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수사재기(修俟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66
수사재기
갑진년(1904) 가을에 백경인(白景寅) 군이 영귀정사(詠歸亭社)주 211)로 나를 방문하여 말하기를 "제 부친께서 근래 부춘산(富春山) 산속에 한 채의 집을 지어 만년에 지내실 장소로 삼으려 하니, 원컨대 편액을 지어주십시오."라고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네. 천하의 모든 일은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으니, 분수를 넘고 직분을 침범하면 나라에 떳떳한 형벌이 있는데, 더구나 사람이면서 하늘의 명을 대신하고 하늘의 직분을 침범한다면 어떠하겠는가. 승침(升沈)과 헌지(軒輊),주 212) 영고(榮枯)와 궁통(窮通)은 모두 하늘의 명이고 조물주의 직분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아서 몸을 닦아 기다린다."라고 하여 자신에게는 닦는 것을 말하고 하늘에는 기다리는 것을 말하였으니, 단지 이 두 글자는 많은 의리를 함축하고 있어 우리들이 몸을 편안히 하고 명을 바르게 확립할 곳이 된다. 더구나 온 천하가 도도하여 도가 시대와 어긋나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힘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분수의 일일 뿐이다. 또 듣건대, 그대 부친께서는 은거하여 행실을 쌓은 지가 수십 년이니, 백발의 노년에 이르러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반드시 수신(修身)하는 것을 여생을 마칠 계획으로 삼을 것이니, 부친에게 배우는 날에 시험삼아 '수사(修俟)'두 글자를 나를 위해 올려 드리면, 생각건대 반드시 빙그레 웃으며 애초에 자신의 뜻이 아님이 없다고 하실 것이네.
주석 211)영귀정사(詠歸亭社)
영귀정(詠歸亭)을 말한다.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주석 212)헌지(軒輊)
고저(高低), 경중(輕重), 우열(優劣)을 의미한다. 수레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헌(軒)이라 하고, 수레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것을 지(輊)라고 한다.
修俟齋記
甲辰秋。白君景寅。過余於詠歸亭社曰。家親近構一區屋子於富春山中。以爲晩年樓息之所。願賜所以題其顔者。余曰。然。天下萬事。各有所管。越分侵職。邦有常刑。況人而代天之命侵天之職乎。升沈軒輊。榮枯窮通。皆上天之命。造物之職也。故孟子曰。殀壽不貳。修身以竢之。於己言修。於天言竢。只此二字。涵蓄多少義理。而爲吾人安身立命處也。況大宇滔滔。道與時違。杜門塞竇。所可勉。惟己分事而已。且聞大人丈隱居積行數十年。至老白首。而有何所求哉。必以修身之爲餘日究竟計。趨庭之日。試以修俟二字。爲我而獻焉。想必莞爾而笑。以爲未始非吾意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