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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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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탄기(竹灘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18
죽탄기
옛적 을묘년(1855)에 내가 어린아이로 천관산(天冠山)의 명촌(明村)에서 독서하였을 때 죽탄옹(竹灘翁)도 어린아이로 함께하였는데, 그 타고난 재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추구하는 것이 독실하여 함께 공부했던 자들이 미칠 수 없었다. 얼마 후 남북으로 흩어져서 40년의 오랜 세월이 흐르기까지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단지 약관(弱冠)이 되기 전에 선친을 여의고 외로운 몸으로 떠돌다가 만년에야 비로소 집안을 세울 계획으로 산양(山陽 보성(寶城))의 죽천(竹川)에 우거(寓居)했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벗이 갑작스럽게 풍상을 만난 뒤에 과연 처음 지녔던 뜻을 바꾸지 않을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계사년(1893)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한 사람이 천태산(天台山)의 집으로 나를 방문하였는데, 보고도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다가 묻고 나서야 비로소 옹인 줄 알았다. 손을 잡고 무릎을 맞댄 채 밤새도록 흥미진진하게 얘기를 나누어 보니, 학문에 대한 공부와 살아오면서 이룩한 업적이 처음 지녔던 뜻을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분발하여 확장하고 넓게 펼쳐서 성대하게 노성(老成)다운 풍모가 있었다.
아, 옹이 '죽탄(竹灘)'이라 한 것이 어찌 단지 그가 사는 곳만을 표지할 뿐이겠는가. 세한(歲寒)주 45)에 힘쓸 것을 기약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부들이나 버드나무처럼 잔약한 자질로 항상 가을이 오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먼저 시들어 떨어질게 될까 경계하는 마음주 46)이 간절하였으니, 어찌하면 여울가 한 가지의 봄기운을 얻어 만년의 풍경을 의지할 수 있을까?
주석 45)세한(歲寒)
대나무가 엄동설한의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푸른빛을 유지하는 것처럼 만년에 초심을 변치 않고 지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는 말이 보인다.
주석 46)가을이……마음
남들보다 일찍 늙고 쇠하는 허약한 체질을 염려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고열지(顧悅之)가 간문제(簡文帝)와 동갑이었는데도 이른 나이에 머리칼이 하얗게 세자 황제가 그 이유를 물으니 "신은 포류와 같은 체질이라서 가을이 가까워지기만 해도 벌써 낙엽이 지고 맙니다.[蒲柳之姿 望秋而落]"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해진다. 《世說新語 言語》
竹灘記
昔在乙卯。余以童丱。讀書于冠山之明村。竹灘翁亦以童丱。與之俱焉。其才性之聰敏。趨向之篤實。同業者莫及。旣而分散南北。至四十年之久。而未得一面焉。但聞其未冠失怙。隻身流離。晩始樹立家計。寓於山陽之竹川。余以爲此友在風霜凌遽之餘。而果能不渝初志否。歲癸巳。有皤然一老人。訪我於天台寓舍。見之不記爲誰。問之乃知爲翁。握手促膝。達夜娓娓。其學問之功。履歷之業。不惟爲不渝初志。奮張展拓。蔚然有老成風範。嗚乎。翁之爲竹灘。豈特誌其所居。所以期勉於歲寒者。可知矣。余以蒲柳孱質。常切望秋之戒。安得灘上一枝春。以庇依晩景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