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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헌기(德軒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26
덕헌기
호에는 그 거처를 표시한 것이 있는데, 서산(西山)이나 북산(北山) 따위가 이것이고, 그 덕을 표시한 것이 있는데, 경재(敬齋)나 의재(義齋) 따위가 이것이다. 능주 서쪽에 있는 천태산(天台山)는 남쪽 지방의 명승지로, 천태산(天台山)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구불구불 이어져 오다 10여 리 쯤 되는 곳에 이르러 고개를 돌린 채 단정히 선 모습으로 우뚝 수려하게 솟구쳐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덕봉(德峯)이라 한다.
내 벗 박공 우서(朴公禹瑞)의 집이 그 아래에 있는데, 그 집을 덕헌(德軒)이라 명명하였으니, 대체로 그 거처를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성문(聖門)의 요결(要訣)이 옛 문헌에 드러난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덕' 한 글자처럼 요약되고 극진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비록 그 거처를 표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덕을 표시한 것도 일찍이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공은 몸가짐이 조심스러웠고 세상에 쓰일 재주를 품었으면서도 이 세상에 없는 듯 자취를 감춘 채 조금도 내보이지 않았으니, 덕을 몸에 쌓음이 깊었다. 효성스럽고 우애하며 시례(詩禮)주 64)를 익히고 가업(家業)을 계승하여 자손들이 성대하게 번창하였으니, 덕을 집안에 폄이 두터웠다. 덕을 쌓고 폄이 이미 깊고 두터웠음에도 오히려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아서 항상 바라보며 경계하고 성찰할 수 있는 것이 비록 수석(水石)의 아름다운 이름에 있더라도 감히 태만하지 않았으니, 이곳에 반드시 덕봉의 신령한 기운이 내려와 모여서 장차 후세에 도와 발현시킬 것을 또한 헤아릴 수 있겠는가.
백세 이후에 이 산을 보고서 공의 거처를 알 것이고, 이 산의 모습을 보고서 공이 체득한 덕을 알 것이니, 공은 산이 아니라고 기필하지 못할 것이고, 산 또한 공이 아니라고 기필하지 못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조그만 언덕이나 개밋둑만하니, 비록 바람결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지탱하고자 하더라도 높은 산 아래에서는 단지 산이 되기 어렵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다.
주석 64)시례(詩禮)
집안에서 전해지는 가학(家學)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아들 이(鯉)에게 시(詩)와 예(禮)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훈계했던 데서 유래하였다. 《論語 季氏》
德軒記
號有識其居者。西山北山之類是已。有識其德者。敬齋義齋之類是已。綾之西有天台山。盖南方勝區也。山一支北行。透迤至十許里。而有回頭疑立。挺然尖秀者曰德峯。余友朴公禹瑞家其下。名其軒曰德。盖識其居也。然聖門要訣。著於往牒者。不爲不多。而未有若德之一字。爲約而盡也。然則雖識其居。而所以識其德者。又未嘗不在其中。公持身謹勅。才抱需世。而泯然斂迹。不少槩見。則德之畜於身者深矣。孝友詩禮。箕裘承襲。而螽斯椒聊。蔚然茁長。則德之種於家者厚矣。蓄之種之旣深且厚。而猶不自足。有以常目警省者。雖在水石佳名。而不敢慢焉。此必德峯之靈爲之降聚。而將以助發於來許者。又可量乎。百世之下。見此山而識公之居。見此山之容而識公之體德。則公未必非山。而山亦未必非公也。如余培塿邱垤也。雖欲依附風際。以自友爲。而高山之下。秖見其難爲山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