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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발(跋)
  • 〈정와 정공 가장〉 뒤에 적다(題靜窩鄭公家狀後)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발(跋)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5.0001.TXT.0004
〈정와 정공 가장〉 뒤에 적다
삼가 살펴보건대, 공은 영특하고 빼어난 자질로 시례(詩禮)주 18)와 법필(法拂)주 19)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효제(孝悌)로 향리에 드러났고 장성하여서는 문학으로 붕우 간에 알려졌으니, 그 젖어들고 훈도를 받아 추향과 인도가 실로 남들과 다름이 있었던 것이다. 중년에 이르러 나아가 성담(性潭) 송 선생(宋先生)주 20)의 문하에서 스승으로 섬겨 차례로 강토(講討)하고 차례로 증정(證正)하여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주 21) 정신으로 이해하고 통하게 하여 안목이 더욱 열려 넓어지고 심회가 더욱 펼쳐져 열리니, 원근의 종유하는 이들과 한 때의 여론이 자자하게 칭찬하며 추중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축적한 것은 족히 사물에 미치고 그 품었던 포부는 족히 세상에 쓰일 만했는데, 이에 능히 남쪽 끝 바닷가 모퉁이 사이에 품고 거두어 종정(鍾鼎)주 22)이 부유함이 되는 것과 헌면(軒冕)주 23)이 영화주 24)가 되는 줄 모른 채 여유롭게 노닐고 장수유식(藏修遊息)주 25)하였으니, 그 뛰어난 운치와 고상한 자취는 어찌 보통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
오호라! 같은 도에 백 년 사이에 공과 같은 선진(先進) 숙유(宿儒)가 있었는데도 스스로 생각건대 비루하고 용렬하여 늙고 병들어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이에 그 가장(家狀)을 읽어 볼 수 있었으니, 아, 또한 늦었도다! 한스럽게도, 능히 90리 길[三舍]을 지팡이 짚고 가서 당일에 거니시던 곳에서 그 정채(精采)를 상상하며 만분의 일의 뜻이나마 갚을 수 없었으니, 삼가 이 글을 써서 감회를 기록한다.
주석 18)시례(詩禮)
가정교육 또는 가학(家學)을 뜻한다. 공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주석 19)법필(法拂)
법가필사(法家拂士)의 준말로, 법가는 대대로 법도 있는 집안을 말하고, 필사는 필사(弼士)와 같은 말로 보필하는 현신(賢臣)을 말한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내부에는 법가와 필사가 없고, 외부에는 적국과 외환이 없는 경우는,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20)성담(性潭) 송 선생(宋先生)
송환기(宋煥箕, 1728~1807)를 말한다. 자는 자동(子東), 호는 심재(心齋)·성담,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송시열의 5대손이자 송인상(宋寅相)의 아들이다. 심성논변에서는 한원진(韓元震)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성담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주석 21)배워서……분변하며
원문의 '취이변지(聚而辨之)를 풀이한 말인데,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이(九二)〉 에 "군자는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이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이다.[君子學以聚之, 問以辨之,……君德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22)종정(鍾鼎)
종명정식(鐘鳴鼎食)으로, 사람이 많아서 식사 때가 되면 종을 쳐서 여러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리고 솥을 벌여 놓고 회식을 한다는 뜻이다. 부귀한 집안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뜻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마을에 들어찬 집들은 종을 치고 솥을 늘어놓고 먹는 집들이다.[閭閻撲地, 鍾鳴鼎食之家.]"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2》
주석 23)헌면(軒冕)
고관(高官)의 거마(車馬)와 면복(冕服)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하여 높은 관작(官爵)을 말한다. 《장자》 〈선성(繕性)〉에 "헌면이 내 몸에 있는 것은 내가 타고난 성명이 아니요, 외물이 우연히 내 몸에 와서 붙어 있는 것일 뿐이다.[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4)영화
저본에는 '노(勞)'자로 되어 있으나 '영(榮)' 자의 잘못으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주석 25)장수유식(藏修遊息)
《예기》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요,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히는 것이다. 식(息)은 피곤하여 쉬며 함양하는 것이고, 유(遊)는 한가하게 노닐며 함양하는 것이다.
題靜窩鄭公家狀後
謹按。公以穎異秀爽之姿。生於詩禮法拂之家。幼以孝悌著於鄕里。長以文學聞於朋友。其擩染薰蒸。趨向指引。固有以異於人者。至中身。進而摳衣於性潭宋先生之門。次第講討。次第證正。聚而辨之。會而通之。眼目益以開廣。衿懷益以展拓。遠近遊從。一時物論。無不藉藉稱道而爲之推重焉。其所積蓄。足以及物。其所抱負。足以需世矣。而乃能懷之卷之於南荒海曲之間。不知鍾鼎之爲富。軒冕之爲勞。而優哉遊哉。修焉息焉。其偉韻遐躅。豈常調人所可涯涘哉。嗚乎。同省百年間。有先進宿儒如公之人。而自惟陋劣。至於老病垂死之日。乃得其家狀而讀之。吁亦晩矣。恨未能策藜三舍。以想象其精采於當日杖屨之地。以酬萬一之意。謹書此而志感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