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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 박학중에 대한 제문(祭朴學中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1.TXT.0018
박학중주 81)에 대한 제문
하늘이 현철한 분 낸 것은 장차 큰일을 함이 있게 하기 위한 까닭인데 이에 그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그 행하는 것을 막히게 하여 혹 그 장수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데 이르니, 조물주는 여기에 그 어떤 마음을 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리고 장성할 때 효도하고 공손하며 늙어서 예를 좋아하였으니, 행실은 옥루(屋漏)주 82)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학문은 고금을 종합할 수 있으며, 인(仁)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에 은택을 끼칠 수 있고, 지(智)는 일을 도모하고 계책을 헤아릴 수 있으며, 곧으면서도 남과 절교하지 않고 화합하면서도 남과 얽매지 않는 것은 형이 거의 가까웠다고 하겠습니다. 오직 이 마경(馬卿)의 병주 83)과 현안(玄晏)의 질주 84)이 계속 이어져 남아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없어, 신음 속에 세월을 보낸 것은 겨우 요절을 면하는데 이르렀고 그 건강했던 날을 찾아보면 또 삼분의 일이 되지 못하니, 어찌 덕은 넉넉하고 명에는 곤액을 당함이 이와 같습니까.
오호라! 한 방에서 문을 닫은 채 고요히 지내며 병을 요양하여 사려는 점점 끊어지고 기욕은 점점 담박해져 본원의 자리에 조용하고 연구 탐색하는 즈음에 침잠하여 천하의 의리를 열람하고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을 알았던 것은 애초에 병을 요양하는 가운데로부터 터득한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혹 하늘의 뜻은 이런 질병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무너진 풍속의 도도한 가운데 섞이지 않고 사도(斯道)에 힘을 다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면, 어찌 학문이 진보함에 병 또한 심해져 이런 지경에 이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오호라! 선왕의 전례(典禮)가 하루아침에 쓸어버린 듯 없어져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은 극히 헤아리기 어려운데, 이에 능히 초연(超然)히 먼저 가서 숭정(崇禎)의 유민주 85)과 우리나라[小華]의 완인(完人)이 되는 것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또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효성으로 편모를 모시면서 봉양을 마치지 못하였고 여러 아들에게 공부를 권면하여 학업을 마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노형의 눈은 생각건대 응당 지하에서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완인이 되었는데 또 완전한 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여러 아들이 어질고 효도하니 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소원을 족히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형께서는 마음 놓고 어두운 지하에서 걱정하지 마소서.
아우는 부로를 잃은 외로운 처지에 쓸쓸히 지내고 있어 여생이 근심스러웠는데 중년 이후로는 오직 형에게 의지하였습니다. 경인년(1890, 고종27)에 식구들을 데리고 가까이 가서 살게 되었는데 형은 마침 병들었고, 지금 같은 마을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형은 또 돌아가셨습니다. 애달픈 나의 박한 운명은 단지 붕우와 지내는 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또한 능히 그 끝을 보장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형과 작별한 이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사이 세월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험한 길이 앞에 있는데 맹인은 지팡이를 잃고 풍파가 끝이 없는데 외로운 배는 키를 잃었으니, 무엇으로 기대하고 면려하여 훗날 지하에서 보고할 것으로 삼겠습니까.
주석 81)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자는 학중, 호는 우인당(愚忍堂)·즉이재(則以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주석 82)옥루(屋漏)
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 방구석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마음속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네가 네 집에 있을 때에 보니 옥루에 있을 때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주석 83)마경(馬卿)의 병
마경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석 84)현안(玄晏)의 질
현안은 진(晉)나라 황보밀(黃甫謐)의 호이다. 그는 일생 풍비(風痺)에 시달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서음(書淫)이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은거하며 저술을 일삼았다. 《晉書 卷51 皇甫謐列傳》
주석 85)숭정(崇禎)의 유민(遺民)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남긴 백성이라는 뜻으로, 명나라는 망하고 숭정제는 죽었지만 여전히 숭정제를 황제로 여기고 명나라를 정통으로 여겨 그 백성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祭朴學中文
天生賢哲。將以有爲也。而乃拂欝其心。室塞其行。以至或不得其壽焉。造物於此。未知其何所用心耶。幼壯孝弟。老而好禮。行可以不愧屋漏。學可以經緯古今。仁可以利人澤物。智可以圖事揆策。貞而不絶於人。和而不泥於物者。兄其庶幾焉。惟是馬卿之病。玄晏之疾。沈綿彌留。無日可起。其所以捱過得呻吟中光陰者。僅至免夭。而求其康適之日。則又不得爲三之一矣。何其優於德而厄於命若是耶。嗚呼。杜門一室。靜居養病。思慮漸熄。嗜欲漸淡。從容於本源之地。沈潛於硏索之際。閱天下之義理。會天下之至樂者。未始不自養病中得來。或者天意降此疚疾。使之不雜於頹俗滔滔之中。而得以盡力乎斯道也。豈知學進而病亦進以至於此耶。嗚乎。先王典禮。一朝掃如。時象風色。極其叵測。乃能超然先逝。不失爲崇禎之遺民。小華之完人者。又安知非天意耶。孝奉偏闈。未得終養。勉課諸郞。未見卒業。老兄之目。想應不暝於地下矣。然旣爲完人。又求完福。其不難乎。況諸郞賢孝。足以了厥考未了之願。願兄釋然無虞於冥冥之中也。弟孤露離索。餘生惸惸。中年以來。所賴惟兄。庚寅之歲。絜家就近。而兄適病焉。今也來留同塾。而兄又逝焉。哀此薄命。只有朋友一樂。而亦不能保其終耶。別兄以後。屬纊以前。未知其間日月幾何。而將誰賴依。險路在前而盲人失相。風濤無涯而孤舟失柁。其何以期勉以爲他日下報之地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