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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경독재기(耕讀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5
경독재기
일찍이 한창려(韓昌黎 한유(韓愈))가 지은 〈동생행(蕫生行)〉주 89)을 읽은 적이 있는데, 삼가 생각건대, 그의 지극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반드시 적지 않을 것으로 상상되는데 끊임없이 칭찬하며 말하는 것은 겨우 아침에 밭을 갈고 저녁에 글을 읽었다는 몇 건의 일 뿐이다.
나무를 깎아 정전(井田)을 구획한 때로부터 여덟 식구든 다섯 식구든 어느 집이 밭에서 힘들여 일한 집이 아니겠으며, 서계(書契)를 만들어 결승(結繩)의 정사를 대신한 때로부터 상상(上庠 태학(太學))이든 하상(下庠 소학(小學))이든 어느 사람이 학교에 나아가 공부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만일 사세(事勢)와 재력(財力)이 미치지 못하고 형편상 학업에 전념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선비가 혹 밭갈이를 병행하기도 하였고, 농부가 혹 독서를 겸하는 것도 항상 밥을 먹는 것처럼 흔한 일이었으니, 어찌 동생(董生)의 제일가는 도가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이것에 대해 일찍이 구구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문자는 우활하고 졸렬한데 일에 한가롭지 못하여 이따금 상충되기도 하였고, 지각과 근력이 매우 피로한 상태로 망망하게 집에 돌아오면 이길 수 없는 노곤함에 혼미함과 졸음이 교대로 침범하여 비록 정신을 차려 깨고자 하더라도 곧바로 다시 전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리곤 하였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몸이 이미 일을 시작하게 되면 마음도 함께 갈팡질팡 왔다 갔다 하면서 뜻이 날로 빼앗기게 되니, 비록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책을 마주할 생각이 들지 않고 곧바로 마음이 밖으로 내달리게 된다. 이것이 어찌 나만 그렇겠는가.
무릇 사람의 힘은 두 가지 일을 편안하게 수행하기 어렵고,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생각에 작용하기 어려워 이쪽 일에 편안하면 저쪽 일에 방해가 되고, 저쪽에 마음이 작용하면 이쪽에 마음이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세상의 이른바 주경야독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러한 폐단이 전혀 없을 줄 어찌 알겠는가. 반드시 독실하고 강인하여 우뚝하게 빼앗을 수 없는 뜻이 있는 연후에야 한 몸의 기운이 뜻을 따르지 않음이 없게 되어 약했던 것은 강해지고, 혼미했던 것은 명철해지면서 갈팡질팡하던 것들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다. 이에 문공(文公)이 일컬었던 뜻과 동생(蕫生)이 성취했던 행실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의 벗 정경지(鄭敬之)는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별호)의 남쪽에 은거하며 그 집의 편액을 '경독(耕讀)'이라 하였으니, 실제로 행했던 일로 말미암아 마음을 세우고 덕에 나아감에 이보다 절실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경지는 어려서는 효성스럽고 우애롭다고 일컬어졌고, 늙어서는 학문을 좋아한다고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아내와 자식들이 아침저녁으로 근심할 것이 없었고, 밖으로는 벗들과 모여 강학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니, 대체로 동생(董生)이 성취한 바와 깊이 들어맞는 바가 있고, 어리석은 우리들처럼 명분만 따르고 실상이 없이 옛 습관대로 세상일에 빠져 지내는 사람과 비견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인하여 더욱 힘써서 마침내 원대한 뜻을 이룬다면 이릉의 계산(溪山)이 회수(淮水)의 동백산(桐柏山)주 90)이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자자하게 회자(膾炙)될 줄 어찌 알겠는가.
주석 89)동생행(蕫生行)
한유(韓愈)의 시 〈차재동생행(嗟哉董生行)〉을 말한다. 동생(董生)은 당(唐)나라 고사(高士) 동소남(董召南)으로, 진사과에 낙방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주경야독하면서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처자식이 근심이 없도록 하니, 그의 벗 한유가 이 시를 지어서 그를 칭찬하였다. 《五百家注昌黎文集 卷2》
주석 90)회수(淮水)의 동백산(桐柏山)
동소남(董召南)이 은거했던 곳이다.
耕讀齋記
嘗讀韓昌黎所撰蕫生行。竊意其至行高節。想必不少。而所以娓娓稱道。乃在於朝耕夜讀數件事而已。自剡木畫井。八口五口。孰非力田之家。自造書代繩。上庠下庠。孰非就學之人。至若事力不逮。勢難專業。則士或倂耕。農或兼讀。亦是恒恭飯。奚足爲董生第一道哉。余於此。曾有所區區經試者矣。文字迂拙。不閑事役。而種種撞着。知力甚勞。茫茫歸家。不勝困倒。昏睡交侵。雖欲回醒。旋復如故。豈惟此也。身旣執役。心亦與俱。憧憧往來。志日見奪。雖有餘力。無意對冊。便成坐馳。豈惟余也。凡人力難以兩便。人心難以二用。便於此則妨於彼。用於彼則奪於此。世之所謂耕讀者。安知保無此弊也。必須篤實剛毅。有卓然不可奪之志。然後一身之氣。莫不從令。而弱者可强。昏者可明。憧憧者可以妥帖矣。於是乎知文公所稱之意。董生所造之行。不偶爾之。余友鄭敬之。隱於爾陵之南。扁其堂曰耕讀。因其行事之實。而立心進德。無有切於此者。敬之幼以孝悌稱。老而好學聞。內無妻子朝夕之憂。外有朋友講聚之樂。盖董生所造。深有所契。而非如愚輩徇名無實。因循汨没之比也。若因此加勉。卒究遠大。則安知爾陵溪山不爲淮水桐柏而藉藉於天下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