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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 중암 김 어른에 대한 제문(祭重庵金丈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6 / 제문(祭文)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6.0001.TXT.0004
중암 김 어른에 대한 제문
천하에 인간이 살아온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혼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스려짐에 진실로 성인이 위에 있어 그 도를 행함이 있었고, 그 혼란해 짐에 또한 성인이 아래에 있어 그 도를 호위함이 있었습니다. 만약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않아 그 절로 되는대로 맡겨두고 그 가는대로 놓아두었다면 인류가 멸망한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등급이 점점 낮아져 치우치고 방탕한 말들이 더욱 성하여 온 천하가 날마다 긴 밤으로 달려가, 산악이 꺾이고 상하며 해와 별이 어두워지고 잠겨 깨끗함을 조금 보존한 한 모퉁이의 우리나라까지도 또한 장차 면하지 못하게 될 지경입니다.
오직 선생께서는 화양(華陽)주 23)을 사숙하였고 벽문(蘗門)주 24)의 적전으로 천고를 안아 짊어지고 한 시대를 담당하였습니다. 후덕(厚德) 대도(大道)와 위론(偉論) 직절(直節)은 산같이 높고 바다가 품은 듯,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여 도깨비나 짐승 같은 이들로 하여금 비록 방자함을 지극히 하더라도 능히 유자의 복장을 한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을 되돌리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호전(胡銓)주 25)의 상소와 진동(陳東)주 26)의 일은 과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소청(疏廳)에 편지를 보내 격려하고주 27)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주 28) 또 이는 어떤 일입니까? 천지의 정대한 기운과 국가의 강상(綱常)의 책임은 벽계(蘗溪)의 문정(門庭)에서 다 나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강토(講討)하고 찬조(贊助)한 바의 힘은 또 누군들 선생에게 있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오호라! 긴 밤이 끝나지 않았는데 큰 횃불이 문득 꺼지고, 여러 음(陰)이 바야흐로 성한데 미약한 양(陽)이 갑자기 막혀,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이 나날이 더욱 심한데도 이것을 강화시키고 저것을 어렵게 만들어 유지하고 보호할 사람이 없으니, 인륜과 세도가 또 장차 어느 곳에 도달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오직 소자는 일찍 높은 의리를 강론하였으나 아직 덕에 나아가기를 미루고 있으니, 광풍제월(光風霽月)주 29)의 기상을 비록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남쪽 바닷가와 북쪽 모서리에 떨어져 있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멀리서 향하여 바라보고 절하며 단지 천만 무강한 장수를 누려 사문과 세도를 위한 계획을 축원하였는데, 어찌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부고가 갑자기 들릴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슬프도다! 우리들 누구를 통하며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산도 슬퍼하고 물도 시름하니, 만고에 아득합니다.
주석 23)화양(華陽)
화양동으로 우암(尤菴)이 강학했던 곳인데, 여기서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를 말한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우재(尤齋),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생원시를 거쳐 산림(山林)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이조 판서와 죄의정 등의 벼슬을 지냈다. 저서로는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주석 24)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이항로의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초명은 광로(光老)이다. 1808년(순조8) 한성부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로는 과거를 포기한 채 향리에서 강학을 하여 최익현,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등을 길렀다. 동부승지, 공조 참판 등을 지냈다.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함께 조선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로 꼽힌다. 존왕양이(尊王壤夷)의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조함으로써,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저서로는 《화서집》,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주석 25)호전(胡銓)
1102∼1180.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의 직신(直臣)이다. 상소하여 왕륜(王倫), 진회(秦檜), 손근(孫近) 세 사람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다가 축출되었다. 《宋史 卷374 胡銓列傳》
주석 26)진동(陳東)
송(宋)나라의 태학생으로 자는 소양(少陽)이다. 태학생의 신분으로 흠종(欽宗) 때에는 간신인 채경(蔡京) 등을 논박하였고, 고종(高宗)이 강남으로 천도(遷都)한 후에는 명재상인 이강(李綱)을 등용하고 황잠선(黃潛善) 등을 파면할 것을 청원하는 상소를 수십 번 올렸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참형을 당하였다. 《宋史 卷455 陳東列傳》
주석 27)청(疏廳)에……격려하고
1881년 김평묵이 63세 때에 영남 유생 이만손 등 1만 3천여 명이 대궐에 이르러 조정의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중암은 유중교와 같이 연명하여 소청(疏廳)에 글을 보내 격려하였다.
주석 28)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일로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던 일을 말한다.
주석 29)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비유한다.
祭重庵金丈文
天下之生久矣。不得不一治一亂。然其治也。固有聖人在上而行。其道。其亂也。亦有聖人在下而衛其道。若危而不持。顛而不扶。任其自爲。聽其所之。則人之類滅己久矣。世級浸降。詖滛愈熾。寰宇率濱。日趍長夜。山岳摧剝。日星晦沈。至於一隅靑邱稍保乾凈者。亦將不免。惟先生以華陽私淑。蘖門嫡傳。抱負千古。擔當一世。厚德大道。偉論眞節。如山高而海涵。冰清而玉潔。使魑魅魍魉羽毛鱗介之屬。雖極恣睢。而不能。迴冠儒服儒之視聽久矣。胡銓之疏陳東之舉。果是何人。疏廳之書。海島之行。又是何事。天地正大之氣。國家綱常之責。不可謂不盡出於蘖溪門庭之間。而所以講討贊助之力。又孰謂不在於先生耶。嗚呼。長夜未艾。而巨燭旋滅。群陰方盛。而微陽遽閼。時象風色。日甚一日。而無強此艱彼維持調護之人。未知人倫世道。又將稅泊於何地耶。嗟惟小生。夙講高義。尚稽就德。光風霽月。雖切寤寐之思。而南涯北角。其奈事力之未逮。遙向瞻拜。只祝千萬無彊之壽。爲斯文世道計也。豈意天不憗遺。凶音遽聞耶。哀我人斯。誰因誰極。山哀浦思。萬古悠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