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한수재기(寒守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67
한수재기
이릉(爾陵)주 213)의 산은 동남쪽보다 많은 곳이 없고, 동남쪽의 산은 망방산(望防山)보다 깊은 것이 없는데, 나의 벗 남덕로(南德老) 군이 그 산에 우거하고 있다. 대개 덕로의 재주와 국량, 지조와 기개는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한 시대에 오르내릴 수 있는 사람인데 이에 능히 번연히 도모를 바꾸어 아무도 모르게 거두어 단속함이 이와 같이 과감한가! 10년을 살면서 또 마을의 벗과 산의 가장 깊은 곳 사람들의 경계와 멀리 떨어진 곳에 나아가 나무를 서까래로 삼고 바위를 벽으로 삼아 경영하기 시작하여 몇 칸 집을 지어 날마다 복건(幅巾)과 망혜(芒鞋) 차림으로 그 가운데서 소요하고 있다.
오호라! 산이 이미 궁벽한데 오직 궁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지역이 이미 후미진데 오직 후미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반드시 몸을 민연히 작위가 없는 곳에 몸을 둔 뒤에야 그만두려 하니, 이것은 세속에 동화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멀리 떠나 세상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시국의 상황은 헤아리기 어렵고 세상의 일은 형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미를 보고 분명하게 결정하여 독선(獨善) 자정(自靖)할 곳으로 삼은 것이다. 더구나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어 이미 노경에 이르러 교유를 끊고 고요한 곳에 나아가 한가로이 지내며 덧없는 생각을 사라지게 하고 실제의 덕이 내면으로 살찌게 하는 것을 일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으니, 또 어찌 다만 신도반(申屠蟠)주 214)의 아류가 될 뿐이겠는가.
나는 죽마고우로써 백수에 서로 바라보니 슬픔과 위로가 더욱 지극하여 삼가 세한(歲寒)에도 서로 지킨다는 뜻에 의거하여 편액을 한수(寒守)라 하고 인하여 졸렬한 말을 붙인다.
주석 213)이릉(爾陵)
이릉부리현(爾陵夫里縣)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綾州面)의 옛 지명이다.
주석 214)신도반(申屠蟠)
후한(後漢) 시대 진류(陳留)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 칠공(漆工)이 되었다.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지만 나가지 않고 숨어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여 오경(五經)에 두루 정통했으며, 도위(圖緯)에도 밝았다.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양(梁)나라 탕현(碭縣)에 자취를 감추고 나무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다. 태위(太尉) 황경(黃瓊)과 대장군 하진(何進)이 연이어 불렀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동탁(董卓)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대신하자 순상(荀爽) 등이 모두 협조했지만 그만 홀로 끝까지 고귀한 뜻을 지켰다. 《後漢書 卷53 申屠蟠列傳》
寒守齋記
爾陵之山。莫多於東南。東南之山。莫深於望防。余友南君德老。寓居焉。蓋德老才局志槩。可以周旋四方。上下一世者。而乃能幡然改圖。闇然收束。若是其果耶。居十年。又與村之友。就山之最深人境遙絶處。因樹爲椽。因巖爲壁。經始得數間屋子。日以幅巾芒鞋。逍遙其中。鳴乎。山旣窮矣。而惟恐其不窮。地旣僻矣。而惟恐其不僻。必欲置身於冺然無爲之地而後已。此非同流合汚者所可涯涘。亦非長往忘世者所可比倫。正以時象叵測。世故難狀。所以見幾明決。而爲獨善自靖之地。況叵耐歲月。已屬桑楡。絶遊息交。就靜養閒。使浮念銷歇。實德內腴。爲一生之究竟者。又豈但爲申屠蟠之流亞哉。余以竹馬舊交。白首相望。悲慰增至。謹据歲寒相守之義。題其顔曰寒守。因以蕪辭隨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