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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미정기(木美亭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24
목미정기
내가 듣건대, 천관산(天冠山)주 54) 북쪽에 높이 우뚝 서 있는 산을 우산(牛山)이라 하고, 산 아래에 날아오를 듯 있는 정자를 목미정(木美亭)이라 하는데, 고(故) 악와(樂窩) 안 처사(安處士)주 55)가 축조하고, 금곡(錦谷) 송 선생(宋先生)주 56)이 이름을 지어 준 것이라고 한다. 다만 모르겠지만, 그 산의 나무는 맹자 때에 이미 그 기름을 잃어서 민둥산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주 57), 더욱이 수천 년이나 지난 뒤에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아서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가? 그러나 진(秦)나라 내의 황죽(篁竹)은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낙양(洛陽)의 모란[牧丹]주 58)은 과거에 없었으나 후대에는 있게 되었으니, 그 물산(物産)의 번성과 쇠퇴는 또한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매양 한번 찾아가고 싶었지만 병으로 발걸음이 미치지 못하다가 근년에 산 아래의 벗이 찾아와 종유(從遊)할 수 있었는데, 기상과 풍모가 대체로 범상치 않은 것이 요림 옥수(瑤林玉樹)주 59)와 같아서 매우 애호할 만하였다. 아, 평소 자나 깨나 잊지 못했던 이 산을 방문을 나가지 않고서도 만날 수 있었으니, 물산은 본디 번성과 쇠퇴가 있지만, 진실로 수양함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속적인 해침에서 벗어나 성취한 바가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아, 맹자는 어느 때 사람이며, 우산(牛山)은 어느 지역에 있었던가? 누가 그 말을 만 리 머나먼 바닷가에서 비로소 서로 얻어 왕춘(王春)주 60)의 한 가닥 맥으로 하여금 얼음이 어는 한겨울과 같은 시기에 실추되지 않게 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 이후로 또 어찌 숭산(嵩山)의 다섯 아름 되는 나무와 형산(衡山)의 천 길 되는 재목이 장차 숲을 이루며 빽빽하게 늘어서서 큰 집을 지탱하고 용마루를 떠받드는 기둥으로 쓰이지 않을 줄 알겠는가. 이것이 악와공이 이 정자를 짓게 된 뜻이다. 그러나 식물도 또한 다양하니, 여름에 휴식을 얻고 가을에 열매를 얻는 것은 어떤 식물이며, 휴식을 얻지 못하고 가시를 얻는 것은 어떤 식물인가? 이는 씨를 뿌리는 초기에 구별되는 바이니, 굳이 성숙해지는 때를 기다려 "좋은 쑥이 아니라 나쁜 쑥이로다."주 61)라는 탄식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양하는 방법은 우산장(牛山章)에 갖추어져 있어 평소에 익혔을 것이니,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나는 잡목 같은 졸렬한 자질로 풍상(風霜)에 곤욕을 당하여 오래도록 사방 한 치 되는 나무조차 되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남은 풍교를 뒤따라서 구구하나마 상유(桑楡)의 시기주 62)에 다소간 봉마(蓬麻)의 도움주 63)을 받을 수 있을까?
주석 54)천관산(天冠山)
전남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면 일원에 위치한 산(723m)이다.
주석 55)악와(樂窩) 안 처사(安處士)
안국심(安國心, 1838~1890)으로, 악와는 그의 호이다.
주석 56)금곡(錦谷) 송 선생(宋先生)
조선후기에 부호군, 대사헌, 찬선 등을 역임한 문신 송내희(宋來熙, 1791~1867)로, 금곡은 그의 호이다. 자는 자칠(子七)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1838년(헌종 4) 경연관(經筵官)에 임명된 후 사헌부의 장령(掌令)·집의(執義) 등을 거쳐 뛰어난 학행을 인정받아 1853년(철종 4)에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에 천거되었으며,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1857년부터 10년 가까이 대사헌을 여러 차례 지내고 뒤에 찬선(贊善)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금곡문집(錦谷文集)》이 있다.
주석 57)그……이르렀는데
목미정이 자리한 산의 이름이 우산(牛山)인 연유로  《맹자》 〈고자 상(告子上〉 우산장(牛山章)에서 맹자가 양심(良心)을 잃게 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제(齊)나라 동남쪽에 있는 우산이 무성하게 우거졌지만, 도시 근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끼로 베어 가고, 또 소와 양이 남은 그루터기의 싹을 뜯어 먹어서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주석 58)낙양(洛陽)의 모란
당나라의 측천무후(624~705)가 어느 겨울날, 꽃나무들에게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다른 꽃들은 모두 이 명령을 따랐으나 모란만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불을 때 강제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화가 난 황제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낙양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이후로 모란은 '낙양화'로도 불리게 되었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한시와 일화로 보는 꽃의 중국문화사》(2004, 나카무라 고이치, 뿌리와이파리.)
주석 59)요림 옥수(瑤林玉樹)
요림 경수(瑤林瓊樹)와 같은 말로, 옥으로 이루어진 숲의 옥으로 만들어진 나무처럼 인품이나 풍도가 매우 고결하고 훌륭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이 당시의 태위(太尉) 왕연(王衍)을 두고 "태위는 신성한 자태가 고상하여 마치 옥으로 이루어진 숲의 옥으로 만들어진 나무와 같으니 자연히 풍진(風塵) 밖의 인물이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43 王戎列傳》
주석 60)왕춘(王春)
음력으로 신춘(新春)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가 《춘추》를 편찬할 때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대일통(大一統)의 사상을 표시하기 위해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 조에 '춘왕정월(春王正月)'이라고 쓴 데서 유래하였다.
주석 61)좋은……쑥이구나
《시경》 〈육아(蓼莪)〉에 보인다.
주석 62)상유(桑楡)의 시기
저물녘에 떨어지는 해가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가지 끝에 걸린다고 하여 인생의 만년을 비유한다. 《회남자(淮南子)》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그림자가 나무 끝에 있는 것을 상유라 한다." 하였다.
주석 63)봉마(蓬麻)의 도움
훌륭한 벗의 도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이 삼대 속에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木美亭記
余聞天冠之北。有巋然而特立者曰牛山。山之下。有亭翼然曰木美。故樂窩安處士所築。錦谷宋先生所錫名也。但未知其山之木。在孟子時。已失其養而至於濯濯。況後於數千載。何獨不然。而乃以美云耶。然秦中篁竹。昔有而今無。洛陽牧丹。前無而後有。其物産盛衰。又不可以一槩可評。每欲一者屨及。而病未能焉。近年得山下友之過從。氣象風裁。槩不草草。若瑤林玉樹。蔚然可愛。噫。平日所寤寐此山者。不出戶而可以覯降矣。物產固有盛衰。苟非有養焉。則安能免於侵尋。而其所就乃爾耶。嗚乎。孟子何時。牛山何地。誰謂其說乃始相得於海荒萬里之濱。使王春一脈。不墜於窮陰堅冰之時耶。率是以往。又安知無嵩山五園之樹。衝山千尋之材。將林立叢列而爲支厦負棟之用耶。此是樂窩公經始之意也。然植物亦多矣。夏得休息而秋得其實者。何物。不得休息而得其刺者。何物。此在下種之初所當區別。不必待日至之時而有匪莪伊蒿之歎也。若其滋養之術。牛山章備矣。講之素矣。夫何贅焉。余以樸樕劣品。厄於風霜。不得爲方寸之木久矣。安得追躡餘風。以受多少蓬麻之助於區區桑楡之日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