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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남계기(藍溪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3
남계기
《주역》에 이르기를,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주 80) 하였고, 공자가 이르기를,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는다."주 81) 하였으니, 이 때문에 조정에 있을 때에는 조정의 일을 말하고, 관청에 있을 때에는 관청의 일을 말하며, 공인(工人)들은 반드시 공방에 거처해야 하고, 축관(祝官)은 제기(祭器)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다.
윤 사문(尹斯文) 흥서보(興瑞甫)는 집이 가천(佳川)인데, 호가 남계(藍溪)이다. 가천은 남계와는 땅과 경계가 다르고, 서로 거리가 현격하게 머니, 이것이 어찌 강을 호수로 알고, 바다를 산봉우리라 부르는 것과 다르겠는가. 비단 지위를 벗어나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에 비견될 뿐만이 아니다. 남계는 진실로 이름난 지역이지만, 명성을 우선시하고 실질을 뒤로 하는 것은 사문의 뜻이 아니며, 가천의 물이 남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마치 귀결처로 요약되는 뜻이 있는 것 같지만, 근원을 버리고 말류를 쫓는 것 역시 사문이 행하려는 것이 아니다.
옛적에 주 선생(周先生)은 연봉(蓮峯) 아래에 집을 짓고 그 집의 당호(堂號)를 '염계(濂溪)'라 하였고주 82), 주 부자(朱夫子)는 창주(滄洲) 가에 살면서 그 집의 편액을 '자양(紫陽)'이라 하였다.주 83) 월(越)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짓고, 북방 오랑캐의 말은 북풍에 의지하니, 사물의 본성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현인군자(賢人君子)로서 근본을 마음에 두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 응당 이와 같지 않겠는가.
사문은 영평(永平 경기도 포천 지역의 옛 지명)의 명문 종족으로, 대대로 영평의 남계에 거주하다가 중간에 이주하여 능주의 가천 사람이 된 지 이미 3대가 되었다. 과축(薖軸)주 84)을 기구(箕裘)주 85)처럼 여기고 헌면(軒冕)주 86)을 진흙처럼 여기며 문밖을 출입하지 않고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배운 것은 오직 주렴계과 주자양의 학문뿐이었고, 움직이고 고요히 지내는 것 하나하나와 말하고 침묵하는 것 하나하나를 주렴계와 주자양처럼 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 호칭과 표방함에 어찌 유독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아,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작용이 두루 하지 못한 바가 있고, 흩어져서 각기 다르기만 하고 화합하여 함께하지 못하면 본체가 확립되지 못한 바가 있다. 지금 생각이 지위를 벗어나지 않되 거처함에 편안함을 생각하지 않고, 몸은 산중에 있되 호칭은 산 밖에 있으니, 사문의 학문을 대강 알 수 있다. 내가 비록 영민하지는 못하지만 하얀 실을 그대의 쪽빛에 맡기기를 바란다.
주석 80)군자는……않는다
《주역》 〈간괘(艮卦) 상(象)〉에 "산이 거듭함이 간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생각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兼山艮, 君子以, 思不出其位.]"라는 말이 보인다.
주석 81)그……않는다
《논어》 〈태백(泰伯)〉에 보인다.
주석 82)주 선생(周先生)은……하였고
주 선생은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이다. 그는 만년에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 여산(廬山)의 연화봉(蓮花峯) 기슭에 거주하면서 그 앞에 흐르는 시내를 염계라 이름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宋史 卷427 周敦頤列傳》
주석 83)주 부자(朱夫子)는……하였다
주 부자는  주희(朱熹, 1130~1200)를 말한다. 그는 복건성 숭안(崇安)에 살면서 그의 부친 주송(朱松)이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서 독서했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집 이름을 '자양서실(紫陽書室)'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후인들이 주희를 '자양'으로 불렀다.
주석 84)과축(薖軸)
은거의 삶을 비유하는 말로, 《시경》 〈고반(考槃)〉에 "숨어 살 집이 언덕에 있으니, 큰 선비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라고 한 것과 "숨어 살 집이 고원에 있으니, 큰 선비가 소요하는 곳이로다.[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것에서 끝의 한 글자씩 가져와 합성한 것이다.
주석 85)기구(箕裘)
키와 가죽옷이라는 뜻으로,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훌륭한 궁인의 아들은 반드시 키를 만드는 것을 배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86)헌면(軒冕)
수레와 면류관이라는 말로, 관작과 봉록이 높은 벼슬을 비유한다.
藍溪記
易曰。君子思不出其位。孔子曰。不在其位。不謀其政。是以在朝言朝。在官言官。工必居肆。祝不越俎。尹斯文興瑞甫。家佳川而號藍溪。夫佳之於藍。異壤殊境。相距懸然。是何異於認江爲湖喚海作嶺耶。非特爲出位越俎之比而已。藍固名區。而先名後實。非斯文之意也。佳之水注於籃。似若有要歸之義。而舍源趨流。亦非斯文之爲也。昔周先生築室蓮峯之下。題其堂曰濂溪。朱夫子僑寓滄洲之上。扁其室曰紫陽。越鳥南枝。胡馬北風。物性猶然。況賢人君子而其懷本戀舊。不應如是耶。斯文以永平名族。世居永之藍。中間移而爲綾之佳人。已三世矣。箕裘薖軸。塗泥軒冕。足不出門。名不出世。所學惟是周朱之學耳。一動一靜。一語一黙。無不欲周朱是似。則其於稱號標榜。奚獨不然。鳴乎。樂山而不樂水。則用有所不周。散殊而不合同。則體有所不立。今思不出位。而居不懷安。身在山中。而號在山外。斯文之爲學。可以槩矣。吾雖不敏。願以素絲付子之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