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발(跋)
  • 〈조 효자 경수 사실〉 뒤에 적다(題曺孝子【暻洙】事實後)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발(跋)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5.0001.TXT.0005
〈조 효자 경수 사실〉 뒤에 적다
내 일찍이 당송(唐宋)의 고사를 보고 진신 사대부 가운데 한휴(韓休)주 26)·유공작(柳公綽)주 27)·노종도(魯宗道)주 28)·여공저(呂公著)주 29) 같은 제공들의 한 시대 가법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이것은 천지가 문명(文明)하고 국가가 승평(昇平)한 때라고 여겼다. 선비가 이미 삼대(三代) 이전에 태어나지 못하였다면 내려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또한 다행이라 할 것이다. 시사(時事)가 변화함에 이르러 온 천하가 장사치여서 상인[棘人]의 소필(素韠)주 30)과 도인(都人)의 주직(綢直)주 31)을 지금은 볼 수가 없네. 당일의 기상을 뒤미처 상상해보면 사무친 그리움과 함께 돌아가고픈 소원이 어떠하겠는가.
지금 고흥(高興)의 조 효자(曺孝子) 전 승지 경수(暻洙)의 지극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는 실로 사람들에게 회자된 지 오래다. 그 훌륭한 숙인(淑人) 신씨(申氏)의 규문에서의 거동과 법도는 지극히 순수하고 갖추어져 남편을 받듦에 아름다움이 짝한다고 일컬어져 부부가 함께 정려와 포상을 받았다. 네 명의 아우 전수(典洙)·인수(仁洙)·문수(文洙)·기수(錤洙) 또한 모두 독서하고 몸을 단속하여 우애가 매우 지극하여 함께 은혜로운 명을 받았다.
오호라! 당시 승평의 기상이 진신 사대부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이에 시골 사우의 집안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음도(陰道)가 극성하게 된 날에 있더라도 이른바 "양(陽)은 다 없어질 이치가 없다."주 32)라는 것은 참으로 빈 말이 아닐 것이다. 옷깃을 여미던 끝에 삼가 권말(卷末)을 더럽혀 앙모하던 만분의 일의 뜻을 깃들인다.
주석 26)한휴(韓休)
673~740.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사람으로, 자는 양사(良士)이며, 좌보궐(左補闕), 예부 시랑(禮部侍郞), 지제고(知制誥), 상서우승(尙書右丞)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정(時政)의 잘잘못에 대해 모두 극간하였기 때문에 현종(玄宗)이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게 되면 번번이 좌우에게 "한휴가 아느냐?"라고 물었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휴의 상소가 올라왔다고 한다. 《新唐書 卷126 韓休列傳》
주석 27)유공작(柳公綽)
765~832. 당나라 경조 화원(京兆華原) 사람으로, 자는 관(寬) 또는 기지(起之)이다. 문종(文宗) 때의 명신으로 자는 관(寬)이며 뒤에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가법이 엄숙하여 《소학》 〈선행(善行)〉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주석 28)노종도(魯宗道)
966~1029. 송(宋)나라 명신으로 자는 관지(貫之), 호는 퇴사암(退思巖),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벼슬은 해염령(海鹽令),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해염령 때 고을 동남항(東南港)이 인몰된 것을 다시 준설하여 백성들은 그 항구를 노공포(魯公浦)라 불렀다. 《宋史 卷286 魯宗道列傳》
주석 29)여공저(呂公著)
1018~1089. 송나라의 명재상으로 자는 회숙(晦叔)이다. 구양수(歐陽脩)와 함께 강학하였으며, 진사에 합격한 후 영주 통판이 되고 여러 차례 어사중승(禦史中丞)을 지냈다. 왕안석(王安石)이 제정한 청묘법(靑苗法)을 반대하였으며, 철종(哲宗) 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제수되자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신법(新法) 폐지를 주장하다가 당쟁에 말려들어 추방되었다. 신국공(申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주석 30)소필(素鞸)
하얀 무릎 가리개로 상주의 상복이다.
주석 31)도인(都人)의 주직(綢直)
도성 사람들의 성대했던 의용(儀容)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에 "저 서울 양반은 대립에 치포관(緇布冠) 쓰셨고, 저 군자의 따님은 머리숱 많고 예뻤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지라 내 마음 기쁘지를 않네.[彼都人士, 臺笠緇撮, 彼君子女, 綢直如髮, 我不見兮, 我心不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32)양(陽)은……없다
《주역》 〈박괘(剝卦)〉의 정전(程傳)에 나오는 말이다.
題曺孝子【暻洙】事實後
余嘗觀唐宋間故事。歎搢紳士大夫如韓休柳公綽魯宗道呂公著諸公一時家法之美。以爲此是天地文明。國家昇平之會也。士旣不得生於三代之上。則降而生於此時。亦云幸矣。至於時移事變。大宇商商。棘人之素韠。都人之綢直。今不可得以見矣。追想當日之氣像。其菀結之懷。同歸之願。爲何如哉。今高興之曺孝子前承旨暻洙。至行偉節。固膾炙於人久矣。其齊淑人申氏。閫儀閨範。極爲純備。奉承君子。見稱匹休。夫婦俱蒙旌閭褒爵。有弟四人典洙仁洙文洙錤洙。亦皆讀書勅躬。友弟深至。倂蒙恩命。嗚乎。當日昇平之象。在於搢紳士大夫之間者。誰知至於今日而乃是得見於鄕曲士友之家乎。雖在陰道極盛之之日。而所謂陽無可盡之理者。信非虛語矣。歛衽之餘。謹塵穢卷末。以寓慕仰萬一之意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