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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재기(敬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60
경재기
자정자(子程子)가 말하기를 "한(漢)나라 이후로'경(敬)'자의 뜻을 안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으니,주 190) 대개'경'자의 뜻은 요순[唐虞]에서 비롯하여 수사(洙泗)주 191)에서 발휘되어 소상할 뿐만이 아니었다. 한당(漢唐)의 수천 년 동안 총명하고 뛰어난 선비가 얼마나 많았는데 이에 여기에 대해 몽매함이 있었는가. 여기서'경'자의 뜻이 크고'경'자의 뜻을 아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자와 주자 두 선생에 이르러 이에 비로소 표장(表章)하여 더욱 남은 뜻이 없게 되었다. 그런 뒤에야 세상의 학자들이 단전(單傳)과 요결(要訣)이 여기에 있는 줄을 알아 입을 열어 말을 함에 모든 말들이 이 의체(義諦)주 192)가 아님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추향을 알았던 견해는 한당보다 뛰어남이 있는 것 같은데 효험을 본 것을 계산해 보건대 도리어 한당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것은 능히 깊이 나아가 자득하지 못하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사이에만 교묘하여 일찍이 '경'자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과 또한 크게 서로 차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듣건대, 경재옹(敬齋翁)이 산림에서 사는 70년 동안 발은 산을 나가지 않고 이름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며, 선한 사람이 아니면 사귀지 않고 의로운 물건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으며, 문학에 넉넉해도 과거 시험에 나아가지 않았고 경세제민에 뜻을 두었어도 벼슬길에 나아갈 계획을 하지 않고, 오직 성현의 책과 의리의 설로 읊조리고 함양하여 드러내어 자득하고 도도하여 나이가 부족한 줄도 모른다고 하였다. 돌아보건대 그의 평생은 재사의 편액 한 글자로부터 곱씹어 온 것이 아님이 없으니, 이것이'경'자의 뜻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성취한 광결(光潔)이 어찌 이러한 데에 이르렀겠는가.
돌아보건대, 산란한 노년인데도 아직'경'자에서 힘을 얻지 못한 지 오래이니, 어찌하면 경재옹의 뒤를 따라 보고 느끼고 부지하여 수립해서 나의 지나간 과거를 만분에 일이라도 수습할 수 있겠는가? 드디어 이것을 적어 고해본다.
주석 190)자정자(子程子)가……하였으니
《논어》 〈자한((子罕))〉 제29장 주희의 주에 정이(程頤)의 설을 인용하여 "한나라 유자들은 경도를 뒤집어 도에 합치시키는 것을 권도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권변이니 권술이니 하는 말들이 있었으니 이는 모두 잘못이다. 권도는 다만 경도일 뿐이니, 한나라 이후로 권도의 '권' 자의 뜻을 안 사람이 없다.[漢儒以反經合道爲權, 故有權變、權術之論, 皆非也. 權, 只是經也, 自漢以下無人識權字.]"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자의 '경' 자에 대한 말은 보이지 않는다.
주석 191)수사(洙泗)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노(魯)나라에 있었던 두 물의 이름인데, 공자가 이곳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강론하였으므로, 곧 공자 및 유학(儒學)을 일컫는다. 《禮記 檀弓上》
주석 192)의체(義諦)
불교용어로서 진체(眞諦)와 같고, 가장 진실한 도리를 가리킨다.
敬齋記
子程子曰。自漢以來。無人識敬字。蓋敬字之義。權輿於唐虞。發揮於洙泗。不啻消詳。漢唐數千年間。聰明俊異之士。何限而乃有懵此耶。此可見敬之義爲大。而知敬之義爲尤難也。至程朱兩夫子。乃始表章之。益無餘藴。然後世之爲學者。知單傳要訣。有在於此。而開口吐辭。凡百云云。無非這箇義諦。然則其識趨見解。若有過於漢唐。而算計見效。反有不及焉何哉。此其不能深造自得。而諓諓於口耳四寸之間。與不曾知有敬字者。亦無以大相遠矣。吾聞敬齋翁居林下七十年。足不出山。名不出世。人非善不交。物非義不取。優於文學。而不赴功令之擧。志於經濟。而不作干進之計。惟以聖賢之書。義理之說。諷誦涵暢。于于陶陶。不知年數之不足。顧其平生。無非自齋顔一字符咀嚼來。此可謂知敬者矣。不然。其所就光潔。何至乃爾也。顧憒憒頹齡。尙有不得力於敬久矣。安得從翁之後。觀感扶竪。爲區區過境萬一之收耶。遂書此以諗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