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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송정기(松汀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68
송정기
송정(松汀) 주인은 내가 만년에 사귄 벗이다. 하루는 나를 방문하여 말하기를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어 갑자기 이렇게 몽범(濛氾)주 215)에 이르러 같은 연배의 벗들은 쓸쓸히 신성(晨星)주 216)이 되어 벗들과 헤어져 홀로 지내 외롭고 쓸쓸하여 매우 무료한데, 오직 손수 심은 시냇가 한 그루 소나무가 있어 이것이 60년 동안의 오랜 벗일 뿐이네. 날마다 그 아래에 가서 배회하며 읊조림에 애석한 마음이 오랠수록 더욱 지극하니, 청컨대 그대가 기문을 지어주시게."라고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나무는 주인과 오랜 교분이 있고 주인은 나와 만년에 친분을 맺었으니, 새롭고 오램이 같지 않아 아는 것에 천심(淺深)이 있는데, 내가 어찌 그 사이를 엿 보아 한마디를 도울 수 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일찍 주인으로 하여금 향기로움을 탐하고 번화함을 사모하여 심은 것이 평범한 화훼나 한가로운 초목이었다면 아침저녁으로 모습을 달리하고 봄가을로 빛깔을 바꾸어 잊어버리는 영역에서 주인을 저버림이 오래되었을 것이니, 어찌 능히 오늘날이 있겠는가. 오직 심은 것이 소나무이기 때문에 정정하게 빼어나고 울창하게 푸르러 천겁을 지나도록 세한에 서로 지키는 마음은 일찍이 하루도 옮긴 적이 없으니, 여기에서 주인이 교유를 선택한 뜻과 소나무가 주인을 저버리지 않음이 또한 두터움을 볼 수 있다.
주인이 효우(孝友)와 가학[詩禮]으로 알려진 것은 젊었을 때부터 이미 그러하였다. 보건대 지금 백발이 살쩍을 덮어 엄자산(崦嵫山)주 217)의 남은 햇살이 빠르게 저물어가니, 이것은 백년 인생의 가을쯤이 아니겠는가. 평소의 마음을 자주 돌아보고 더욱 만년의 절개에 힘쓰기를 마치 위 무공(衛武公)주 218)과 거원(蘧瑗)주 219)이 했던 것처럼 하여 나의 성망(聲望)과 풍운(風韻)을 온 세상이 막힌 가운데 우뚝이 세운다면 주인이 소나무를 저버리지 않음이 어찌 소나무가 주인을 저버리지 않음만 못하겠는가.
나는 떡갈나무 같은 하찮은 사람이라 비록 소나무와 벗하려 해도 소나무가 반드시 벗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니, 혹 친구의 친구라는 것으로 한 자리 남은 그늘을 빌려 주시겠는가?
주석 215)몽범(濛氾)
해가 지는 곳으로, 노경을 뜻한다.
주석 216)신성(晨星)
새벽별이라는 뜻인데, 벗들이 잇달아 죽어 마치 새벽별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송장관부거병인(送張盥赴擧幷引)〉에 "옛날에 함께 급제했던 벗들과 어울려 노닐 때에는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마치 병풍처럼 대로(大路)를 휩쓸고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마냥 쓸쓸하기가 새벽 별빛이 서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기만 하다."라고 하였다.
주석 217)엄자산(崦嵫山)
옛날에 해가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산의 이름으로, 만년(晩年) 또는 노년의 비유로 쓰인다.
주석 218)위 무공(衛武公)
노년에 나태해지는 마음을 경계하기 위하여 95세에 《시경》의 억(抑)편을 지었다고 한다.
주석 219)거원(蘧瑗)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 거백옥(蘧伯玉)의 본명이다. 《장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는 동안 육십 번이나 잘못된 점을 고쳤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고 하였다.
松汀記
松汀主人。余晩年友也。一日過余曰。叵耐歲月。遽此濛氾。年輩知舊。落落晨星。離索踽涼。殊無了聊。而惟有手植澗畔一株松。是六十年舊契耳。日往其下。盤桓吟哦。愛惜之心。久而愈至。請吾子爲之記也。余曰。松於主人爲舊交。主人於余爲晩契。新舊不同。知有淺深。余何以窺其際而贊一辭乎。雖然。早使主人耽芬芳慕繁華。所植是凡卉閒木。則其朝暮異態。春秋改色。而負主人於相忘之域久矣。何能有今日哉。惟其松也。故亭亭而秀。鬱鬱而翠。閱千劫而歲寒相守之心。未嘗一日而移焉。此可見主人擇交之義。而松之不負主人亦厚矣。主人以孝友詩禮者聞。自少壯時已然。見今白髮被鬢。崦嵫殘景。苒苒遲暮。此非人生百年之秋乎。屢顧宿心。益勵晩節。如衛武蘧瑗之爲。使吾聲望風韻。挻然特立於九野閉寒之中。則主人之不負松。何不若松之不負主人乎。如余樸樕劣品也。雖欲與松友。而松必不爲之友矣。或以友之友而借一席餘蔭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