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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단계기(丹溪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12
단계기
천관산(天冠山)주 25) 남쪽에 살고 있는 단계자(丹溪子)는 바로 내 만년의 벗인데, 하루는 어떤 객이 그곳을 들렀다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단계의 주인과 서로 알고 지냈으니, 또한 단계로 호를 명명한 뜻을 알고 있겠지요? 오색(五色)은 황색이 정색(正色)이 되고, 오채(五采)는 백색이 바탕이 되지만, 단색(丹色)은 정색도 아니고 바탕도 되지 않습니다. 주(周)나라 사람은 적색(赤色)을 숭상하였으되 단색을 말하지 않았고, 노성(魯聖 공자)은 주색(朱色)을 허여하였으되 단색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주인의 집은 청산(靑山)에 있고, 몸은 백옥(白屋)주 26)에 거처하고 있으며, 평일에 대하는 것은 누런 책[黃卷]이고, 만년에 얻은 것은 하얀 머리털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단색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취하여 편액으로 걸어 놓은 것인지요?" 하니, 내가 말하였다. "황암(黃巖) 위에 거처하였기에 두씨(杜氏)는 황암 처사(黃巖處士)라 한 것이고, 백운산(白雲山) 아래에 거처하였기에 허씨(許氏)는 백운 선생(白雲先生)이라 한 것인데주 27), 단산(丹山) 가운데 거처하는 자만 유독 단계의 주인이 될 수 없겠는가.
나이가 기노(耆老)주 28)에 이르도록 두 부모가 모두 살아계신 경우는 예로부터 옛적에 오직 노래자(老萊子)주 29)와 서형중(徐衡仲) 등 몇 사람뿐이었는데, 지금 주인에게서 또한 그것을 볼 수 있으니, 쌓아온 덕이 깊고 두텁지 않다면 어찌 이렇게 천하의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는가. 흰 머리가 아롱져 빛날 때까지 기쁜 기색으로 부모님을 모시는 즐거움을 다하고 있으니, 이는 그 마음에 내재된 것도 단색이고, 밖으로 드러난 것도 단색이어서 사람과 만물에 응대하고 접할 때에도 크고 작은 일이 단심(丹心) 속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뿌리를 감추고 향기를 머금어서 고요하기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꿋꿋하게 세한(歲寒)의 절개주 30)를 지키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내가 알기에 호를 명명한 뜻이 본디 현재 거처하고 있는 지역에서 나온 것이지만, 기쁨을 표하는 마음과 경계를 부친 의리도 일찍이 그 가운데에서 함께 행해지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네. 객이여, 만약 주인을 만나거든 나를 위해 운당(篔簹)의 시주 31) 한 구절을 읊어주게나. " 라고 하였다.
주석 25)천관산(天冠山)
전남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주석 26)백옥(白屋)
흰 띠로 지붕을 덮은 집이나 기둥과 들보에 채색을 하지 않은 집을 말하는 것으로, 평민(平民)이나 한사(寒士)의 집을 가리킨다.
주석 27)허씨(許氏)는……하였는데
허씨는 원(元)나라 때의 이학가(理學家)인 허겸(許謙)으로, 원래 송(宋)나라 사람이었는데 나라가 망함에 따라 평생 벼슬하지 않고 백운산(白雲山) 아래에 은거한 채 학문에만 전념하며 스스로 호를 백운산인(白雲山人)이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백운 선생이라고 불렀다. 김이상(金履祥)에게 수업하였고, 주자의 학문을 추종하였으며, 사방의 학자들이 그의 문하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元史 券189 許謙列傳》
주석 28)기노(耆老)
나이 60세와 70세를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나이 60세를 '기(耆)'라 하니 지시하여 부린다. 70세를 '노(老)'라 하니 집안일을 물려준다.[六十曰耆指使, 七十曰老而傳.]" 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석 29)노래자(老萊子)
노래자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사(隱士)로 나이 70에도 항상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처럼 재롱을 부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고 한다. 《小學 稽古》
주석 30)세한(歲寒)의 절개
당시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뜻을 지키고 있음을 비유한 말로, 공자(孔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論語 子罕》
주석 31)운당(篔簹)의 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스러움을 노래한 시이다. 주희가 젊은 시절에 운당포(篔簹鋪)를 지나다가 벽에 "빛나는 영지는 일 년에 세 번 꽃이 피는데, 나는 유독 어찌하여 뜻이 있으나 이루지 못하는가.[煌惶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는 시를 보고 공감한 적이 있었는데, 4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그곳에 와서 당시의 시가 이미 없어졌지만,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언뜻 지나가는 백 년 세월 얼마나 되랴. 세 번 꽃 피는 영지는 무엇을 하려는가. 말년에도 금단은 소식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鼎鼎百年能幾時? 靈芝三秀欲何爲? 金丹歲晩無消息, 重歎篔簹壁上詩.]"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丹溪記
冠山之陽有丹溪子。卽我晩年友也。一日客有經過而來者。謂余言曰。子與丹溪主人相知。亦知其丹溪命號之意耶。五色黃爲正。五采白爲質。丹則非正非質。周人尙赤而不言丹。魯聖與朱而不及丹。且主人家在靑山。身處白屋。平日所對者黃卷。晩年所得者皓髮。未知何有於丹。而取爲扁揭也。余曰。居於黃巖之上。而杜氏所以爲黃巖處士也。居於白雲之下。而許氏所以爲白雲先生也。則居於丹山之中者。獨不得爲丹溪主人耶。行年耆老。兩庭俱存。自古在昔。惟老萊子與徐衡仲數人而已。而今於主人。又見之矣。其非積累深厚。何以享此天下太上之樂也。白首班斕。恰愉盡歡。此其存於中者丹。而著於外者亦丹。以至酬人接物。大小大事。無非自丹心中流出。況晦根含薰。寂若無有。耿耿爲歲寒之守者。豈其偶爾哉。余知命號之意。固出於見在所居之地。而其識喜之心。寓警之義。亦未嘗不倂行乎其中也。客乎如見主人。爲我歌篔簹詩一絶。