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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대은기(臺隱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4
대은기
죽수(竹樹) 관아 남쪽 10리에 연봉(鳶峯)이 있고, 연봉 아래에 여염집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 가승동(佳勝洞)주 87)이다. 연봉의 중간 허리쯤에 대(臺)가 있는데, 너비는 수십 보가 되고, 높이는 수십 길이나 된다. 구불구불 이어져 오던 골짜기가 평평하게 멈추고, 깊고 으슥한 정경이 툭 트이면서 뭇 산들이 형상을 바치고, 수많은 시내가 모여드는 이곳이 바로 정공(鄭公)의 은일처[薖軸]이다.
공은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시작하여 사조(詞藻)가 아름답고 뛰어났는데, 여러 번 향시(鄕試)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빛나는 문장을 도로 거두어들이고 몸이 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삼을 기르고 기장을 심어 여러 식구들에게 제공했고, 경전 공부에 힘쓰고 문장을 닦아 후학들에게 응대하였으며, 본성에 맡기고 분수를 지키며 영리를 추구하거나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그 뛰어난 풍도와 빼어난 자취만은 잠겨 있어도 밝게 보이고 감추어도 드러나서 사방의 선비들이 대에서 은둔하고 있는 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문에 공에 대해 말할 때면 반드시 '대은(臺隱)'이라 일컬었으니, 그 지역을 일컫는 것이 그 사람을 일컫게 된 것이다.
아, 사람은 진실로 한 시대에 뛰어난 사람이고, 지역도 한 지역에서 뛰어난 곳이니, 사람이 지역과 부합하고, 경계가 성정과 어울려서 서로 맞아 떨어질 수 없고, 서로 필요로 하여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백세가 지난 뒤에 이 마을을 지나면서 이 대에 임하는 자들 중에 어느 누가 백세 전에 공이 존재했음을 알지 못하겠는가. 삼봉(三峯)의 천 길 높이에서 위승경(魏升卿)의 문장을 볼 수 있고, 비수(肥水)의 백 리 굽이에서 동소남(董召南)의 의로운 행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주 88)
주석 87)가승동(佳勝洞)
현 전남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佳鳳里)로, 예전 가승동(佳勝洞) 마을의 가(佳)자와 봉무정(鳳舞亭)마을의 봉(鳳)자를 합하여 가봉리라 하였다.
주석 88)삼봉(三峯)의……것이다
성당(盛唐) 시인 잠삼(岑参)은 장안(長安)에 있을 때에 〈송위승경(送魏升卿)〉을 지어 과거에 급제하고 동도(東都)로 돌아가는 위승경(魏升卿)의 문장이 삼봉(三峯)과 같다고 칭송하고, 한유(韓愈)는 〈차재동생행(差哉蕫生行)〉을 지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회수(淮水)와 비수(淝水) 사이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자식을 사랑하는 동소남(董邵南)을 칭송하였는데, 이러한 옛 일에 견주어 연봉((鳶峯)과 대(臺)를 보면 위승경처럼 뛰어난 문장과 동소남만큼이나 훌륭한 행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臺隱記
竹樹治南十里。有鳶峯。峯之下閭閻櫛比者。是佳勝洞。峯之中腰有臺。廣可數十武。高可數十尋。逶迤而平停。窈窕而軒敞。羣峀獻狀。百川朝堂。卽鄭公薖軸也。公早業功令。詞藻藹蔚。累舉鄉解。不利禮部。回光斂輝。身不出臺外一步。藝麻種黍以供百口。劬經績文以應後學。任眞推分。無營無欲。惟其偉韻逸躅。潛昭闇章。而四方之士。無不知公之隱乎臺矣。是以語及於公。必以臺隱稱之。稱其地。所以稱其人也。嗚乎。人固一時之勝。地亦一方之勝。人與地符。境與情稱。相得而不可離。相須而不可闕。百世之下。過是洞而臨是臺者。誰不知公之在於百世之上乎。三峯千仞。可以見魏升鄕之文章。肥水百里。可以想董召南之行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