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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동계정기(東溪亭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6
동계정기
사군자(士君子)가 이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없다면 원림(園林)과 천석(泉石)이 뛰어난 곳을 택하여 오만함을 부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산이 굽이지고 물가의 경치가 뛰어난 곳에 있는 별장은 대체로 곤궁한 선비의 쇠잔한 힘으로는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부귀하여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어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거하고 여기에 머무는 목적은 글을 짓고 술을 마시며 놀고 즐기거나 한 때의 한가로움을 훔치기 위한 계책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은거하여 뜻을 구하는 유인(幽人 은사(隱士))으로서의 곧음과 길함을 볼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지역을 얻지 못하고, 그 지역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을 얻지 못하니, 사람과 지역이 서로 만나는 것이 또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고(故) 처사(處士) 신공(申公) 휘 광택(光宅)은 학술과 의로운 행실이 당시 벗들 사이에서 자자하게 회자되며 존중을 받았는데, 서석산(瑞石山 무등산) 아래 동계(東溪) 가의 한 구역에 집을 짓고 도를 강설하고 학문을 창도하며 유유자적하게 삶을 마쳤다. 대저 신공은 남쪽 고을의 고상한 선비이고, 서석산은 남쪽 지방의 명승지이니, 이는 사람과 지역이 서로 만나고, 정경과 마음이 서로 맞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이 서석산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진실로 공에게는 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석산이 아니더라도 공이 거처하면 좁은 집은 넓은 집이 될 것이고, 공이 머무르면 노지(露地)는 이름난 정자가 될 것이다. 반면에 만약 서석산이 공을 만나지 않았다면 수백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지역이 반대로 시내와 숲이 부끄럽게 여기는 허물이 있게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당시 서로 만나 알아줌을 얻게 된 것은 공의 복이 아니라, 바로 서석산의 행운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장차 한번 찾아가서 백 년 뒤에 정채(精釆)를 상상해보고, 인하여 서석산을 위해 축하하려 한다.
東溪亭記
士君子旣不得有遇於斯世。則當占園林泉石之勝以寄敖焉足矣。然山之曲水之涯。名區別庄。類非窮士孱力所能排置。而舉爲富貴繁華人粧點。然則其所以爰居爰處者。不過爲文酒遊衍。一時偷閒計耳。曷嘗見隱居求志。幽人貞吉者乎。有其人。未必得其地。有其地。未必得其人。人地相得。其亦難矣哉。故處士申公諱光宅。學術行義。藉藉見重於一時士友之間。就瑞石下東溪上。築一區屋子。講道倡學。優游卒歲。夫申公南州之高士。瑞石南方之勝境。此其非人地相得境情相稱者耶。然公而不遇瑞石。固不害爲公。湫屋是廣居。露地是名亭。若瑞石而不遇公。則百年天荒。反不免有澗愧林慙之累。是知當日之賞音。非公之福。而乃瑞石之幸也。余雖老且病。將一理巾屐。想象精釆於百年之後。因以爲瑞石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