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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석오기(石梧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45
석오기
용한당(容閒堂) 주인은 나의 죽마고우이다. 하루는 그의 족대부 석오당(石梧堂)의 당기(堂記)를 보여 주었는데, 기문을 지은 사람은 금오 산인(金鰲山人) 홍공(洪公)주 139)이었다.
오호라! 내가 석오당에 올라 이른바 석오라는 것을 본 지 오래 되었다. 일찍이 기억하건대, 그 한 구역의 돌이 평평하게 깔려 방정하였는데 넓이는 십여 명을 용납할 만하였고, 한 그루 오동나무는 둥글기가 수레의 일산 같았고 드리운 그늘은 또 족히 그 돌을 덮을 만하였다. 주인옹은 여기에서 노닐며 읊조리고 여기에서 머물며 지냈는데, 그 그윽한 경치는 형언할 수 없었다.
몇 해 전에 듣건대 주인옹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는데, 내가 생각하기를 옹의 흥치로 지금 비록 이 돌과 오동나무를 소유할 수 없지만 새로 우거하는 문 앞에 반드시 어떤 물건이든 다시 돌과 오동나무 같은 것을 두었으리라 여겼다. 지금 당의 기문을 보건대, 바로 다시 석오(石梧)로 자처하였으니, 어찌 옹은 사물에 국한되는 것이 이와 같은가? 아!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통달한 것이다.
무릇 사물을 완호하면 국한되고 이치를 따르면 통달하니, 돌과 오동나무는 하나의 사물이지만 돌과 오동나무가 될 수 있는 이치는 실로 하나의 사물이 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능히 지절(志節)에 힘쓰고 힘써 확고하여 꺾이지 않는다면 누가 내 마음이 돌이 아니라 하겠으며, 진실로 능히 취사(取舍)를 분별하여 그 큰 것을 확립하면 누가 그 오가(梧檟)를 버리라주 140)고 하겠는가. 선을 가려서 굳게 지키는 도는 그 대강이 절실하여 은연히 보통의 명물(名物)에 함축시키는 것이다. 이에 옹이 돌과 오동나무를 위한 것은 사물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안 지가 오래 되었으니, 어찌 한 구역 돌과 한 그루 나무가 있고 없는 것에 얽매이겠는가. 이것이 집을 떠나 임시로 지내는 곳에 돌과 오동나무를 가까이 하지 않지만 옹이 돌과 오동나무를 위하는 것은 실로 여전한 이유이니, 전날 경물의 사이에 서로 기약한 것은 그 알았던 것이 또한 너무 천박하지 않은가.
의림(義林)은 비루한 사람이라 본래 족히 따질 만한 것이 없으니, 원컨대 석오옹(石梧翁)의 뒤를 따라 이 의리를 강론하여 밝히고, 또 금오 산인과 용한당 주인과 함께하여 노년의 계획으로 삼기를 바란다.
주석 139)금오 산인(金鰲山人) 홍공(洪公)
홍경고(洪景古, 1645~1699)를 말한다. 호는 팔우(八愚),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주석 140)오가(梧檟)를 버리라
맹자가 "지금 장사가 오동나무와 개오동나무를 버리고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천한 원예사가 되는 것이다.[今有場師舍其梧檟, 養其樲棘, 則爲賤場師焉.]"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인데, 이는 곧 사람이 중대한 자기의 심지(心志)는 기를 줄 모르고 사소한 구복(口腹)이나 채우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孟子 告子上》
石梧記
容閒堂主人。余竹馬友。一日示其族大父石梧堂堂記。記之者。金鰲山人洪公也。嗚乎。余升石梧堂。見所謂石梧者久矣。曾記其一區石。平鋪方正。廣可容十數人。一株梧。團如車盖。所吐之陰。又足以庇其石。主人翁游詠於斯。盤旋於斯。其窈窕景致。不可名狀。數歲前。聞翁移寓他所。余謂以翁之興致。今雖不得有此石梧。而新寓門前。必有何物復有如石梧者。今見堂記。乃復以石梧自居。何翁之局於物如是耶。噫。非局也。乃所以通也。夫玩物則局。循理則通。石梧一物也。而其可以爲石梧之理。固非一物之所獨得。苟能勉勵志節。確然不拔。則孰謂我心匪石。苟能辨别取舍。立乎其大。則孰謂舍其梧檟。擇善固執之道。其梗槩切實。隱然含蓄於尋常名物之地。於是乎知翁之爲石梧。不在於物而在於己久矣。豈繫乎一區右一株木之有無哉。此所以離室僑居。不與石梧相近。而翁之爲石梧。固自若也。前日之相期於景物之間者。其爲知不亦淺乎。義林鄙生也。本不足爲有無。願從石梧翁之後。講明此義。又與金鰲山人容閒主人共之。以爲桑榆之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