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죽오기(竹塢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46
죽오기
죽오(竹塢) 주인은 내가 만년에 사귄 벗이다. 몸을 지켜 자취를 거두어 천진에 맡기고 본분을 미루어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면 먹지 않고 의가 아니면 행하지 않아 늙음에 이르러서도 더욱 스스로 재주와 덕을 숨기고, 오직 학문에 힘썼다.
하루는 내가 그를 방문하였는데 그 집이 씻은 듯 깨끗하여 하나의 좋은 물건은 없고 오직 몇 그루 대나무만 뜰 사이에 푸른 것을 보았다. 이에 주인이 그 집에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알았고, 또 그 학문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진보하고 몸은 때에 맞게 숨긴 것은 또한 애초에 여기에서 터득함이 있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저 대나무의 무성함을 보고 학문에 절차탁마하는 아름다움을 취하고 대나무의 곧음을 보고 명절(名節)을 힘써 닦는 견고함을 생각하는 것은 생각건대 반드시 고인을 보고 본받아 상수(桑收)의 계획주 141)과 세한(歲寒)의 계책주 142)으로 삼아 넉넉하게 여유가 있을 것이다.
오호라! 고 처사 간재옹(澗齋翁)주 143)은 바로 주인옹의 원방(元方)주 144)이다. 나와 막역한 교분이 있어 세한에도 서로 지키자는 약속을 한 것이 실로 얕지 않았는데, 옹이 죽어버리고 이 약속이 또 그 아우에게 있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고금을 두루 돌아봄에 비탄을 감당할 수 없네. 그러나 오늘 서로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당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니, 우리 두 사람은 어찌 서로 함께 힘쓰지 않겠는가. 평소 절차탁마하는 공부가 있지 않다면 세한에 힘써 닦는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석 141)상수(桑收)의 계획
만년에 공적을 거두는 계획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의 장수 풍이(馮異)가 적미(赤眉)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처음 싸움에서 대패하고, 얼마 뒤에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황제가 친히 글을 내려 위로하기를 "처음에는 회계에서 깃을 접었으나 나중에는 민지에서 떨쳐 비상하니, '동우에 잃었다가 상유에 수습하였다.'라고 할 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榆.]"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동우(東隅)'는 동쪽 모퉁이로 해가 뜨는 곳인데 젊은 시절을 가리키고,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로 지는 해의 그림자가 이 나무의 끝에 남아 있다 하여 해가 지는 곳인데 만년을 가리킨다. 《後漢書 卷47 馮異列傳》
주석 142)세한(歲寒)의 계책
세한은 해가 저물어 가는 한겨울의 매운 추위를 이르는 말인데, 노년의 지조를 비유한다. 《논어》 〈자한(子罕)〉의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143)간재옹(澗齋翁)
이기백(李琪白, 1854~1903)을 말한다. 자는 광빈(光彬), 호는 간재(澗齋),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세한 행적은 《일신재집》 권19 〈간재 처사 이공 행장(澗齋處士李公行狀)〉에 보인다.
주석 144)원방(元方)
후한(後漢) 진기(陳紀)의 자이다. 진기와 그의 아우 진심(陳諶) 계방(季方)이 훌륭하여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데서 난형난제(難兄難弟)라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서는 형님인 이기백을 빗대어 한 말이다.
竹塢記
竹塢主人。余晩年友也。守身斂迹。任眞推分。非其力不食。非其義不爲。至於老而益自鞱晦。惟學是力。一日余過之。見其垣宇蕭灑。無一長物。惟有數竽竹。蒼然於庭除間。乃知主人所以名其室者。有在於此。又知其學與年進。身與時晦者。亦未始非有得於此也。瞻彼掎而取學問切磋之美。見其貞而思名節砥礪之固者。想必視法古人而爲桑收之計。歲寒之策。綽有餘地。嗚乎。故處士澗齋翁。卽主人之元方也。與余有莫逆之契。而寄歲寒相守之約。實不淺淺。豈知翁不見留而此約又在於其季難也耶。俯伂今古。不勝悲慨。然今日之不相負約。乃所以爲不負當日之約。吾兩人。盍相共勉焉。非有平日之切磋。無以爲歲寒之砥礪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