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발(跋)
  • 〈하동 정씨 쌍효 정려기〉 뒤에 쓰다(書河東鄭氏雙孝旌閭記後)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5 / 발(跋)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5.0001.TXT.0003
〈하동 정씨 쌍효 정려기〉 뒤에 쓰다
내가 태어나 겨우 일을 살필 때 이미 같은 고을의 신기리(新機里)에 어진 정 효자(鄭孝子) 형제가 있다는 것을 들은 지 오래 되었다. 그 지극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는 자자하게 전해져 한 고을 인사들 중 노소(老少)나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믿어 기뻐하고 참으로 복종하며 사랑하여 사모하고 가상히 여기지 아니함이 없어 마치 자신에게서 나온 것 같이 여길 뿐만이 아니었으니, 모르겠으나 효자는 어떻게 닦아 이런 평가를 얻었는가?
일찍이 보건대, 순고(淳古)한 시대에는 인륜이 밝고 풍속이 바른데도 충효가 역사에 전해지는 것은 겨우 적료하여 몇 명뿐이었고, 시대가 내려와 말세에 이르러서는 인륜과 풍속이 모두 옛날과 같지 못한데도 충효가 마을과 향리에 드러난 것은 두루 알아 다 셀 수가 없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대저 말세에는 허위가 불어나 사사로움을 따라 좋아하는 것에 아부하니 그 폐단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오직 떳떳한 본성을 가지고 덕을 좋아하는 천만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은 또한 거의 없고 겨우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께서 민자건(閔子騫)의 효를 칭찬하기를 "효성스럽도다! 민자건이여. 사람들이 그 부모 형제의 말에 이간하는 말을 두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민자건의 발아래 일컬을 만한 지극한 행실이 많을 뿐만이 아닐 것인데 이에 단지 이간하는 말이 없다는 것으로 말하였다. 부성(孚誠)이 이르는 바에 원수도 복종시킬 수 있고 허위(虛僞)가 있는 바에는 어린 아이도 속이기 어려우니, 이것이 인심의 향배를 보고 그 효를 알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정공 형제의 효는 한 고을 인사들이 도모하지 않고도 함께 일컬어 다른 말이나 이간하는 말이 없는데 이르렀으니, 가깝지 않겠는가. 이것은 오늘날에 있어 거론하여 말해서 훗날 사필(史筆)을 잡은 사람에게 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10년 동안 병을 시중든 정성과 칠순의 나이에 몸을 훼손한 절도 및 다사들이 수령에게 천거하여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포상한 은전 같은 것은 지주(知州) 윤 후(尹侯)가 찬술한 것에 갖추어져 있으니, 중첩할 필요가 없다.
書河東鄭氏雙孝旌閭記後
余生而纔省事。已聞同鄕新機里有鄭孝子兄弟之賢久矣。其至行偉節。流傳藉藉。而一鄕人士。無老無少。無愚無賢。莫不信悅誠服。愛慕嘉賞。不啻若出於自己。未知孝子何修而得此。竊嘗觀夫淳古之世。人倫明風俗正。而其忠孝之傳於靑史者。僅寂寥若而人。降而至於叔世。人倫風俗。皆不古若。而忠孝之旌於閭里者。不可周知而悉數之。其故何歟。大抵末路滋僞。循私阿好。其獘何限。而惟其出於千萬人秉彛好德之口者。則亦未可不謂絶無而僅有矣。孔子稱子騫之孝曰。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在子騫脚下。其至行可稱者。不啻多矣。而乃只以無間言言之。孚誠所格。仇讐可服。虛僞所在。孩提難欺。此所以觀人心向背。而其孝可知也。然則公兄弟之孝。至於一鄕人士不謀同稱。而無異言間辭。則不其幾矣乎。此在今日。不可不擧而言之。以告後之秉史筆者焉。若其十年侍疾之誠。七耋致毁之節。及夫多士薦剡朝家旌褒之典。具在於知。州尹侯所撰。不必架疊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