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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파기(三坡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41
삼파기
이릉(爾陵)주 114)의 치소 북쪽 10리에 백암(白巖)이 있는데 대개 이름난 마을이다. 물이 동남쪽으로부터 오는 것의 천만 갈래 물길이 여기에 이르러 합해져 앞에서 멈추어 고이고, 산이 서북쪽으로부터 뻗어 오는 것의 천만 봉우리가 여기에 이르러 그쳐서 좌우로 나열해 있다. 그윽하고 깊으면서 시원하고, 주위를 둘러싸면서도 넓고 평평하여 이미 이름하여 형상할 수 없다. 북쪽에는 상좌봉(上座峰), 남쪽에는 발우봉(拔尤峰), 서쪽에는 응봉(鷹峯)이 있어 셋으로 나열하여 정치(鼎峙)하고 있으니, 마치 거인(鉅人)과 장덕(長德)이 밝은 거울과 그림 병풍 사이에 서로 마주하여 함께 인사하고 있는 것 같다. 대개 백암은 이릉의 빼어난 승경이고, 이 삼봉은 또 백암의 승경이다.
나의 벗 삼파자(三坡子)는 이곳에 세거하여 그대로 호로 삼았다. 그러나 '봉(峰)'이라 하지 않고 '파(坡)'라고 하였으니, 또한 설명할 것이 있는가? '봉'은 높은 것이고 '파'는 낮은 것이니, 외면의 이름은 낮게 하려고 하고 내면으로 힘쓰는 실상은 높게 하려고 한다. 하늘의 높음으로 산보다 낮은 것이 축(畜)이 되고,주 115) 산의 높음으로 땅보다 낮은 것이 겸(謙)이 되니,주 116) 지금 외면으로는 파이고 내면으로는 산인 것은 또한 어찌 겸손하고 겸손한 대축(大畜)의 뜻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바로 군자가 경금(褧錦)주 117)하는 제일의 법이니, 내 알건대 삼파(三坡)의 봉(峯)은 반드시 위승경(魏升卿)의 오천 길주 118)과 더불어 그 높이를 같이하고 한 지방의 빼어난 승경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주석 114)이릉(爾陵)
이릉부리현(爾陵夫里縣)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綾州面)의 옛 지명이다.
주석 115)하늘의……되고
산천대축(山天大畜)의 《주역》 〈대축괘(大蓄卦)〉 형상을 말한다.
주석 116)산의……되니
지산겸(地山謙)의 《주역》 〈겸괘(謙卦)〉 형상을 말한다.
주석 117)경금(褧錦)
비단 옷 위에 다시 홑옷을 덧입어서 화려함을 감춘다는 뜻으로,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경》 〈위풍(衛風) 석인(碩人)〉에 "비단옷을 입고 그 위에 홑옷을 덧입었다.[衣錦褧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주석 118)위승경(魏升卿)의 오천 길
잠삼(岑參)의 시 〈위승경을 전송하며[送魏升卿]〉에 "그대는 삼봉이 곧장 오천 길을 올라간 것을 보지 못했겠지만, 군의 문장을 보건대 또한 이와 같네.[君不見三峰直上五千仞, 見君文章亦如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三坡記
爾陵治北十里有白巖。盖名村也。水之自東南來者。千派萬流。至此而合。渟滀於前。山之自西北來者。千峯萬峀。至此而止。羅列於左右。幽深而軒敝。周遭而廣平。已不可名狀。北有上座。南有拔尤。西有鷹峯。參列鼎峙。如鉅人長德。相對拱揖於明鏡畫屏之間。盖白巖爾陵之選勝。三峯又白巖之選勝也。余友三坡子。世居於此。因以號焉。然不曰峰而曰坡。抑有說耶。峯高者也。坡下者也。名之在於外者。欲其下。實之務於內者。欲其高。以天之高而下於山則爲畜。以山之高而下於地則爲謙。今外坡而內山。亦豈非謙謙大畜之義耶。此是君子褧錦第一法。吾知三坡之峯。必得與魏升卿五千仞。同其高。而不止爲一方之選勝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