 독실함으로 반드시 장차 정미함을 끝까지 궁구하여 다스림이 광채를 드러내어 사문(斯文)과 세도(世道)의 책임이 그에게 있지 않았겠는가. 오호라! 하늘의 이치는 알기 어렵고 사람의 일은 도치되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른단 말인가!
나와 군은 소년 때부터 알았던 벗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마음을 열어 정성을 드러내어 정히 의리의 교분을 하기에 이른 것은 10여 년 전부터인데 친밀한 정은 교칠(膠漆)주 88)도 그 깊음을 비유하기에 부족하고, 화합[諧和]하는 의는 궁상(宮商)주 89)도 그 지극함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네. 스스로 평생을 돌아보건대 한 가지 일도 고인과 견줄 만한 것이 없는데 오직 우리 두 사람을 관포(管鮑)주 90)와 뇌진(雷陳)주 91)의 사귐에 비기는 것은 사양하지 않을 바이네. 내가 굶주리고 곤궁한 것을 보면 창고를 다 기울여 도와주고, 내가 병든 것을 보면 의원을 찾고 약을 구해주고, 내가 환란을 당한 것을 보면 밥을 먹다가도 뱉어내고 달려와 주었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문득 편지를 보내 물어주고, 한 가지 의리라도 분명하지 않으면 문득 모여서 분변하였네. 버들 푸른 둑에 석양이 지거나 산 속 누대에 밤에 달이 뜰 때에는 혹 시를 읊조리며 배회하고 혹 술에 취해 강개한 회포 풀면서 유연히 천만 사람이 다하지 못하는 정과 천만 세월이 다하지 못하는 회포를 가졌네. 비록 시국의 상황이 날로 잘못되고 세상의 변화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죽으면 절의로 함께 죽고, 살면 학문으로 서로 마치자고 여겼는데, 군이 조금 더 머물지 않고 나를 버리듯이 떠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갑오년의 변란주 92) 때 영평(永平)의 지역으로 동시에 달아나 숨었고, 병신년의 변고주 93) 때 화순[山陽]과 동복[福川] 사이로 손잡고 함께 도망가 숨었네. 앞으로의 풍랑은 이것보다 심함이 있을 것인데 급난(急難)을 주선함에 다시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들어가서는 의지할 곳 없고 나가서는 갈 곳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하여 만사가 끝났네. 산은 높고 물은 넓으니 이 한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애달픈 마음 진술하여 영결을 고하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지네. 오호 통재라! 영령이여 아시겠는지?
주석 86)안순견(安舜見)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을 말한다. 자는 순견, 호는 송하(松下),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8에 〈송하거사안공묘갈명(松下居士安公墓碣銘)〉이 실려 있다.
주석 87)대박(大樸)
원시의 질박한 큰 도를 가리킨다.
주석 88)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의 진중(陳重)과 뇌의(雷義)가 돈독한 우정을 발휘하자, 사람들이 "교칠이 굳다고 하지만, 진중과 뇌의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라고 칭찬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
주석 89)궁상(宮商)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오음(五音) 가운데 두 음을 가리킨다. 이 두 음은 위아래에서 서로 응하여 소리를 잘 조화시키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흔히 두 사람의 친밀한 정을 궁음과 상음이 서로 떠나지 않고 조화를 잘 이루는 데에 비유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 사이의 친밀함을 의미한다.
주석 90)관포(管鮑)
춘추 시대 끈끈한 우정의 대명사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를 말한다.
주석 91)뇌진(雷陳)
후한(後漢) 때 우정이 깊었던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을 말한다.
주석 92)갑오년의 변란
1894년(고종31) 6월 21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궁궐을 점령한 사건을 말하는데, 이를 통상 갑오변란(甲午變亂)이라고 한다. 이후 민씨(閔氏) 정권은 붕괴되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섭정하여 제1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을 성립시키고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설치하여 갑오개혁(甲午改革)을 단행하게 된다. 이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유생(儒生)들은 갑오변란과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적 개화 정권의 개혁 정책을 민족 존망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상소를 올리는 한편 의병을 모집하는 활동까지 전개하였다. 《김상기, 조선말 갑오의병전쟁의 전개와 성격,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3권,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편, 지식산업사, 1989》
주석 93)병신년의 변고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1896년 2월 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 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사건을 말한다.
祭安友舜見文
嗚呼。大樸一散。氣運不齊。善者未必獲福。仁者未必得壽。而誰謂君之止於斯耶。體相之端粹。風儀之慈祥。雅量之宏厚。踐履之愼密。志節之剛方。才性之頴悟。固得於天資。而出入遊從。親賢取端。加之以講討問辨。濟之以存養省察。門路旣正。鞭策方張。眼目日以開廣。脚跟日以展拓。酬應紛沓而不以經心。遭遇險若而不以介懷。見於色者。未見有暴戾狷忿之態。發於心者。未見有忌克殘忍之意。接人而和氣薰人。應物而誠意動物。若使假之以年。而勉其所未至。則以若天姿之美。好學之篤。必將究極精微。出治光彩。而斯文世道之責。其不有在乎。嗚呼。天理之難諶。人事之倒置。一至於此耶。吾與君。不可謂非少年朋知。而至於開心見誠。定爲義理之交。則自十餘年前。而密勿之情。膠漆不足以喩其深。諧和之義。宮商不足以喩其至。自顧平生無一事。可況於古人。而惟以吾兩人擬之於管鮑雷陳之契。則所不辭也。見我飢困。傾囷倒廩。見我疾病。尋醫問藥。見我患厄。撤食吐哺。一日而不見。則輒書而問之。一義而未瑩。則輒聚而辨之。至於楊堤夕陽。山樓夜月。或吟哦徜徉。或酣醉慷慨。悠然有千萬人不悉之情。千萬古不盡之懷。雖時象日非。世變叵測。而以爲死則以節義同歸。生則以學問相終。豈知君不少留而棄我如遺耶。甲午之亂同時奔竄於永平之地。丙申之變。携手逃匿於山陽福川之間。前頭風浪。如有甚焉。則周旋急難。更與何人共之耶。入無所聊。出無所適。踽踽凉凉。萬事已矣。山長水濶。此恨何極。述哀告訣。淚落懸泉。嗚呼痛哉。靈其知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