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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효자 송암 오공 정려기(孝子松庵呉公旌閭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29
효자 송암 오공 정려기
효자는 고(故) 임진년의 충신 증(贈) 병조 참판(兵曹參判) 휘 방한(邦翰)의 8세손으로, 세상에 충효로 알려졌다. 효자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을 지녀 어버이에게 병환이 있으면 곧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지 않았고, 어버이가 시킨 일을 처리할 때에는 뜻을 다해 받들어 따랐다.
8살 때에 들녘에 나갔다가 부친이 직접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서 무더위를 무릅쓴 채 고생하시는 것을 걱정하여 몰래 주점으로 가 술을 사서 부친에게 드리려고 하자, 술집 여인이 그의 생각에 감동하여 좋은 안주까지 함께 주고 돈을 받지 않았다.
14살 때에 형과 함께 가숙(家塾)에서 독서하였는데, 하루는 형에게 말하기를, "집이 이렇게 가난하여 늙으신 부모께서 몸소 힘든 일을 하시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자식으로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응당 직접 집안일을 주관해야만 형님께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때부터 좌우로 노역을 맡아서 남은 힘을 다 쏟아 내면서 집안의 형편이 점점 펴지고 변변찮은 음식일망정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가정을 이루었을 때에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 분가하였지만,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올리는 예절을 빠뜨린 적이 없었고, 모든 일은 반드시 부모님 일을 먼저하고 자신의 일은 나중에 하였다. 형제 다섯이 차례로 분가할 때마다 효자는 반드시 자신이 집기를 마련해 주었고, 형님 집에 비용을 분담시키거나 손상시키지 않게 하였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서는 매달 자신이 15일의 음식을 바쳤고, 나머지 15일은 동생 셋이 각각 5일의 음식을 바쳤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일을 전하여 미담으로 삼을 정도였다. 모부인(母夫人)이 병에 걸려 매우 위독했을 때 효자가 손가락을 깨문 피로 다시 소생시켰으나 이틀이 지난 뒤에 끝내 일어나시지 못하자, 슬픔이 너무도 심하여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홀로 남은 부친을 모시는 데 더욱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허전하고 적적하신 마음을 위로해 드렸고, 부친께서 좋아하셨던 옛 친구 분들을 힘껏 초청하여 부친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다. 부친의 상을 당해서는 초상을 집행하는 예절에 늙고 쇠약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의례에 따라 마음을 다하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상차(喪次 상주가 머무는 방)를 떠나지 않았으며, 하루걸러 묘소를 살폈다.
그 형님을 섬김에 마치 엄한 부친을 섬기는 것처럼 하여 진퇴와 출입,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반드시 여쭈어 행하였고,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슬픔이 자못 심하였지만, 상례(喪禮)에 관한 모든 일을 반드시 자신이 직접 집행하고 집안사람이나 자제들에게 맡긴 적이 없었다.
형의 아들이 혼사를 의논하면서 혼례 물품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훗날로 미루고자 하자, 효자가 그를 위해 몸소 모든 물품들을 마련하여 혼례를 거행하였고, 이러한 마음을 친족과 인척, 벗들에게까지 미루어서 곤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살아남은 자를 위로하는데 곡진하게 은혜로운 마음이 있었다.
아, 세도(世道)가 낮아지고 풍속이 나빠져 진실한 마음이 날로 야박해져 가지만, 효자와 같은 참된 마음과 진실한 행실을 지닌 사람은 오늘날 세상에 옛사람이라 이를 만하였으니, 종친과 친족들은 효성스럽다고 일컬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손하다고 칭찬하였으며, 아름다운 소문이 조정에까지 알려져서 정려(旌閭)의 표창이 성대하고 장중하게 내려왔다. 골짜기에 핀 난초의 향기와 깊은 못에서 우는 학의 울음소리는 끝내 절로 숨길 수 없으니, 그 이치가 어찌 참으로 그렇지 않겠는가.
그의 맏아들 장섭(長燮)이, 내가 부친과 종유(從遊)한 날이 오래되고 부친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이 가장 익숙하다고 하여 한마디 말로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孝子松庵呉公旌閭記
孝子故壬辰忠臣贈兵曹叅判諱邦翰八世孫。世以忠孝著聞。孝子幼有至性。親有疾。輒涕泣廢食。執使令。極意承順。八歲出野。見其父躬耕。悶其冒暑作苦。竊往店肆。將沽酒以餉之。酒媼感其意。輒具佳肴以與之。不受其直。十四歲與其兄。讀書家塾。一日告兄曰。家貧如此。而老親親執勞役。此豈人子安心處乎。吾當躬幹家務。兄主可以讀書。自是左右服勞。靡遺餘力。使家力漸舒。而菽水有賴。及有室。以親命分爨。而晨昏之節。未嘗廢闕。凡百事務。必先幹父。而後遂及於私。兄弟五人。漸次分爨。孝子必自備什物以給。使兄家無分損之費。其養親也每月自供十五日之饌。餘十五日。弟三人各供五日。鄕里傳以爲美談。母夫人遘疾甚危。孝子血指得甦。居二日竟至不起。哀毁過甚。幾於滅性。侍偏嚴。尤盡其誠。非甚故。不離側。以慰其窮寂。凡故舊所喜。極力招致。以悅親意。及遭故執喪之節。不以耆衰自恕。一遵情文。三年身不離喪次。間日展墓。事其兄如嚴父。進退出入。家事巨細。必稟而行。及兄歿。哀戚殊甚。喪事凡百。必自親執。未嘗委之於家人子弟。兄之子將議昏。以昏具未備。欲退後。孝子爲之躬辦凡具以行之。推以至於族戚朋友。賙窮恤匱。弔死問生。曲有恩意。嗚乎。世降俗下。眞情日薄。而如孝子之實心實行。可謂今世之古人也。宗族稱孝。鄉黨稱弟。以至令聞上徹。旌褒隆重。谷蘭之香。皐鶴之音。終有不得自掩者。其理豈不信然。其胤子長燮。以余從遊日久。見聞最熟。請一言以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