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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회헌기(悔軒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19
회헌기
어떤 객이 회헌(悔軒)의 주인을 힐난하며 말하기를, "무릇 천하의 후회는 움직이는 데서 생겨나니,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주인께서는 타고난 자질이 질박하고, 행실이 이미 뒤로 물러나는 것을 편안하게 여겨서 젊어서부터 말을 적게 하고 화려한 꾸밈을 생략하였으며, 출입을 간소하게 하고 교유를 끊으면서 문을 닫고 조용히 거처한 지 50년 동안 족적이 일찍이 한 번도 명성과 이욕이 어지럽게 날리는 티끌 사이에 미친 적이 없었으니, 어수선한 세상 사람과 비교하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은 음식을 먹지도 않고 목이 메었다고 말하거나 술을 마시지도 않고 취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사람이 상등의 지혜가 아니라면 누구인들 후회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평생 졸렬함을 지키면서 요행히 면한 것은 단지 뚜렷한 과실과 후회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만족스럽게 여기며 태만한 채 더 살피지 않고서 만약 어느 날 만나는 바가 오늘날과 달리 조금씩 발을 내디뎌 다소의 자가당착이 있게 된다면 어찌 지금껏 해오던 습관대로 그럭저럭 넘어가면서 뜻밖의 후회가 없기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른바 오늘날 후회가 없다는 것이 바로 훗날 후회가 있게 되는 뿌리가 될 것입니다.
병은 발작한 날에 일어나지 않고, 재앙은 발생한 때에 생겨나지 않으니, 병이 없을 때에 병을 다스리고 재앙이 없을 때에 재앙을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회헌(悔軒)'이라 명명한 뜻입니다. 다만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아 나이와 근력이 이미 늙고 쇠약해졌는데, 어스름 날이 저물어 갈 때에 먼 나루터를 묻고, 갈증이 일어날 때에 깊은 우물을 팔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객이 말하기를, "시작이 있고 끝맺음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성인과 대현(大賢)뿐이고, 그 다음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모두 온전히 할 수 없습니다. 정원의 꽃을 경계하는 것은 일찍 시들기 때문이고, 뜰의 국화를 아끼는 것은 늦은 계절에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저언회(禇彦回)는 젊었을 때에 아름다운 명망이 없지 않았으나 끝내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 되었고,주 47) 풍절후(馮節候)는 동우(東隅)에서 약간의 실수가 없지 않았으나 마침내 개국(開國)의 공훈을 세웠습니다.주 48) 이것으로 보건대, 시작은 있되 끝맺음이 없는 것이 어찌 시작은 없되 끝맺음이 있는 것만 하겠습니까. 더욱이 주인께서는 한창 장년과 노년이 교차되는 시기에 있으니,  훗날을 위해 뿌리를 심고 가꾸는 것이 어찌 늦었다고 하겠습니까." 하니, 주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객에게 그 말을 적어 회헌의 기문(記文)으로 삼을 것을 부탁하였다.
주석 47)저언회(禇彦回)는……되었고
남조(南朝) 송(宋)나라와 제(齊)나라 때의 관리 저연(褚淵)으로, 언회는 그의 자이다. 그는 젊었을 때 청렴하다는 명성이 있었으나 훗날 송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를 세우는 데 일조하였다. 《南史 卷28 褚裕之列傳》
주석 48)풍절후(馮節候)는……세웠습니다
풍절후는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의 장군인 풍이(馮異)로, 적미(赤眉)의 난을 토벌하는데 처음에는 대패하였다가 군사를 재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자, 황제가 직접 글을 지어 그 노고를 치하하기를 "처음에 회계(會稽)에서는 날개를 접었으나 끝내 민지(澠池)에서 떨쳐 비상하니, 참으로 '동우(東偶)에서 잃었다가 상유(桑楡)에서 수습하였다.'라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馮異列傳》 동우는 해가 뜨는 곳으로 젊은 날을, 상유는 해가 지는 곳으로 만년을 뜻한다.
悔軒記
客有難於悔軒主人曰。凡天下之悔。生於動。不動。何悔之有。主人天姿質樸。行已恬退。自少寡言語。略文華。簡出入。息交遊。杜門潛處五十年。足跡未嘗一及於聲利紛塵之間。視諸世之撓撓者。可謂靜而不動矣。不動而言悔。猶不食而言噎。不飮而言酲。其可乎。主人曰。人非上智。孰能無悔。顧平生守拙所以倖免。只是顯然過悔而已。視以爲足。漫不加省。若一日所遇。異於今日。而有小小出脚。多少撞着。則安得因仍捱過。而保無不虞之悔哉。然則所謂今日之無悔者。政爲他日有悔之根柢也。病不作於作之日。禍不生於生之時。治病於無病。銷禍於無禍。此吾所以名軒之意也。但日月不貸。年力已替。問遠津於薄暮。掘深井於臨渴有是理乎。客曰。有始有終。惟聖人與大賢。其次皆不能兩全。園花之戒。以其早萎也。庭菊之愛以其晩秀也。禇彦回非無少年令望。而卒爲負義之人。馮節侯非無東隅小失。而終作開國之勳。以此觀之。有始而無終。曷若無始而有終乎。況主人方在壯衰之交。所以爲栽種後日之根株者。豈云晩乎。主人逌然而笑。屬客書其語。以爲軒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