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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돈암기(遯庵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돈암기
미둔(尾遯)은 위태롭고주 205) 계둔(係遯)은 병이 있고주 206) 비둔(肥遯)은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주 207) 지금 주인의 은둔은 어디에 있는가?
주인은 보성[山陽]의 일개 선비로 일찍 명경(明經)주 208)을 공부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중년에 이르러 시국의 상황이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을 보고 드디어 두봉(斗峯) 만첩 가운데 한 채의 집을 짓고 문미에 편액을 돈암(遯庵)이라 하였다. 이미 세상에 출각(出脚, 벼슬에 나아감)하지 않아 지체하여 머물며 결정하지 못할 단서가 없으니 미둔이라 할 수 없고, 얽매여 연모하여 잊지 못하는 뜻이 없으니 계둔이라 할 수 없다. 오직 먼 곳에 처하고 바깥에 있어 은둔하고 또 은둔함이 되니, 비둔이 된다. 지체하여 머물거나 얽매여 지체함이 없어 초연하게 떠나고 우뚝이 일어나기를 마치 구름에 들어가는 기러기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같이 하면 그 크고 여유 있는 것이 어찌 이른바 비둔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을 베게 삼고 골짝을 누대 삼아 물마시고 명아주 먹으니, 사람들은 모두 주인이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유독 주인은 여유롭다고 여긴다.
- 주석 205)미둔(尾遯)은 위태롭고
- 《주역》 〈돈괘(遯卦) 초육(初六)〉에 "돈의 꼬리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아야 한다.[遯尾, 厲, 勿用有攸往.]"라고 한 것을 말한다.
- 주석 206)계둔(係遯)은 병이 있고
- 《주역》 〈돈괘 구삼(九三)〉에 "매여 있는 은둔이라 질병이 있어 위태로우니, 신첩(臣妾)을 기르는 일에는 길하다.[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라고 한 것을 말한다.
- 주석 207)비둔(肥遯)……없으니
- 《주역》 〈돈괘 상구(上九)〉에 "여유 있는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肥遯, 無不利.]"라고 한 것을 말한다.
- 주석 208)명경(明經)
- 과거 제도에 선비를 선발하는 과목의 한 가지로서 경술(經術)에 밝은 사람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遯庵記
尾遯則厲。係遯則疾。肥遯則無不利。今主人之遯。何居焉。主人山陽一布衣。早治明經。不利於有司。及至中身。見時象日非。遂構一區屋子於斗峯萬疉之中。扁其楣曰遯庵。旣不出脚於世。而無遅留不決之端。則不可謂尾遯也。無係戀不忘之意。則不可謂係遯也。惟其處遠在外。而爲遯之又遯。則天山之上九也。無遲留係滯之爲。而超然而逝。卓然而舉。如入雲之鴻。游水之魚。則其碩大寬倬。豈非所謂肥遯者耶。枕山樓谷。飲水茹萊。人皆謂主人之貧。而余擉以爲主人之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