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서헌기(瑞軒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47
서헌기
남쪽 지방에 헤아릴 만한 명산이 하나가 아니지만 그 체덕(體德)을 말한다면 모두 서석산(瑞石山)만 못하다. 봉우리는 기울지 않았고 돌은 거칠지 않으며 초목으로는 가시나무가 없고 벌레로는 독충이 없다. 정령(精靈)이 내린 바에 현인이 배출되고 지맥(枝脈)이 뻗은 곳에 명구(名區)가 서로 바라보인다. 아마도 천지가 열리던 초기에 일종의 정숙(禎淑)한 기운이 모여들어 응결된 것이 있을 것이다. 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백 여리를 달려 화순[爾陵]의 경계에 이르러 연화봉(蓮花峰)이 되었다. 나의 벗 사문(斯文) 김성중(金誠仲)이 연화봉 끝자락에 한 채의 정사를 지었는데 서석산과 정확히 마주하고 있다.
무릇 군자는 산에 대해서 적취(積聚)한 형상을 보고 그 덕(德)을 기르고, 후중(厚重)한 형상을 보고 그 인(仁)을 돈독히 한다. 더구나 늘어선 봉우리와 여러 산들과 견줄 것이 아니고 마치 거인장자(巨人長者)가 높은 갓을 쓰고 넓은 띠를 두른 채 엄연히 창문과 궤석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아서, 출입하고 기거하며 휴식하고 한가로이 지냄에 비록 잠시라도 떨어지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 헌(軒)이 '서(瑞)'가 된 까닭이다.
오호라! 헌이 이미 상서로우니, 사람이 유독 상서롭게 되지 않겠는가. 감히 침을 뱉지 못하는 것이 청성(靑城)의 산과 같고주 145) 감히 거만하지 못하는 것이 남간(南澗)의 돌주 146)과 같아 담담하게 마주하고 묵묵히 계합하며, 가만히 수양하고 고요히 함양하여 낮은 곳으로부터 높이 올라가고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루어 명망과 실상이 높고 무거우며 기풍과 운치가 높고 가파른데 이른다면 한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장차 경성(景星)과 경운(慶雲)주 147) 같이 우러르고 상서로운 봉황과 기린 같이 사모할 것이니, 그 사람 가운데 상서로움이 되는 것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서헌(瑞軒)의 주인이 된 것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주석 145)감히……같고
당(唐)나라 두보(杜甫, 712~770)의 시 〈장인산(丈人山)〉에 "청성에서 나그네살이 하게 되면서, 청성 땅에는 침을 뱉지 못하였네.[自爲靑城客, 不唾靑城地.]"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杜詩詳註 卷10》
주석 146)감히……돌
주자의 시 〈운곡26영(雲谷二十六詠)〉가운데〈북간(北澗)〉에 "흙 끊어지고 시내 또한 나누어지니, 북쪽 아래에 어두운 시내 이루어졌네. 빼어난 돌이 아름다운 이름 얻었으니, 가슴에 새겨 내 감히 거만하랴.[土斷川亦分, 北下成陰澗. 秀石得佳名, 服膺吾敢慢?]"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이 시의 주석에 "시내에 인의석이 있다.[澗有仁義石]"라고 하였다. 남간(南澗)은 북간의 착오로 보인다.
주석 147)경성(景星)과 경운(慶雲)
고대에 태평 시대에 나타난다고 인식했던 상서로운 현상들이다. 경성은 대성(大星), 덕성(德星)이라고도 하고, 경운은 오색의 채운(彩雲)을 가리킨다.
瑞軒記
南方名山可數者非一。而言其體德。則皆莫若瑞石焉。峯不偏側。石不麤厲。草無荊棘。虫無虺蝎。精靈攸降。賢人輩出。枝脈攸及。名區相望。蓋開闢之初。一種禎淑之氣。有以鍾聚融結者也。山之一支。南走百餘里。至爾陵界爲蓮花峰。余友金斯文誠仲。就峯之趾。築一區精舍。與瑞石的對。夫君子之於山。觀積聚之象以育其德。觀厚重之象以敦其仁。況非列峯群巒之比。而如巨人長者。峩冠博帶。儼然峙立於窓牖几席之前。出入起居。遊息燕閑。雖欲頃刻離之而不可得。此軒之所以爲瑞也。嗚乎。軒旣㙐矣。人獨不爲瑞矣乎。不敢唾如靑城之山。不敢慢如南澗之石。澹對黙契。潛修靜養。自卑而高。積小而大。以至望實隆重。風韻崢嶸。則一世之人。必將仰之如景星慶雲。慕之如祥鳳瑞麟。其爲人中之瑞。果何如哉。庶無負爲瑞軒主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