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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겸와기(謙窩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2
겸와기
높기만 하고 낮추지 못하며, 존귀하기만 하고 굽히지 못하는 것을 교만이라 이르니, 교만하면 흉하게 된다.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을 알지 못하며, 보존하는 것만 알고 망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거만이라 이르니, 거만하면 후회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하늘의 높음으로 땅에 낮추는 것은 〈태괘(泰卦)〉가 되고주 75), 산의 존귀함으로 땅에 굽히는 것은 〈겸괘(謙卦)〉가 되니주 76), '겸(謙)'의 시의(時義)가 크지 않은가.
지위가 천하에 으뜸이되 필부를 예우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은 제왕(帝王)의 겸이고,주 77) 때에 맞추어 대유(大有)에 올라 천자에게 향응하는 것은 공후(公侯)의 겸이며,주 78)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 입 안의 음식을 뱉어내며 선비에게 몸을 낮춘 것은 재상(宰相)의 겸이다.주 79) 지혜가 천만 사람보다 뛰어나면서도 나무꾼에게도 묻는 것은 성인(聖人)의 겸이고,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걸치듯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춘 채 담박하고 검소하여 안으로 쌓아 두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학자(學者)의 겸이다. 덕이 넓어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다스려진 세상에서의 겸이고, 주머니 끈을 묶듯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아서 허물이 없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에서의 겸이다.
나의 벗 겸와옹(謙窩翁)은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별호)의 북쪽에 은거하여 백발이 되도록 경서를 궁구하고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그 겸손의 의리를 터득함이 깊었으니, 이를 가져와 호로 삼은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주역》의 여러 괘 중에 순전히 길하여 흉함이 없는 것은 오직 〈겸괘(謙卦)〉만이 그러하니, 그렇다면 옹이 만년에 누리게 될 복은 점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주석 75)하늘의……되고
《주역》 〈태괘(泰卦)〉의 괘상(卦象)을 말한 것으로,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 ☷)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 ☰)가 아래에 있어 하늘이 땅에게 몸을 낮추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주석 76)산의……되니
《주역》 〈겸괘(謙卦)〉의 괘상(卦象)을 말한 것으로,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 ☷)가 위에 있고, 산을 상징하는 간괘(艮卦 ☶)가 아래에 있어 드높은 산이 평평한 땅에 자신을 굽히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주석 77)지위가……겸이고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가 황제에 오른 뒤에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하였던 엄광(嚴光)에게 두터운 예물을 보내 초빙하고 벼슬을 주었지만, 엄광은 끝내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동강(桐江)에서 낚시질을 하며 종신토록 은거하였는데, 훗날 범중엄(范仲淹)이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서 "〈둔괘 초구〉에 '양덕이 바야흐로 형통하거늘 능히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몸을 낮추어 민심을 크게 얻는다.' 하였으니, 광무제가 이것을 따랐다.[在屯之初九, "陽德方亨, 而能以貴下賤, 大得民也". 光武以之.]"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83 嚴光列傳》 《古文眞寶 後集 卷6》
주석 78)때에……겸이며
대유(大有)는 《주역》 64괘 중 14번째 괘의 이름으로, 소유한 것이 많다는 뜻이다. 〈대유괘(大有卦) 구삼(九三)〉에 "공이 천자에게 향응하니. 소인은 하지 못한다.[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라고 하였는데, 《역전(易傳)》에 이르기를, "삼효가 크게 소유한 때를 당하여 제후의 지위에 있으면서 풍부하고 성대함을 소유하면 반드시 이로써 천자에게 향응한다. 이는 자신의 소유를 천자의 소유로 여김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신하로서의 떳떳한 의리이다.[三當大有之時, 居諸侯之位, 有其富盛, 必用亨通于天子. 謂以其有, 爲天子之有也, 乃人臣之常義也.]라고 하였다.
주석 79)신하로서……겸이다
옛적에 주나라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하면서 천하의 어진 인재들을 등용하는 데 급급하여 "머리를 한번 감는 동안에도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서 나갔고, 밥 한 끼를 먹는 동안에도 입 안의 음식을 세 번이나 뱉어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史記 卷33 魯周公世家》
謙窩記
高而不能下。尊而不能降。是謂驕。驕則凶。知得而不知喪。知存而不知亡。是謂亢。亢則悔。是故以天之高而下於地則爲泰。以山之尊而降於地則爲謙。謙之時義。不其大矣乎。位加四海而禮下匹夫。帝王之謙也。時躋大有。而享于天子。公侯之謙也。位極人臣。而吐哺下士。宰相之謙也。智出千人。而詢于芻蕘。聖人之謙也。絅錦淡簡。內而不出。學者之謙也。德博而不伐。治世之謙也。括囊而無咎。亂世之謙也。余友謙窩翁。隱居爾陵之北。白首窮經。囂囂自樂。其有得於謙謙之義者深矣。引而號之。不亦宜乎。易諸卦純吉無凶。惟謙爲然。然則翁晚境所享。不占而可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