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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춘탄기(春灘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춘탄기
동경(東京)주 149)이 어떤 때이며, 부춘(富春)주 150)이 어떤 땅인가? 희희양양(熙熙穰穰)주 151) 왕래하다 안개와 구름이 사라지고 텅 비면 아득히 넓고 큰 바다의 한 알 좁쌀 같고, 산고수장(山高水長)주 152)하여 위대한 운치와 빼어난 자취가 천고에 빛나는 해와 별과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완연히 마치 운산(雲山)과 강수(江水)의 사이에서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 것 같게 한다.
호남(湖南)에도 또한 부춘강이 있으니 강가에 고 처사 정공(鄭公)이 장수(莊修)주 153)하던 곳이다. 공은 광채를 감추고 세상을 만나지 못해 남쪽 고을의 한 선비[布衣]에 불과할 뿐이다.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칭송이 자자하여 춘탄(春灘)으로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대개 그 지역을 기록한 것은 그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그 덕을 사모하기 때문이니, 이 강과 이 산은 이미 끝날 기약이 없으니, 공이 사람들에게 사모를 받는 것은 생각건대 또한 엄 선생(嚴先生)주 154)과 같을 것이다. 저 고거사마(高車駟馬)주 155)를 많은 사람들이 창야(唱喏)주 156)하는 것은 바로 철새나 후충(候虫)주 157)이 한 때 귀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내 비록 당시에 끊임없이 왕래하지는 못하였지만 만년에 이 강가에 우거하며 정채(精釆)를 상상하고 우러르니, 삼가 이것을 써서 뜻을 드러낸다.
- 주석 149)동경(東京)
- 후한(後漢)의 도성인 낙양(洛陽)으로, 곧 후한을 가리킨다.
- 주석 150)부춘(富春)
- 부춘산(富春山)으로, 후한(後漢) 때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의 초빙을 물리치고 은거한 산이다.
- 주석 151)희희양양(熙熙穰穰)
- 이익 추구를 위해 시끄럽고 번잡하게 오가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천하가 희희함은 모두 이익을 위해 오는 것이요, 천하가 양양함은 모두 이익을 위해 가는 것이다.[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壤壤, 皆爲利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양(穰)과 양(壤)은 통용이다.
- 주석 152)산고수장(山高水長)
- 산은 높고 물은 유유(悠悠)히 흐른다는 뜻으로, 군자(君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했다.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 "구름 낀 산 푸르고 푸르듯, 저 강물 곤곤히 흐르고 흐르듯, 선생의 풍도 역시 산고수장이로세.[雲山蒼蒼, 江水泱泱, 先生之風, 山高水長.]"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 주석 153)장수(莊修)
- 장수유식(藏修遊息)의 준말로 늘 학문에 전념함을 뜻한다. 《예기》 〈학기편(學記篇)〉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 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저본의 '장(莊)' 자는 '장(藏)'의 오자로 보인다.
- 주석 154)엄 선생(嚴先生)
- 후한(後漢)의 엄광(嚴光)을 말한다. 자는 자릉(子陵)이다. 광무제(光武帝)가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는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성명을 고치고 숨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광무제가 찾아서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살았다. 《後漢書 逸民列傳 嚴光》
- 주석 155)고거사마(高車駟馬)
- 수레덮개가 높은 수레와 네 마리의 말이란 뜻으로, 부귀한 사람이 타는 것을 말한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장안(長安)으로 들어가던 중 고향인 성도(成都)를 지나다가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높은 수레와 사마를 타지 못하면 다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漢書 卷57 司馬相如傳》
- 주석 156)창야(唱喏)
- 남자가 읍하면서 소리를 내어 공경을 보이는 것이다.
- 주석 157)후충(候蟲)
- 철따라 생기는 벌레를 뜻하는데, 예컨대 봄에는 나비, 여름에는 매미, 가을에는 귀뚜라미 등을 이른다.
春灘記
東京何時。富春何地。熙往穰來。烟消雲空。渺然滄海之一粟。而山高水長。偉韻逸躅。日星於千古。得使人人。完若瞻對於雲山江水之間。湖之南。亦有富春江。上有故處士鄭公莊修之地。公潛光蘊輝。不遇於世。不過爲南州之一布衣耳。没世旣久。而稱誦藉藉。至以春灘目焉。蓋志其地。所以思其人。思其人。所以慕其德。此江此山。旣無有了期。則公之所以見慕於人者。想亦與嚴先生同矣。彼高車駟馬。千人唱喏。卽時鳥候虫一時之聒耳。余雖不能源源於當日。而晚寓此江之上。想仰精釆。謹書此而見志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