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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찬(贊)
  • 침수정찬 병서(枕潄亭贊【幷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찬(贊)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5.0004.TXT.0003
침수정찬 병서
천지 일종의 청수(淸秀)한 기(氣)가 흐르고 솟아 명산(名山)과 호수(好水)가 되고, 배태하여 일인(逸人)과 달사(達士)가 된다. 일인과 달사가 명산과 호수를 만나면 그 취미가 합하는 것은 비록 관포(管鮑)의 교분주 104)이라도 그 뜻을 넘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만나면 반드시 올라 임해보고, 올라 임해보는 것이 부족하면 반드시 거닐어보고 거닐어보는 것이 부족하면 반드시 그 땅에 나아가 정자를 지어 마치 장차 거기서 몸을 마칠 것 같이 한다.
호남에 금오산(金鰲山)주 105)이 있으니, 대개 남쪽 지방의 승구(勝邱)이다. 중고에 향 선생(鄕先生) 팔우(八愚) 홍공(洪公)주 106)이 일찍이 이곳에서 장수유식(藏修遊息)주 107)하였다. 선생은 일찍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을 구제할 뜻을 품었으나 결국 등용되지 못하였고, 뜻을 얻은 것은 오직 이 한 구역 수석(水石)일 뿐이었다. 지극한 정은 무정(無情)에 있고, 지극한 맛은 무미(無味)에 있어 여기에서 잠자고 양치하면서 그저 여생을 마쳤다. 오호라! 흥폐(廢興)는 일정하지 않고 유무(有無)는 서로 바뀌니, 사람과 정자는 볼 수 없으나 오직 바위에 걸린 구름, 고개 위의 달, 시냇가의 새, 강가의 원숭이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옛날을 회상하며 다하지 않는 정을 갖게 한다.
을유년(1885, 고종22) 봄에 6대손 채주(埰周) 씨주 108)가 여러 종친들과 도모하여 옛터의 조금 북쪽에 나아가 중건하여 한 번 새롭게 하였으니, 그 계술(繼述)주 109) 긍구(肯構)주 110)의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은 또 산수를 만난 것 때문만이 아니다. 어진 주인을 만난 것은 금오산의 다행이고, 어진 자손을 만난 것은 침수정의 다행이다. 나는 비록 불민하지만 우선 금오산을 위해 축하하고 이어서 침수정을 위해 축하한다.
찬(贊)은 다음과 같다.

금오산 아래는 維鰲之下홍씨의 토구주 111)이네 洪氏菟裘
초연히 멀리 떠나 超然遐擧
조용히 수양하는 것에 힘썼네 俛焉潛修
정자가 황폐해 진 지 이에 오래 되었으니 亭廢斯久
후손들이 도모하였네 雲仍是圖
이미 정자를 지어 旣肯其構
그 도모를 전술할 것 생각하네 思述厥謨
종족을 모아 기뻐하고 合族懽忻
벗을 불러 절시주 112)하였네 聚友切偲
강습에 과정이 있고 誦習有程
가곡주 113)을 때로써 하네 歌哭以時
감화가 미친 곳에 濡染攸曁
종유하니 또한 영광일세 從遊亦榮
오호라! 세세토록 嗚乎世世
그 명성 실추시키지 말지어다 無替厥聲
주석 104)관포(管鮑)의 교분
춘추 시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을 말한다. 《열자(列子)》 〈구명(九命)〉에 "관중이 일찍이 탄식하기를 '내가 젊어서 곤궁했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하였는데 내 몫으로 많이 이익을 취해도 포숙은 나를 욕심 많다고 하지 않았으니 이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석 105)금오산(金鰲山)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에 위치해 있는 용암산(聳岩山, 547m)의 옛 이름이다. 용암산이라는 이름은 솟을 용(聳)과 바위 암(岩)자인데, 원래는 산위의 샘에 금자라[金鰲]가 있다고 하여 금오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 '산 정상에 용암이 솟아오르듯 솟은 바위가 있다'고 하여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석 106)향 선생(鄕先生) 팔우(八愚) 홍공(洪公)
홍경고(洪景古, 1645~1699)를 말한다. 호는 팔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주석 107)장수유식(藏修遊息)
《예기》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요,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히는 것이다. 식(息)은 피곤하여 쉬며 함양하는 것이고, 유(遊)는 한가하게 노닐며 함양하는 것이다.
주석 108)채주(埰周) 씨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鳳南)이다.
주석 109)계술(繼述)
조상의 하던 일이나 뜻을 끊지 아니하고 이어 가는 것을 말한다.
주석 110)긍구(肯構)
긍당긍구(肯堂肯構)의 준말이다. 기꺼이 집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는 뜻으로 아버지의 사업을 아들이 잘 계승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작정하여 이미 그 규모를 정했는데도 그 아들은 당(堂)의 터도 만들려고 하지 않으니 하물며 기꺼이 건물을 만들려고 하겠는가.[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111)토구(菟裘)
춘추 시대 노 은공(魯隱公)이 왕위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내려고 한 곳인데, 전하여 은거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春秋左氏傳 隱公11年》
주석 112)절시(切偲)
절절시시(切切偲偲)의 준말이다. 절절은 간곡하고 지극한 것이고, 시시는 자상하고 부지런한 것으로, 붕우 간에 강마하고 권면하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어떠해야만 선비라고 할 만한가를 묻자, 공자가 답하기를 "간곡하고 지극하며 자상하고 부지런하며 화락하면 선비라고 이를 만하다.[切切偲偲, 怡怡如也, 可謂士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論語 子路》
주석 113)가곡(歌哭)
신령에게 노래하고 곡(哭)을 하는 것이다. 《주례》 〈춘관종백(春官宗伯)〉에 "나라에 큰 재앙이 있으니 노래와 곡을 하기를 청합니다.[凡邦之大烖 歌哭而請]"라고 하였는데, 정현의 주(注)에 "노래하는 자가 있고, 곡을 하는 자가 있는 것은 슬픔으로써 신령을 감동시키고자 한 것이다.[有歌者, 有哭者, 冀以悲哀感神靈也.]"라고 하였다.
枕潄亭贊【幷序】
天地一種淸秀之氣。流峙而爲名山好水。胚胎而爲逸人達士。以逸人達士而遇名山好水。則其趣味之合。雖管鮑之契。不足以兪其意。是以。遇之必登臨焉。登臨之不足。必徜徉焉。徜徉之不足。必卽其地結其亭。若將終身焉。湖之陽有金鰲山。蓋南方勝邱也。中古鄕先生八愚洪公。嘗藏修於此。先先夙抱經濟。竟不見用。而所以相得。惟此一區水石。至情在於無情。至味在於無味。枕焉潄焉。聊以卒歲。嗚乎。廢興不常。有無相禪。人與亭不可得見。而惟有巖雲嶺月。溪鳥江猿。令人有懷古不盡之情。歲乙酉春。六代孫埰周氏。謀與諸宗。就舊址之稍北。重建而一新之。其出於繼述肯構之至意者。又不但爲山水之遇而已也。遇賢主人。金鰲山之幸也。遇賢子孫。枕潄亭之幸也。余雖不敏。先爲金鰲山賀。繼以爲枕潄亭賀。贊曰維鰲之下。洪氏菟裘。超然遐擧。俛焉潛修。亭廢斯久。雲仍是圖。旣肯其構。思述厥謨。合族懽忻。聚友切偲。誦習有程。歌哭以時。濡染攸曁。從遊亦榮。嗚乎世世。無替厥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