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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화은기(華隱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63
화은기
나의 벗 양 사문(梁斯文) 순집(順集) 씨가 집안 식구를 데리고 화학산(華鶴山)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간 지 20여 년이 되었다. 산 밖의 친구들이 모두 화은(華隱)으로 부르자 양 사문이 능히 사양할 수 없어 인하여 그 집에 편액으로 삼고 또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예리한 보습을 들고 나가 들에서 농사지었던 것은 그런 사람이 반드시 많을 것이고, 길쭉한 낚싯대로 물에서 낚시한 것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예로부터 지금까지 유독 이윤(伊尹)이 신야(莘野)에서 농사지었던 것과 여망(呂望)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했던 것주 202)만을 일컬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겸선(兼善)주 203)의 자질이 없으면 출사를 말하기에 부족하고, 독선(獨善)의 실제가 없으면 은거를 말하기에 부족하다. 저 농부가 농사짓고 시냇가 늙은이가 낚시하는 것은 직업일 뿐이니, 어찌 족히 기록하겠는가. 화학산은 큰 산이니, 산을 둘러싼 사방 기슭의 백 리 되는 땅에 거주하며 먹고 사는 사람이 양 사문 한 사람만이 아닌데 유독 은(隱)이라 이르는 것은 또한 그 실상을 걸맞게 채울 수 있는 것이 있어서인가? 행할만한 도를 지녔다면 몸은 성시(城市)에 살더라도 은이라 이르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록 도원(桃源)에 깊이 숨어 살더라도 은이라 이를 수 없다."라고 하였다.
양 사문이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그렇다면 청컨대 이 호를 버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양 사문의 겸겸(謙謙)주 204)한 의를 가진 입장에서는 비록 응당 이와 같이 해야 하겠지만 친구들이 표시하여 일컬은 입장에서는 어찌 그 뜻이 없겠는가. 더구나 자고로 명호(名號)는 모두 고훈 격언(古訓格言)의 말을 사용하여 면려를 기약하는 뜻을 깃들이네. 양 사문이 진실로 능히 이것으로 인하여 성찰하고 두려워하여 혹시라도 실상이 없는 이름에 귀착될까 두려워하여 더욱 그 덕에 힘쓰고 더욱 그 학업을 진보시켜 나아가서는 족히 큰일을 할 수 있고 물러나서는 족히 지키는 것이 있다면 훗날 사관[載筆]이 사책(史策)에 '모 년 간에 모가 화학산 남쪽에 은거하였다.'라고 대서특필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을 힘쓸 만하다."라고 하였다.
주석 202)이윤(伊尹)이……것
이윤이 신야 즉 유신씨(有莘氏)의 들판에서 농사를 짓다가 탕왕(湯王)의 초빙을 받고 상(商)나라를 도와서 왕업(王業)을 이룩하였고, 여상(呂尙)이 위수(渭水) 물가의 반계에서 낚시질하다가 문왕(文王)에게 발탁되었는데 뒤에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였던 일을 말한다. 《史記 齊太公世家》 《孟子 萬章上》
주석 203)겸선(兼善)
온 천하를 아울러 선하게 한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궁하면 그 몸을 홀로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아울러 선하게 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204)겸겸(謙謙)
군자의 지극히 겸손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주역》 〈겸괘(謙卦) 초육(初六)〉에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몸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기른다.[謙謙君子, 卑以自牧也.]"라고 하였다.
華隱記
余友梁斯文順集甫。挈家入華鶴山中最深處。爲二十有餘年矣。山外知舊。皆以華隱號之。斯文不能辭焉。因題其室。又屬余爲記。余曰。畟畟良耟。以耕于野。其人必多。籊籊竹竿。以釣于水。其人何限。然而自古至今。獨稱伊尹耕于華。呂望釣于渭。其故何哉。無兼善之資。則不足以謂之出。無獨善之實。則不足以謂之處。彼野夫之耕。溪叟之釣。職耳。何足記爲。華鶴大山也。環山四麓數百里之地。居而家食者。非斯文一人。而獨謂之隱。抑亦有可以稱塞其實者耶。有可行之道。身居城市。未嘗非隱。否則雖深居桃源。不可謂隱。斯文瞿然曰。然則請去此號可乎。余曰。不然。在斯文謙謙之義。雖應如此。而在知舊標稱之地。豈無其意。況自古名號。皆用訓格之言。以寓期勉之意。斯文苟能因此思省恐畏。恐其或歸於無實之名。益懋其德。益進其業。進足以有爲。退足以有守。則安知後日之載筆者。不大書特書於策曰。某年間。某隱於華山之陽乎。是可勉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