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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찬(贊)
  • 노가정 선생 조공찬 병서(老稼亭先生曺公贊【幷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찬(贊)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5.0004.TXT.0001
노가정 선생 조공찬 병서
여양(汝陽)에는 옛날 독행의 선비가 있었으니, 노가(老稼) 선생 조공(曺公)이 그 사람이다. 나는 근방의 후생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른 것이 지금 40년이 되었다.
기축년(1889, 고종26) 여름 그의 손자 회계옹(晦溪翁)주 100)이 선생의 유장(遺狀)을 가지고 벽산(碧山)의 숙소로 나를 방문하여 보여주었다. 삼가 살펴보니, 선생은 평소에 독서는 실천을 위주로 하고 실천은 어버이 섬기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근본이 확립되어 도가 생겨나 차례로 확충하였는데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실이 순수하여 법도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성대한 덕과 지극한 행실은 전날 사우들의 입을 통해 들은 것과 더불어 부절을 맞춘 것 같았고 그 시종의 섬세한 것은 더욱 상세하였다. 회계옹의 문학과 명망이 세상에서 추중 받는 것은 어찌 유래한 바가 없이 그러하겠는가. 《시경》〈대아(大雅) 기취(旣醉)〉에 "군자가 효자를 두었도다.[君子有孝子]"라고 하였고, 《주역》〈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찬(贊)은 다음과 같다.

은거하여 효성으로 봉양함에 隱居孝養
상제의 법칙 힘써 따랐네 勉循帝則
물고기 잡고 나무하며 농사지어 漁樵耕稼
숙수주 101)가 끊이지 않았네 菽水不絶
지극한 정성이 감응하는 바에 至誠攸感
하늘이 상서를 내리네 天翁生祥
하루의 봉양을 一日之養
삼공과 바꾸지 않네주 102) 不換三公
광채를 숨겨 베풀지 않았지만 潛光不施
여풍은 사람에게 남아있네 餘風在人
많은 사람들의 칭송 쇠하지 않아 輿誦不衰
후백이 서로 천거하네 侯伯交薦
포증하는 일명이 貤褒一命
돌아가신 뒤에 더욱 융숭하네 身後彌隆
서석산주 103) 남쪽에 瑞石之陽
여수가 넘실거리네 汝水洋洋
물가에 한 언덕 있으니 濱有一邱
화목이 무성하네 有亭瀟灑
선생께서 지내시던 곳이네 先生遺庄
노가라 편액을 걸었으니 揭以老稼
은미한 뜻 더욱 드러나네 微意愈彰
후손이 아름다움 계승하여 有孫趾美
문과 담장이 공허하지 않네 門墻不空
나의 숙소로 방문하여 過我旅榻
유문을 보여 주네 示以遺文
두 손으로 받들어 장엄하게 읽어보니 雙擎莊讀
글자마다 전훈이네 字字典訓
생전에 미처 뵙지 못한 것 한스러우니 恨不及時
이것을 보고 스스로 힘쓰네 鑑此自勵
실추시킨 고아가 失墜孤苦
슬피 눈물 흘린들 어찌 쫒을 수 있으랴 哀霣曷追
아, 너희 후생들은 嗟爾後生
이 유장을 보아라 視此遺狀
한마디가 하나의 약석이니 一言一藥
어찌 공경한 마음 일으키지 않으랴 曷不起敬
주석 100)회계옹(晦溪翁)
조병만(曺秉萬, 1829~1895)을 말한다. 자는 흠일(欽一), 호는 회계(晦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전라도 화순에 살았던 유학자로 흥선대원군이 실세하여 직곡산장(直谷山莊)으로 은퇴하자 1875년(고종12) 대원군을 고종이 직접 모셔와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위리안치되었다. 저서로는 《회계집》이 있다.
주석 101)숙수(菽水)
콩죽과 맹물이라는 뜻으로, 가난하지만 효자가 어버이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자로(子路)가 집안이 빈궁해서 효도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맹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下》
주석 102)하루의……않네
왕안석(王安石)의 시 〈송교집중수재귀고우(送喬執中秀才歸高郵)〉에 "고인이 하루 동안이라도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았네[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라고 하였다.
주석 103)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을 말한다.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이자,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진산이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산세가 웅대해 성산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는 무진악, 신라 때는 무악, 고려 때는 서석산, 그밖에 무정산·무당산·무덕산 등으로도 불렸다.
老稼亭先生曺公贊【幷序】
汝陽古有篤行士。老稼先生曺公其人也。余以傍近後生。高山仰止。爲四十年于玆矣。己丑夏。其孫晦溪翁。持先生遺狀。過余於碧山旅舍而示之。謹覵先生。平日讀書以踐履爲主。踐履以事親爲先。本立道生。次第充拓。而一言一行粹然。無不出於規矩繩墨之中。其盛德至行。與前日得於士友之口者。如合左契。而其始終纖悉。則爲加詳矣。晦溪翁之文學聲望。見重於世者。豈無所自而然耶。詩曰。君子有孝子。易曰。碩果不食。曷不偉哉。贊曰。隱居孝養。勉循帝則。漁樵耕稼。菽水不絶。至誠攸感。天翁生祥。一日之養。不換三公。潛光不施。餘風在人。輿誦不衰。侯伯交薦。貤褒一命。身後彌隆。瑞石之陽。汝水洋洋。濱有一邱。花木蔥籠。有亭瀟灑。先生遺庄。揭以老稼。微意愈彰。有孫趾美。門墻不空。過我旅榻。示以遺文。雙擎莊讀。字字典訓。恨不及時。鑑此自勵。失墜孤苦。哀霣曷追。嗟爾後生。視此遺狀。一言一藥。曷不起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