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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오봉기(五峯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23
오봉기
오봉산(五峰山)도 능주(綾州) 남쪽의 여러 산처럼 명망이 있는 산으로, 차례대로 나란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줄지어 나는 기러기 같고, 뾰족하게 솟구쳐 있는 삼엄한 모습은 적을 상대하는 창 같으며, 동글고 두터우며 한데 뭉쳐있는 모습은 마치 봄기운을 머금은 연꽃 같았으니, 하늘에 배치하고 땅에 펼쳐 놓은 것이 귀신이 그려놓은 그림처럼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곧 이 산이 있었으니, 정령(精靈)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몇 사람이 배출되었겠으며, 수석(水石)을 완상하는 이곳에서 몇 사람이 소요했겠는가? 돌이켜 아스라이 생각하자니 아득하게 연기와 구름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나의 벗 오군 기서(吳君基瑞)는 산 아래 사람이다.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하여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게 되자 얽매임에서 벗어나 산수에 뜻을 부치고서 지팡이 짚고 거니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유람의 즐거움을 다하면서 문을 닫아건 옛집에서 병든 몸을 돌보고 늙음을 기다리는 계책으로 삼았으니, 대체로 그 풍취와 기상은 사람과 땅이 서로 부합하고, 비경과 마음이 서로 맞았다고 이를 만하다.
나는 풍파에 시달리는 일개 백성일 뿐으로, 병진년(1856)에 덕동(德洞)에서 산 아래로 옮겨가서 우거하다가 정묘년(1867)에 가족을 데리고 구봉산(九峯)으로 들어갔고, 정해년(1875)에 구봉산에서 산 아래 옛적에 거처했던 곳으로 돌아왔으며, 경인년(1890)에 천태산(天台山)주 53) 산중으로 들어왔으니, 전후로 30여 년 동안 동서남북으로 무상(無常)하게 옮겨 다녔지만, 산은 진실로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아, 기구하고 험난한 여생 동안 티끌 같은 세상의 인연을 떨쳐버리지 못하여 명산의 물과 바위 사이에서 평생의 좋은 벗과 함께 늙어가지 못했다. 산은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저버린 적이 많았으니, 그러한즉, 시종 산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으로 또 누가 군만 하겠는가. 오봉산이 훌륭한 주인을 만난 것을 축하하며 인하여 기문(記文)으로 삼기 바란다.
주석 53)천태산(天台山)
화순군 도암면 천태리에 자리한 산(482m)으로 능주의 서남쪽에 있다.
五峯記
五峰亦綾南群山之望也。列立比次。如鴻雁之聯翩。尖秀森嚴。如戈戟之待敵。圓厚融結。如芰荷之含春。天排地鋪。鬼繪神畵。有不可名狀。噫。自開闢以來。便有此山。精靈所會。鍾得幾人出來。水石所賞。住得幾人盤旋。緬思追想。茫茫然烟銷雲空。余友吳君基瑞。山下人也。早業功令。累試不中。擺脫絆累寓意山水。一笻一屨。極其游歷。杜門舊庄。爲養病待老計。蓋其風韻氣趣。可謂人地相符。境情相得也。余一風波氓耳。歲丙辰。自德洞搬寓山下。丁卯挈家入九峯。丁亥自九峯返山下舊居。庚寅入天台山中。前後三十餘年。東西南北遷徙無常。而山固自如矣。嗚乎。崎險餘生。塵緣未袪。不得與平生好友共老於名山水石之間。山不負人。而人之負山多矣。然則終始不負山。又孰若君。願爲五峯山賀得好主人。因爲之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