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 면암 최 어른에 대한 제문(祭勉庵崔丈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1.TXT.0005
면암 최 어른에 대한 제문
갓과 신발이 도치되는 것은 옛날에도 간혹 있었지만 화(禍)는 송나라가 망한 것보다 참혹함이 없고, 금수의 자취주 30)가 횡행하는 것은 세상에 간혹 있었지만 변고는 오늘의 혼란함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미 비상한 화와 비상한 변고가 있으니, 반드시 비상한 현인이 나와 부지하여 강상(綱常)의 한 맥으로 하여금 천하 만세토록 실추시키지 않도록 함이 있으니, 송나라 문산 선생(文山先生)주 31)과 지금의 면암 선생勉庵先生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은 벽문(蘗門)주 32)의 고제로 중옹(重翁)과 종유하여 연원과 문로가 가장 확실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함양한 것이 두텁고 힘입은 것이 깊었으니, 온축함에 덕행이 되고 행함에 사업이 된 것이 순수하여 한결같이 정대하고 광명한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일용의 전례(典禮)로부터 고금의 사변(事變)에 이르고, 상고의 전훈(典訓)으로부터 근세 유자의 의론에 이르기까지 망라하여 깊이 체득하고 해박하게 관통하였는데 그 원위(原委)와 곡절(曲折), 향배(向背)와 취사(取舍)는 모두 스승의 설을 독실하게 믿어 지켜서 전하여 유가의 한 가닥 정맥을 보존한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 선생이 조정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되는 것을 보고 걱정과 울분이 강개(慷慨)하여 전후의 40년 동안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곧은 말이 아님이 없어 비록 정확(鼎鑊)주 33)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주 34)가 뒤에 있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비록 쓰이지는 못했지만 천한 사람이 보는 것을 용동시키고 한 시대의 마음과 눈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
한가한 숲속에 물러나자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하는 이들이 온 나라에서 몰려들었는데, 타일러 부축하고 가르쳐 이끌어줌에 순순하게 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후생과 후손들로 하여금 방향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은 선생이 부지해준 덕분이니, 어찌 오늘의 일에만 알맞을 뿐이겠습니까. 유운(遺韻)과 여열(餘烈)이 드러나 책에 있고 전하여 사람에게 있으니, 천년을 지나고 만세를 지나더라도 태산과 그 높음을 다툴 수 있을 것이고, 해와 별과 그 광채를 다툴 수 있을 것입니다.
오호 통재라! 선생이 이 세상을 버리시니, 이 세상은 끝내 오랑캐 지역이 될 것인가? 선생이 이 사람들을 버리시니, 이 사람들은 끝내 금수 같은 부류가 될 것인가? 하늘이 이미 선생을 낳아 강상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강상의 도가 이에 다시 천하에 크게 밝아질 것인가?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의 운수는 기필할 수 없으니, 모르겠으나 선생의 영령이 원기를 되돌려 조진(朝眞)주 35)하여 귀신을 합하고 조화를 도와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만회하고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
의림(義林)은 기구하게 남은 목숨이 천리에 떨어져 있어 비록 책상을 지고 문하에 찾아가 배운 날은 없지만 편지를 올려 가르침을 청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져 쇠하지 않았으니, 지금 30여 년이 됩니다. 재작년에 이르러서는 질병과 상사가 이어지고 거듭하여 1년 사이에 거의 없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로는 같은 도내에서 달려가 위로 드리지 못하였고, 멀리로는 절역(絕域)의 밖에 달려가 안부도 드리지 못하였으며, 크게 두렵고 크게 놀라운 일이 종종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편안히 집에 있으면서 알지도 못하였으니, 저버린 죄가 여기에 이르러 속죄할 수 없습니다. 제 사가의 전후 상장(喪葬)은 올해에 비로소 끝났으니, 이로부터 거의 한가한 날이 있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였는데, 문득 몸에 병이 심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남을 시켜 제문을 가지고 가 감히 저의 무궁한 슬픔을 고하게 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주석 30)금수의 자취
오랑캐가 마음대로 설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청나라나 일본 등의 외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나라 구규(丘葵, 1244∼1333)의 시에 "거북 규범, 말 그림 같은 상서가 모두 안 보이니, 짐승과 새 발자국만 참으로 분분하네.[龜範馬圖俱寂寂, 獸蹄鳥跡正紛紛.]"라고 하였다. 《釣磯詩集》
주석 31)문산 선생(文山先生)
남송(南宋)의 충신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문산은 그의 호이다. 그는 송 이종(宋理宗) 때 우승상(右丞相)으로 화의(和議)하러 원(元)의 궁중에 갔다가 포로가 되었으나 밤에 도망쳐서 온주(溫州)로 돌아왔다. 익왕(益王)이 즉위하여 그를 좌승상(左丞相)에 임명하고 강서(江西)의 도독(都督)으로 삼았으나 또 원군에게 패전하였다. 위왕(衛王)이 즉위하여서는 신국공(信國公)의 봉(封)을 받고 조양(潮陽)에 주둔하였다가 원장(元將) 장홍범(張弘範)에게 패전하여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抑留)되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忠節)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주석 32)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주석 33)정확(鼎鑊)
형벌의 도구로 사람을 삶아 죽이는 가마솥이다.
주석 34)영해(嶺海)
중국 오령(五嶺)의 남쪽이나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험난한 땅 혹은 궁벽한 귀양지를 가리킨다.
주석 35)조진(朝眞)
도교에서 진인(眞人)을 알현하는 것, 혹은 불가(佛家)의 좌선(坐禪)처럼 도가의 방식대로 수련하는 것을 뜻한다.
祭勉庵崔丈文
冠屨倒置。古或有之。而禍莫慘於有宋之亡。蹄迹交横。世或有之。而變莫甚於今日之亂。旣有非常之禍。非常之變。則必有非常之賢。出而扶持之。使綱常一脉。不墜於天下萬世。宋之文山先生。今之勉庵先生。卽非其人耶。先生以蘖門高弟。重翁遊從。淵源門路。最爲端的。口傳心授。涵厚資深。蘊之爲德行。行之爲事業者粹然一出於正大光明之域。自日用典禮。至古今事變。自上古典訓。至近儒議論。包羅浸淹. 該貫愽通。而其原委曲折。向背取舍。皆篤信師說。守而傳之。以存儒門一條正脉者。先生賜也。先生立朝。曾未幾日矣。見時事日非。憂憤慷慨。前後四十年。知無不言。言無不讜。雖鼎鑊在前。嶺海在後。而莫之顧也。其言雖不見用。而有以聳褐夫之觀瞻。醒一世之心目者。先生賜也。其退閑林樊也。及門請業。傾國坌集。誘掖提絜。諄諄不倦。使後生來裔。知有方向者。先生扶持之力。豈適今日事而已哉。遺韻餘烈。著之在書。傳之在人。經千秋閱萬世。而可以與泰岳爭其高矣。可以與日星爭其光矣。嗚呼痛哉。先生棄斯世。斯世其終爲夷狄之域耶。先生棄斯人。斯人其終爲禽獸之類耶。天旣降先生。使綱常不墜。則或者因此而綱常之道。乃復大明於天下耶。天心未可知。氣運未可必。未知先生之靈。返元朝眞。合鬼神贊造化。有以挽回轉移於㝠㝠之中也耶。痛矣痛矣。義林崎嶇殘生。隔在千里。雖未有負笈踵門之日。而納書請敎。源源不賛。今三十有餘年耳。至再昨歲。疾病喪禍。連綿荐疊。一年之內。殆無間日。是以近焉。而不得奔勞於同省之內。遠焉而不得趍候於絕域之外。大震懼大驚動。種種至此。而恬然在家而不知。辜負至此。無以可贖。私家前後喪葬。臨歳始畢。自謂從此而庶有間日。旋以身憂沈苦莫振。竟不免因人操文。敢告區區無窮之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