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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우재기(愚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31
우재기
어떤 객이 주인에게 힐난하기를, "무릇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어리석다고 말하면 이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고, 스스로 자기가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면 이는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인께서는 이미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는 어리석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어리석음[愚]'으로 집을 명명하셨는지요?
하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해명하기를, "어리석음은 지혜로움에 대비시켜 말한 경우가 있으니, 공자의 이른바 '하우(下愚)는 변화시킬 수 없다.'주 73)라는 것이 이것이고, 또 기교에 대비시켜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자의 이른바 '순수한 어리석음을 온전히 할 수 있다.'주 74)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살면서 하나의 흠과 하나의 병통이 어찌 일찍이 기교 가운데서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까. 내용이 없이 겉만 화려한 문체를 숭상하고 온갖 솜씨를 펼치는 데 힘쓰는 것은 문사(文詞)의 기교이고, 남의 뜻을 받들어 맞추고 권세를 쫓아 아부하며 용의주도하게 온갖 행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공을 세워 이름을 세상에 떨치려는 자의 기교이며, 은미하고 편벽된 것을 찾아 자신만의 특이한 술책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방술사(方術士)의 기교이고, 술수와 농락으로 이익을 이루는 것은 시정(市井) 상인의 기교입니다. 심지어 언어나 필찰, 의복, 그릇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상투적인 기교들이 강물처럼 도도하게 유행하여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이에 대해 우뚝 서서 돌이킬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자가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주인은 타고난 바탕이 순박하고 진실하며, 몸가짐이 바르고 진중하며, 처신하는 데에 부끄러움을 알고, 일을 처리하는 데 근본이 있습니다. 그 말은 간략하고 어눌하며, 그 문장은 평이하고 담백합니다. 부친을 위해 과거에 응시하되 벼슬을 구하거나 청탁하는 일이 없고, 생계를 꾀하기 위해 농사에 힘쓰되 달리 영리를 추구하는 일이 없습니다. 읽는 것은 성현의 글에 지나지 않았고, 거처하는 곳은 비바람을 막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일토록 함께 어울리면서도 쓸데없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고, 책상이나 자리 주변에 진기한 물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세상의 기교를 부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지만, 순수한 어리석음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도리어 어리석지 않게 되는 것인 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 주인이 어리석다 자처하는 것은 타고난 바탕에서 얻어진 것일 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 점차 많아지고, 세간의 일을 겪은 세월이 점점 오래되다 보니 세상의 병이 되는 것으로 기교만한 것이 없고 기교를 치료하는 약이 되는 것으로 어리석음만한 것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힘을 다해 잘못을 바로잡고 고쳐서 일신의 동정(動靜)이 모두 한결같이 여기에서 나오게 하고, 또 온 세상을 들어 치료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 한 글자의 부절(符節)을 게시하여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이는 내가 집을 명명한 본래 의도는 아니지만, 집을 명명하여 스스로를 경계하는 뜻에 자못 도움이 될 듯하니, 바라건대 나를 위해 기문(記文)으로 지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주석 73)하우(下愚)는……없다
하우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唯上知與下愚不移]"라고 했는데, 상지(上知)는 이미 선(善)의 극치에 이르렀으므로 더 변화할 것이 없고, 하우는 선을 믿지 않고[自暴] 선을 행하지 않으므로[自棄] 변화해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주석 74)순수한……있다
주희(朱熹)는 과거 공부의 폐해를 지적하며 "그들이 익히는 것이 과거 공부에 지나지 않아서 기량이 더욱 정밀해질수록 마음씨는 더욱 나빠지니, 이는 가르치지 않아서 오히려 그 순수한 어리석음을 보전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한다.[其所習不過科擧之業, 伎倆愈精, 心衍愈壞. 蓋不如不敎猶足以全其純愚之爲愈也.]"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27 答詹帥書》
愚齋記
客有難於主人曰。凡人自謂已愚。是不愚者也。自謂不愚。是眞愚者也。主人旣知其愚。是不愚也。奚復以愚名齋焉。傍有解之者曰。愚有對智而言者。孔子所謂下愚不移是也。又有對巧而言者。朱子所謂全其純愚是也。居今之世。一疵一病。何嘗不從巧中出也。體尙浮虛。務盡伎倆者。文詞之巧也。承迎趨附。用意百態者。功名之巧也。索隱搜僻。好自立異者。方術之巧也。機關籠絡。以濟其利者。市井之巧也。至於言語筆札衣服器用。都是此個窠臼。如水滔滔。惟恐不及。其能挺然於此而思欲反之者。有幾人也。主人天姿朴實。容儀質重。行已有耻。處事有本。其言也簡而訥。其文也平而淡。爲親應擧而不用干託。計口力穡而無他營求。所讀不過聖賢之文。所居不過風雨之庇。終日遊衍。無一剩語。左右几席。無一長物。以世之巧者觀之。固愚矣。而不知其全其純愚者。乃所以不愚也。嗚乎。主人之愚。不惟其得於天姿。讀書漸多。閱世漸久。知世之爲竊病者。莫如巧。巧之爲藥者。莫如愚。於是用力矯捄。使一身動靜。渾然一出於此。而又欲擧一世而藥之。故揭此一字符。使人人得以見之也。主人曰。此非吾名齋之本意然於名齋自警之義。頗似有補。願爲我記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