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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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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재기(澗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27
간재기
죽수(竹樹) 남쪽 한 고을에 연화봉(蓮華峯)이 있고, 연화봉 아래로 청량한 시냇물 한 줄기가 넘실넘실 굽이져 흐르는데, 그 깊이가 옷자락을 걷어 올려야 건널 수 있는 정도였다. 시냇가에 울타리가 쭉 늘어서 있는 마을을 간리(澗里)라 하고, 마을 곁에 맑고 깨끗한 한 가옥을 간재(澗齋)라 하는데, 나의 벗 이 사문(李斯文) 광빈보(光彬甫)가 그 주인이다.
하루는 그 집을 찾아갔다가 인하여 무슨 뜻으로 집을 '간(澗)'이라 한 것이지 물으니, 사문이 웃으며 말하기를, "시냇가에 있는 마을을 간리라 하는데, 간리에 있는 집만 유독 간재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네. 무릇 이름을 유독 다르게 짓는 것은 구별하기 위해서이네. 지금 시냇물이 천태산(天台山)에서 수십 리를 길게 뻗으며 굽이굽이 흐르고 있고, 이 시냇물을 끼고 있는 집이 수백 가옥이나 되는데, 모두 간재라 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사문의 은미한 뜻이 있을 것이네.
아, 세상에 나가고 은둔하는 것과 도를 행하고 감추는 것은 사군자가 몸을 세우는 큰 절목이네. 한 가지 예절이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달갑게 여기지 않고, 한 가지 일이라도 합당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데, 하물며 온 천지가 혼탁하여 세상이 도와 어긋나는 때임에랴.
사문은 정연(挺然)히 스스로 분발하고, 확고하게 자신의 뜻을 지킨 채 홀로 자고 깨어 말하고 지내지만 길이 이 즐거움을 잊지 않기로 맹세하면서 장차 옛사람이 은둔하며 지냈던[考槃] 시내주 65)에 대한 사모함이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연화봉의 시내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고, 고반의 시내는 군만이 홀로 대하는 것이네.
《주역》 〈규괘(睽卦)〉의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군자는 이를 본받아 함께하고 달리한다.' 하였는데, 정자가 이를 주해하여 말하기를, '크게 함께할 수 없는 자는 상도(常道)를 어지럽히고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이고, 홀로 달리할 수 없는 자는 세속을 따라 나쁜 것을 익히는 사람이다.' 하였네. 요점은 함께하면서도 달리할 수 있는데 있으니, 이것이 여러 사람이 함께 대하는 연화봉의 시내가 군만이 홀로 대하는 고반의 시내가 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니, 사문이 말없이 오랫동안 있다가 인하여 〈고반〉시 3장을 노래하고 시냇가에서 나를 전송하였다.
주석 65)홀로……시내
《시경》 〈고반(考槃)〉의 "고반이 시냇가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 홀로 자고 깨어 말하지만, 길이 이 즐거움을 잊지 않기로 맹세하도다.[考槃在澗, 碩人之寬. 獨寐寤言, 永矢弗告.]"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고반은 고사(高士)가 은둔해 지내는 집을 말한다.
澗齋記
竹樹南一坊有蓮華峯。峯下一條清澗。透迤渟滀。其深可揭。澗之上。藩落櫛比曰澗里。里之畔。一字蕭灑曰澗齋。余友李斯文光彬甫。其主人也。一日造其齋。因問齋之爲澗何義。斯文笑曰。里之在澗上者爲澗里。則齋之在澗里者。獨不爲澗齋乎。余曰否。夫名所獨獨。所以别之也。今澗自天台。延流十數里。夾澗而家者。不下數百。皆可爲澗齋乎。必有斯文微意之存焉。噫。出處行藏。士君子立身大節目。一禮之未備。有所不屑。一事之不合。有所不就。況在九有渾渾世與道違之日乎。斯文挺然自拔。確然自守。而獨寤寐言。永矢不諼。將有慕於古人考槃之澗。然則蓮華之澗。衆所同也。考槃之澗君所獨也。易睽之象曰。君子以同以異。程子解之曰。不能大同者。亂常拂理之人也。不能獨異者。循俗習非之人也。要在同而能異。此非澗之所以爲澗乎。斯文默然久之。因歌考槃詩三章。送我於澗之濱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