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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망화대기(望華臺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8
망화대기
사람은 지극히 정든 곳에 대해 그곳을 떠나게 되면 그리워함이 없을 수 없고, 그리워하면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 중에 언덕에 올라 부모님이 계신 곳을 바라본 사람이 있었고주 94), 높은 산에 올라 군자가 있는 곳을 바라본 사람이 있었으며, 개암나무와 감초를 노래하며 미인(美人)을 바라본 사람이 있었으니주 95), 이것은 인정상 그칠 수 없는 것이다.
운암(雲巖) 어른은 사문(斯文)의 훌륭한 유학자이자 성대한 조정의 저명한 관리로서 명성과 덕망을 한 몸에 받아 조정과 재야에서 눈을 비비고 바라보았는데, 시사(時事)가 일변하자 홀연히 수레를 돌려 만 길 높이 흩날리는 속세 밖으로 멀리 떠나 10 묘(畝)의 농토 사이에서 한가로이 소요하며 편안히 지냈다. 하지만, 오직 진심어린 단심(丹心)으로 그리워하며 해[임금]를 향한 정성스런 마음만은 막을 수 없었기에 마침내 집 옆에 있는 산 정상의 멀리 조망할 수 있는 곳에 하나의 대(臺)를 축조하고 한가한 날에 올라 서울을 우러러 바라보는 장소로 삼았다.
아, 문정(文正)은 강호로 물러나 있으면서 임금을 걱정하였고주 96), 횡거(橫渠)는 명아주와 콩잎 같은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임금을 그리워하였으니주 97), 이는 평상시에도 오히려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동서양의 나쁜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여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에 대한 생각주 98)을 그만둘 수 없는 지금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알지 못하겠지만, 어른께서 대에 올라 서울을 향해 바라보는 날에 과연 어떠한 감회에 젖어 들었을까? 천고토록 다 없어지지 않을 슬픔에 반드시 노래하고 통곡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아, 서산(西山)주 99)은 어디이며, 동해(東海)주 100)는 어느 곳인가? 구름이 깔리고 달이 밝은 산중의 망화대(望華臺)의 한 구역을 어느 누가 오늘날의 서산이 아니며, 동해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주석 94)언덕에…… 있었고
고향을 떠난 사람이 부모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로, 《시경》 〈척호(陟岵)〉에 "저 산에 올라서 아버지 계신 곳을 바라보노라……저 민둥산에 올라서 어머니 계신 곳을 바라보노라.[陟彼岵兮, 瞻望父兮.……陟彼屺兮, 瞻望母兮.]"라고 하였다.
주석 95)개암나무와……있었으니
미인(美人)은 훌륭한 임금을 가리키는 것으로,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고, 진펄에는 감초가 있도다. 누구를 생각하는가, 저 미인은 서방 사람이로다.[山有榛, 隰有苓. 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라고 하였다.
주석 96)문정(文正)은……걱정하였고
문정은 북송 초기의 명재상이자 문장가였던 범중엄(范仲淹)의 시호이다. 범중엄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묘당의 높은 곳에 처하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강호에 처하면 군주를 근심하니, 이는 나아가도 근심하고 물러나도 근심하는 것이다.[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라는 말이 보인다. 《范文正公集 卷7 岳陽樓記》
주석 97)횡거(橫渠)는……그리워하였으니
횡거는 송(宋)나라 유학자 장재(張載)의 호이다. 그는 인종(仁宗)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왕안석(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신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사퇴하고 향리로 돌아와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며 자신을 등용하고자 했던 신종(神宗)을 염려하였다.
주석 98)비풍(匪風)과……생각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은 《시경》 〈회풍(檜風)〉과 〈조풍(曹風)〉의 편명으로, 모두 주(周)나라의 왕업이 쇠망해 가는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외세로 인해 점차 쇠망해가는 조선 말기의 어지러운 상황에 대한 염려를 말한다.
주석 99)서산(西山)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하자 백이(伯夷)ㆍ숙제(叔齊)가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절의를 지키기 위해 은거했던 수양산(首陽山)을 가리키는 듯하다. 백이ㆍ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으려 할 적에 불렀다는 채미가(采薇歌)〉에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노라. 포악함을 포악함으로 바꾸었으면서도 그 그릇됨을 모르는구나. 신농과 우순과 하우가 문득 없어졌으니 나는 누구를 의지해서 돌아가야 하나. 아아, 가야지. 명이 쇠하였구나.[登彼西山兮, 采其薇兮. 以暴易暴兮, 不知其非兮.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兮. 於嗟徂兮, 命之衰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100)동해(東海)
전국 시대 제(齊)나라  의사(義士)였던 노중련(魯仲連)이 절개를 지켜 빠져 죽고자 했던 동해(東海)를 가리키는 듯하다. 노중련이 조(趙)나라에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고서 위(魏)나라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를 제국(帝國)으로 섬긴다면 포위를 풀어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은 저들이 천하를 차지하고 천자가 된다면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을지언정 차마 그 백성은 되지 못하겠다고 한 고사가 전해진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
望華臺記
入於至情之地。離之則不能無思焉。思之則不能無望焉。古人有陟岵屺而望父母。陟崔嵬而望君子。歌榛苓而望美人。此人情之所不能已也。雲巖丈人。以斯文偉儒。熙朝名宦。聲望期注。朝野拭目。及其時事一變。而幡然回轍。乃遠引遐舉於萬丈軟塵之外。而棲遲偃仰於十畝農圃之間也。惟是赤際丹心戀戀向日之誠。遏住不得。遂就舍傍山頂可舒遠眺處。占築一臺。以爲間日登臨瞻望京華之所。嗚乎。文正江湖之憂。橫渠藜藿之戀。此在平時而猶然。況今東塵西氛。瀰漫天地。而匪風下泉之思。有不可已。未知丈人臨望之日。果作如何懷緖也。其千古不盡之悲。必有非歌哭可足者。噫。西山何地。東海何處。雲月山中一區望華臺。誰謂非今日之西山東海也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